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학 Q&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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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남묘호렌게쿄의 진정한 뜻과 의마를 알고 싶어요
관리자
2019.03.19
2,822
안녕하십니까?
한국SGI 교학부입니다.
불법(佛法)에서는 만물의 생성과 소멸에 대해 ‘우주 근원의 위대한 생명에서 나타나 위대한 생명으로 다시 돌아가는 것’이라고 합니다. 이를 바다〈海〉에 비유하면, 위대한 생명은 큰 바다이고, 생사의 유전은 큰 바다에서 파도가 일어나고 다시 바다로 돌아가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결국 죽으면 어딘가로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형태만 달라질 뿐 이 우주에서 끊임없이 생과 사를 반복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생명과 우주의 불가사의한 관계를 깨달은 것이 부처의 최고 깨달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부처는 이러한 묘법(妙法)의 이치를 깨달았지만, 문제는 어떻게 하면 인류가 이 묘리를 득할 수 있는가 였습니다. 그래서 이 묘리를 자신의 생명에서 발견하신 니치렌 대성인이 그에 가장 어울리는 이름을 붙이셨습니다.
사물의 본질을 정확하게 파악한 이름을 붙임으로써 그 본질을 모든 사람에게 개방하는 결과가 됩니다. 이름을 붙이면 모든 이가 그 가치를 공유하기 때문입니다. “중생본유의 묘리란 묘호렌게쿄 이것이니라”(어서 383쪽)고 말씀하시듯이 니치렌 대성인은 일체중생이 본래 갖춘 묘리〈본성〉를 ‘묘호렌게쿄’라고 명확하게 선언하십니다.
‘묘호렌게쿄(妙法蓮華經)’는 석존이 설한 법화경, 즉 묘법연화경 경전 제목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보통 ‘제목을 부른다’라고 합니다. 대성인은 석존이 설한 법화경을 통해 묘법의 이치이자 우주의 근본 법칙을 깨달았기에, 그 이름으로서 묘호렌게쿄를 부른 것입니다.
도다 선생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대성인은 ‘묘호렌게쿄는 우주의 만법(萬法)이며 우주 만법의 본체는 묘호렌게쿄다. 시시각각으로 변화하는 우주 만물이야말로 묘호렌게쿄다’라고 말씀하셨어요. 별해서 요즘 말로 표현하자면 우주 생명이라는 것이지요.”
즉 대우주의 생명이자 우주의 법칙이 묘호렌게쿄이고, 우리 생명도 대우주와 같은 본질의 소우주로서 마찬가지로 묘호렌게쿄의 당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대성인은 이러한 ‘묘호렌게쿄’라는 보편적 진리에 대해 ‘나무’를 붙이시고 그 진리를 부르는 수행을 세우셨습니다.
‘나무’란 고대 인도의 말인 산스크리트어로 ‘나마스’ 혹은 나마스의 변화형인 ‘나모’라는 음을 그대로 전해 한역한 것으로 ‘남(南)’과 ‘무(無)’라는 한자 자체로는 아무 상관 없습니다. 나마스란 ‘귀의(歸依)한다’, ‘귀명(歸命)한다’, 즉 목숨을 바친다는 의미로 그만큼 소중히 존경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남묘호렌게쿄는 ‘묘호렌게쿄에 귀명한다’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남묘호렌게쿄가 어느 나라 말이냐고 한다면, 나무는 고대 인도어고, 묘호렌게쿄는 일본어 발음, 글자 자체는 한자라서 중국어이므로, 3개 국어가 모인 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대성인이 개척하신 대도(大道)의 다음 단계가 ‘제목을 부른다’라는 수행의 확립입니다. ‘남묘호렌게쿄’라고 소리 내어 창제하는 것은〈창제(唱題)라고 하기도 한다〉, 자신이 그 대우주의 세계로 들어가는 것을 신구의(身口意: 몸과 입과 마음) 차원에서 결심하고 맹세하는 선언입니다.
그렇게 제목을 부르면 그 대우주의 세계로 들어가 자기 생명속에 잠재한 부처의 생명을 불러 깨워 용현할 수 있습니다.
이에 도다 선생님은, 자신이 곧 대우주와 같다고 깨닫고 제목을 부르는 것은 ‘나 자신이 바로 남묘호렌게쿄다!’ 하고 결심하는 것에서 시작한다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이렇게 자기 자신이 곧 ‘남묘호렌게쿄’라고 각오하고 창제와 신심 수행에 면려했을 때만이 우주와 같은 대경애가 열립니다.
다시 말해 이러한 경애가 되고 싶다면 광선유포(廣宣流布), 즉 남묘호렌게쿄의 위대함과 이케다 선생님의 사상을 주위 분들에게 알려 불법의 연대를 넓히는 도전을 하면 됩니다.
지금부터 확신 있는 창제와 광선유포를 위한 도전으로 우주와 같은 대경애를 열어 흔들리지 않는 행복을 만들어가십시오.
