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학 Q&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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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질문합니다
관리자
2019.01.04
1,069
안녕하십니까?
한국SGI 교학부입니다.
* 질문하신 내용은 저희도 이해가 잘 되지 않고, 정확히는 잘 모르겠습니다.
* 그러나 참회에 대한 선생님 어서 강의 내용을 게재하오니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 [본문] 또한 소식에 말하되, 사람을 죽인 자이니 어떠한 곳에 태어나게 될까요. 가르침을 받고 싶나이다라고 운운. 대저 바늘은 물에 가라앉고, 비는 하늘에 머물지 않노라, 개미를 죽인 자는 지옥에 들어가고, 시체를 자른 자는 악도를 면치 못하니, 황차 인신을 받은 자를 죽인 사람에 있어서랴. 그러나 대석도 바다에 뜨는 것은 배의 힘이요, 대화도 꺼지는 것은 물의 작용이 아닐소냐. 소죄일지라도 참회하지 않으면 악도를 면치 못하고, 대역이라도 참회하면 죄는 소멸되느니라.(고니치보어서 930쪽 3행~6행)
[강의 내용]
고니치니는 대성인에게 보내는 편지에 “자식인 야시로는 무사로서 사람을 죽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사후는 어떠한 곳에 태어날까요.”라고 질문했습니다.
원래 이런 질문을 할 수 있는 자체가 전쟁이 낳은 비극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전쟁은 승자도 패자도 모두 불행합니다. 비참하고 잔혹합니다. 그러므로 절대로 전쟁을 일으키면 안 됩니다. 고니치니와 같은 ‘어머니의 슬픔’을 되풀이하면 안 됩니다. 그를 위해 지도자들은 진지하게 영지를 결집해야 합니다. 생명의 존엄 그리고 평화의 창출은 입정안국의 비원(悲願)에 있습니다. 평화와 공생을 위한 대화가 바로 인류가 나아가야 할 첫걸음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 사명은 더욱 중요합니다. 어쨌든 야시로의 경우도 자진해서 만든 죄는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운명에 떠밀린 내 아들의 죄는 어떻게 될까. 슬픔에 잠긴 어머니에게 대성인은 혼신의 힘을 다해 계속 격려하셨습니다.
물에 가라앉는 큰돌도 바다에 뜬다. 그것은 배의 힘에 의한 것이다. 훨훨 타오르는 큰불도 꺼진다. 그것은 물의 힘에 의한 것이다. 이런 비유를 통해서 대성인은 불법에는 본디라면 악도에 떨어질 사람도 수호하고 구할 수 있는 힘이 있다고 밝히십니다. 이어서 대성인은 불전(佛典)에 있는 예를 들어 작은 죄라도 참회하지 않으면 악도를 면할 수 없다. 반대로 대죄라도 참회하면 그 죄는 소멸된다고 구체적으로 가르치십니다.
참회는 일반적으로 말하면 과거에 범한 죄를 부처나 사람들 앞에 고백하고 용서를 청하는 것, 다시 말해서 회개(悔改)하는 일입니다. 물론 죄를 범한 사실이 소멸될 리 없습니다. 그러나 본인이 진심으로 죄를 참회하고 불법에 귀의해 정법을 근본으로 나와 남의 행복을 진실로 원한다면 반드시 소생하는 길을 걸을 수 있습니다.
대성인이 이 어서에서 악인인 아일다(阿逸多)와 용인(龍印)과 아사세왕의 참회를 예를 듭니다. 모두 석존 앞에서 참회하고 새로운 삶의 길을 내디뎠습니다. 특히 아사세왕의 경우는 제바달다라는 악승을 스승으로 삼은 일이 최대 불행이었습니다. 그러나 최고의 선지식인 석존에게 귀의해서 참회했을 때 죄가 소멸되어 병도 나았습니다.
중요한 점은 자신을 깊이 반성하고 다시 태어난 마음으로 정법을 위해 끝까지 사는 새로운 자신을 구축하는 일입니다. 악지식의 그릇된 가르침을 버리고 올바른 스승이 가르치는 올바른 법에 따랐을 때 비로소 자신을 근본적으로 바꿀 수 있습니다. 법화경이라는 만인성불의 법을 근본으로 올바른 궤도에 들어서면 반드시 많은 선근을 쌓을 수 있습니다.
법화경 결경인 보현경(普賢經)에는 “만약 참회하고자 한다면 단정히 앉아서 실상을 생각하라. 여러 죄는 서리나 이슬과 같아서 혜일이 능히 녹여 없애느니라.”(법화경 724쪽)고 있습니다. 도다 선생님도 “참회는 아침 저녁으로 어본존 앞에 단정히 앉아 광포를 위해 끝까지 살겠다는 새로운 전진을 맹세하는 데 있다.”고 자주 가르치셨습니다.
어쨌든 악도에 떨어지는 일을 면할 수 있는 방도가 있음을 차근차근 설하신 대성인의 자애로움에 고니치니는 차츰 이해하고 묘법을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승리의 경전 '어서'에서 배운다> 제29회 고니치보어서(光日房御書)-
한국SGI 교학부입니다.
