교학 Q&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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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업 부정업의 개념에 대해서...
교학관리자
2005.10.26
2,073
안녕하십니까? 한국SGI 교학부입니다. 답변이 늦어졌습니다. 양해 바랍니다.
질문의 핵심은 현실 상에서의 정업과 부정업의 구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정업이란 고락의 과보를 받을 것이 결정되어 있는 업인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현실 상에 어떤 것이 정업이고, 어떤 것이 부정업인가 라고 물으면 그것은 사람마다 과보가 다르기 때문에 일률적으로 얘기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예를 들어 교통사고로 목숨을 잃었다면 그것은 아마도 정업에 의한 과보일 것입니다. 그런데 함께 차에 타고 있던 옆자리의 사람은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다라고 한다면 이 사람에게 있어서는 교통사고를 당한다는 자체가 정업이었을 수도 있습니다.
아니면 열심히 신심에 면려하는 사람이 어느날 교통사고를 당했으나 목숨을 부지하고 몸도 크게 다치지 않았다면 신심에 면려한 공덕으로 원래라면 사망했을 정업을 전환해서 가볍게 받은 것인지도 모릅니다. 또한 신심하더라도 사망할 수도 있겠지요.
앞서 간단히 예를 들었습니다만 정업이나 부정업이냐 하는 문제는 어떤 현상에 대한 문제가 아니라 개념에 대한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나의 노력으로도(신심의 도전이 아니라 세간적인 도전을 얘기합니다만) 피할 수 없는 업, 그렇게 정해져 있는 업을 정업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정업으로서 크게 나타나는 업은 언제 죽는다 라고 하는 수명에 대한 문제라든가 병에 의해 크게 괴로워하지 않으면 안 된다든가 하는 그런 형태로 나타나겠지요. 사람에 따라서는 실력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대학에 진학하지 못하는 사람(집안의 경제적 형편으로나 얘기치 못했던 집안의 우환 등으로)도 대학에 진학하지 못하는 정업을 갖고 있는 것인지 모릅니다.
그럼 귀하께서 질문하신 예를 살펴보겠습니다.
질문) 열심히 노력하였는데도 불구하고 사업에 실패하였다면 그것은 부정업이라고 판단되는데 맞는지요. 왜냐하면 계속 노력하여 변독위약시킬 수 있기 때문이니까?
하지만 계속 노력하여 변독위약시킬 수 있는 그 자체 또한 정업이 아닙니까?
답변) 사업에 성공하고 실패하는 문제는 그 사람의 업에 의한 문제도 있겠습니다만 그 사람의 노력과 역량이라는 문제도 함께 고려되어야 할 것입니다. 사업에 실패한다는 것이 정업으로 정해져 있지 않은 사람(그러면 노력에 따라 성공할 수도 실패할 수도 있겠지요)이라면 그 사람의 노력과 역량에 따라 성공하기도 하고 실패하기도 할 것입니다.
반면에 사업에 실패한다는 것이 정업으로 정해져 있는 사람(신심을 안하고 있다는전제로)이라면 아무리 노력을 해도 예기치 않았던 상황의 전개라든가 믿었던 사람이 사기를 친다거나 하여 사업의 실패를 맛보게 될 것입니다.
또 다른 경우로 신심을 열심히 도전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사업 실패가 정업으로 정해져 있지 않은 사람이라면 신심하는 공덕에 의해, 그 생명력과 지혜로 어려움을 헤치고 사업을 크게 성공시킬 수 있을 것입니다. 또 신심을 하지만 사업 실패가 정업으로 정해져 있는 사람이라도 어려움은 많겠지만 그 정업을 전환할 정도로 매우 강하게 신심으로 도전하고 사업의 과제에 하나 하나 전력으로 도전해 간다면 숙명전환의 공덕으로 그 사업을 성공시킬 수도 있는 것입니다.
대성인 불법에서의 정업과 부정업의 의미는 그 업이 정해지거나 안 정해져 있다는 것을 강조하는 것이 아니라 정해져 있는 업마저도 바꿀 수 있다는 어본존의 위대함을 가르쳐 주시기 위한 것입니다. 그 힘은 부정업이라고 해서 정해져 있지 않은 업은 물론이고 사람의 수명과 같은 정업마저도 전환해 갈 수 있는 힘있는 숙명전환의 불법이라고 하는 점입니다.
그런데 신심을 열심히 했는데에도 예를 들어 사업을 극복하지 못했는데 이것은 어떻게 된 것인가 라는 경우도 있습니다만, 그 신심의 도전과 노력은 절대로 헛됨이 없이 자신의 복운으로 남아 있게 됩니다. 그리고 노력을 계속해 간다면 반드시 가장 좋은 방향으로 기원은 이루어지고 숙명은 전환되어 갑니다.
기원은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것을 전제로 당장 이루어지지 않은 경우, 언제 이루어지는가 하는 문제에 있어서는 병에 있어서도 작은 병의 경우 금방 치유되는 병도 있고, 큰 병의 경우 장기간에 걸쳐서 치유되는 병도 있는 것처럼 우리들의 숙업에 있어서도 금방 전환되는 숙업이 있는가 하면 시간이 걸리는 경우도 있습니다. 또한 신심으로 도전하는 사람에 있어서도 얼마나 진지하게 신심에 면려하고 있느냐 라고 하는 문제도 있습니다. 숙명을 전환하기 위해서 진지하게 창제에 도전하고 절복에 도전하는 사람과 의심의 마음으로 제목도 얼마 부르지 않고 있는 사람과는 그 결과에 있어서도 당연히 차이가 있겠지요.