감사합니다.
한국SGI 교학부입니다.
불법(佛法)에서는 만물의 생성과 소멸에 대해 ‘우주 근원의 위대한 생명에서 나타나 위대한 생명으로 다시 돌아가는 것’이라고 합니다. 이를 바다〈海〉에 비유하면, 위대한 생명은 큰 바다이고, 생사의 유전은 큰 바다에서 파도가 일어나고 다시 바다로 돌아가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결국 죽으면 어딘가로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형태만 달라질 뿐 이 우주에서 끊임없이 생과 사를 반복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생명과 우주의 불가사의한 관계를 깨달은 것이 부처의 최고 깨달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부처는 이러한 묘법(妙法)의 이치를 깨달았지만, 문제는 어떻게 하면 인류가 이 묘리를 득할 수 있는가 였습니다. 그래서 이 묘리를 자신의 생명에서 발견하신 니치렌 대성인이 그에 가장 어울리는 이름을 붙이셨습니다.
사물의 본질을 정확하게 파악한 이름을 붙임으로써 그 본질을 모든 사람에게 개방하는 결과가 됩니다. 이름을 붙이면 모든 이가 그 가치를 공유하기 때문입니다. “중생본유의 묘리란 묘호렌게쿄 이것이니라”(어서 383쪽)고 말씀하시듯이 니치렌 대성인은 일체중생이 본래 갖춘 묘리〈본성〉를 ‘묘호렌게쿄’라고 명확하게 선언하십니다.
‘묘호렌게쿄(妙法蓮華經)’는 석존이 설한 법화경, 즉 묘법연화경 경전 제목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보통 ‘제목을 부른다’라고 합니다. 대성인은 석존이 설한 법화경을 통해 묘법의 이치이자 우주의 근본 법칙을 깨달았기에, 그 이름으로서 묘호렌게쿄를 부른 것입니다.
도다 선생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대성인은 ‘묘호렌게쿄는 우주의 만법(萬法)이며 우주 만법의 본체는 묘호렌게쿄다. 시시각각으로 변화하는 우주 만물이야말로 묘호렌게쿄다’라고 말씀하셨어요. 별해서 요즘 말로 표현하자면 우주 생명이라는 것이지요.”
즉 대우주의 생명이자 우주의 법칙이 묘호렌게쿄이고, 우리 생명도 대우주와 같은 본질의 소우주로서 마찬가지로 묘호렌게쿄의 당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대성인은 이러한 ‘묘호렌게쿄’라는 보편적 진리에 대해 ‘나무’를 붙이시고 그 진리를 부르는 수행을 세우셨습니다.
‘나무’란 고대 인도의 말인 산스크리트어로 ‘나마스’ 혹은 나마스의 변화형인 ‘나모’라는 음을 그대로 전해 한역한 것으로 ‘남(南)’과 ‘무(無)’라는 한자 자체로는 아무 상관 없습니다. 나마스란 ‘귀의(歸依)한다’, ‘귀명(歸命)한다’, 즉 목숨을 바친다는 의미로 그만큼 소중히 존경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남묘호렌게쿄는 ‘묘호렌게쿄에 귀명한다’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남묘호렌게쿄가 어느 나라 말이냐고 한다면, 나무는 고대 인도어고, 묘호렌게쿄는 일본어 발음, 글자 자체는 한자라서 중국어이므로, 3개 국어가 모인 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대성인이 개척하신 대도(大道)의 다음 단계가 ‘제목을 부른다’라는 수행의 확립입니다. ‘남묘호렌게쿄’라고 소리 내어 창제하는 것은〈창제(唱題)라고 하기도 한다〉, 자신이 그 대우주의 세계로 들어가는 것을 신구의(身口意: 몸과 입과 마음) 차원에서 결심하고 맹세하는 선언입니다.
그렇게 제목을 부르면 그 대우주의 세계로 들어가 자기 생명속에 잠재한 부처의 생명을 불러 깨워 용현할 수 있습니다.
이에 도다 선생님은, 자신이 곧 대우주와 같다고 깨닫고 제목을 부르는 것은 ‘나 자신이 바로 남묘호렌게쿄다!’ 하고 결심하는 것에서 시작한다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이렇게 자기 자신이 곧 ‘남묘호렌게쿄’라고 각오하고 창제와 신심 수행에 면려했을 때만이 우주와 같은 대경애가 열립니다.
다시 말해 이러한 경애가 되고 싶다면 광선유포(廣宣流布), 즉 남묘호렌게쿄의 위대함과 이케다 선생님의 사상을 주위 분들에게 알려 불법의 연대를 넓히는 도전을 하면 됩니다.
지금부터 확신 있는 창제와 광선유포를 위한 도전으로 우주와 같은 대경애를 열어 흔들리지 않는 행복을 만들어가십시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