이상의 답변을 바탕으로 잘 사색해 가시면 정립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감사합니다.
질문의 핵심은 현실 상에서의 정업과 부정업의 구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정업이란 고락의 과보를 받을 것이 결정되어 있는 업인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현실 상에 어떤 것이 정업이고, 어떤 것이 부정업인가 라고 물으면 그것은 사람마다 과보가 다르기 때문에 일률적으로 얘기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예를 들어 교통사고로 목숨을 잃었다면 그것은 아마도 정업에 의한 과보일 것입니다. 그런데 함께 차에 타고 있던 옆자리의 사람은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다라고 한다면 이 사람에게 있어서는 교통사고를 당한다는 자체가 정업이었을 수도 있습니다.
아니면 열심히 신심에 면려하는 사람이 어느날 교통사고를 당했으나 목숨을 부지하고 몸도 크게 다치지 않았다면 신심에 면려한 공덕으로 원래라면 사망했을 정업을 전환해서 가볍게 받은 것인지도 모릅니다. 또한 신심하더라도 사망할 수도 있겠지요.
앞서 간단히 예를 들었습니다만 정업이나 부정업이냐 하는 문제는 어떤 현상에 대한 문제가 아니라 개념에 대한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나의 노력으로도(신심의 도전이 아니라 세간적인 도전을 얘기합니다만) 피할 수 없는 업, 그렇게 정해져 있는 업을 정업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정업으로서 크게 나타나는 업은 언제 죽는다 라고 하는 수명에 대한 문제라든가 병에 의해 크게 괴로워하지 않으면 안 된다든가 하는 그런 형태로 나타나겠지요. 사람에 따라서는 실력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대학에 진학하지 못하는 사람(집안의 경제적 형편으로나 얘기치 못했던 집안의 우환 등으로)도 대학에 진학하지 못하는 정업을 갖고 있는 것인지 모릅니다.
그럼 귀하께서 질문하신 예를 살펴보겠습니다.
질문) 열심히 노력하였는데도 불구하고 사업에 실패하였다면 그것은 부정업이라고 판단되는데 맞는지요. 왜냐하면 계속 노력하여 변독위약시킬 수 있기 때문이니까?
하지만 계속 노력하여 변독위약시킬 수 있는 그 자체 또한 정업이 아닙니까?
답변) 사업에 성공하고 실패하는 문제는 그 사람의 업에 의한 문제도 있겠습니다만 그 사람의 노력과 역량이라는 문제도 함께 고려되어야 할 것입니다. 사업에 실패한다는 것이 정업으로 정해져 있지 않은 사람(그러면 노력에 따라 성공할 수도 실패할 수도 있겠지요)이라면 그 사람의 노력과 역량에 따라 성공하기도 하고 실패하기도 할 것입니다.
반면에 사업에 실패한다는 것이 정업으로 정해져 있는 사람(신심을 안하고 있다는전제로)이라면 아무리 노력을 해도 예기치 않았던 상황의 전개라든가 믿었던 사람이 사기를 친다거나 하여 사업의 실패를 맛보게 될 것입니다.
또 다른 경우로 신심을 열심히 도전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사업 실패가 정업으로 정해져 있지 않은 사람이라면 신심하는 공덕에 의해, 그 생명력과 지혜로 어려움을 헤치고 사업을 크게 성공시킬 수 있을 것입니다. 또 신심을 하지만 사업 실패가 정업으로 정해져 있는 사람이라도 어려움은 많겠지만 그 정업을 전환할 정도로 매우 강하게 신심으로 도전하고 사업의 과제에 하나 하나 전력으로 도전해 간다면 숙명전환의 공덕으로 그 사업을 성공시킬 수도 있는 것입니다.
대성인 불법에서의 정업과 부정업의 의미는 그 업이 정해지거나 안 정해져 있다는 것을 강조하는 것이 아니라 정해져 있는 업마저도 바꿀 수 있다는 어본존의 위대함을 가르쳐 주시기 위한 것입니다. 그 힘은 부정업이라고 해서 정해져 있지 않은 업은 물론이고 사람의 수명과 같은 정업마저도 전환해 갈 수 있는 힘있는 숙명전환의 불법이라고 하는 점입니다.
그런데 신심을 열심히 했는데에도 예를 들어 사업을 극복하지 못했는데 이것은 어떻게 된 것인가 라는 경우도 있습니다만, 그 신심의 도전과 노력은 절대로 헛됨이 없이 자신의 복운으로 남아 있게 됩니다. 그리고 노력을 계속해 간다면 반드시 가장 좋은 방향으로 기원은 이루어지고 숙명은 전환되어 갑니다.
기원은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것을 전제로 당장 이루어지지 않은 경우, 언제 이루어지는가 하는 문제에 있어서는 병에 있어서도 작은 병의 경우 금방 치유되는 병도 있고, 큰 병의 경우 장기간에 걸쳐서 치유되는 병도 있는 것처럼 우리들의 숙업에 있어서도 금방 전환되는 숙업이 있는가 하면 시간이 걸리는 경우도 있습니다. 또한 신심으로 도전하는 사람에 있어서도 얼마나 진지하게 신심에 면려하고 있느냐 라고 하는 문제도 있습니다. 숙명을 전환하기 위해서 진지하게 창제에 도전하고 절복에 도전하는 사람과 의심의 마음으로 제목도 얼마 부르지 않고 있는 사람과는 그 결과에 있어서도 당연히 차이가 있겠지요.
이상의 답변을 바탕으로 잘 사색해 가시면 정립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