* 질문하신 내용은 저희도 이해가 잘 되지 않고, 정확히는 잘 모르겠습니다.
* 그러나 참회에 대한 선생님 어서 강의 내용을 게재하오니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 [본문] 또한 소식에 말하되, 사람을 죽인 자이니 어떠한 곳에 태어나게 될까요. 가르침을 받고 싶나이다라고 운운. 대저 바늘은 물에 가라앉고, 비는 하늘에 머물지 않노라, 개미를 죽인 자는 지옥에 들어가고, 시체를 자른 자는 악도를 면치 못하니, 황차 인신을 받은 자를 죽인 사람에 있어서랴. 그러나 대석도 바다에 뜨는 것은 배의 힘이요, 대화도 꺼지는 것은 물의 작용이 아닐소냐. 소죄일지라도 참회하지 않으면 악도를 면치 못하고, 대역이라도 참회하면 죄는 소멸되느니라.(고니치보어서 930쪽 3행~6행)
[강의 내용]
고니치니는 대성인에게 보내는 편지에 “자식인 야시로는 무사로서 사람을 죽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사후는 어떠한 곳에 태어날까요.”라고 질문했습니다.
원래 이런 질문을 할 수 있는 자체가 전쟁이 낳은 비극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전쟁은 승자도 패자도 모두 불행합니다. 비참하고 잔혹합니다. 그러므로 절대로 전쟁을 일으키면 안 됩니다. 고니치니와 같은 ‘어머니의 슬픔’을 되풀이하면 안 됩니다. 그를 위해 지도자들은 진지하게 영지를 결집해야 합니다. 생명의 존엄 그리고 평화의 창출은 입정안국의 비원(悲願)에 있습니다. 평화와 공생을 위한 대화가 바로 인류가 나아가야 할 첫걸음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 사명은 더욱 중요합니다. 어쨌든 야시로의 경우도 자진해서 만든 죄는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운명에 떠밀린 내 아들의 죄는 어떻게 될까. 슬픔에 잠긴 어머니에게 대성인은 혼신의 힘을 다해 계속 격려하셨습니다.
물에 가라앉는 큰돌도 바다에 뜬다. 그것은 배의 힘에 의한 것이다. 훨훨 타오르는 큰불도 꺼진다. 그것은 물의 힘에 의한 것이다. 이런 비유를 통해서 대성인은 불법에는 본디라면 악도에 떨어질 사람도 수호하고 구할 수 있는 힘이 있다고 밝히십니다. 이어서 대성인은 불전(佛典)에 있는 예를 들어 작은 죄라도 참회하지 않으면 악도를 면할 수 없다. 반대로 대죄라도 참회하면 그 죄는 소멸된다고 구체적으로 가르치십니다.
참회는 일반적으로 말하면 과거에 범한 죄를 부처나 사람들 앞에 고백하고 용서를 청하는 것, 다시 말해서 회개(悔改)하는 일입니다. 물론 죄를 범한 사실이 소멸될 리 없습니다. 그러나 본인이 진심으로 죄를 참회하고 불법에 귀의해 정법을 근본으로 나와 남의 행복을 진실로 원한다면 반드시 소생하는 길을 걸을 수 있습니다.
대성인이 이 어서에서 악인인 아일다(阿逸多)와 용인(龍印)과 아사세왕의 참회를 예를 듭니다. 모두 석존 앞에서 참회하고 새로운 삶의 길을 내디뎠습니다. 특히 아사세왕의 경우는 제바달다라는 악승을 스승으로 삼은 일이 최대 불행이었습니다. 그러나 최고의 선지식인 석존에게 귀의해서 참회했을 때 죄가 소멸되어 병도 나았습니다.
중요한 점은 자신을 깊이 반성하고 다시 태어난 마음으로 정법을 위해 끝까지 사는 새로운 자신을 구축하는 일입니다. 악지식의 그릇된 가르침을 버리고 올바른 스승이 가르치는 올바른 법에 따랐을 때 비로소 자신을 근본적으로 바꿀 수 있습니다. 법화경이라는 만인성불의 법을 근본으로 올바른 궤도에 들어서면 반드시 많은 선근을 쌓을 수 있습니다.
법화경 결경인 보현경(普賢經)에는 “만약 참회하고자 한다면 단정히 앉아서 실상을 생각하라. 여러 죄는 서리나 이슬과 같아서 혜일이 능히 녹여 없애느니라.”(법화경 724쪽)고 있습니다. 도다 선생님도 “참회는 아침 저녁으로 어본존 앞에 단정히 앉아 광포를 위해 끝까지 살겠다는 새로운 전진을 맹세하는 데 있다.”고 자주 가르치셨습니다.
어쨌든 악도에 떨어지는 일을 면할 수 있는 방도가 있음을 차근차근 설하신 대성인의 자애로움에 고니치니는 차츰 이해하고 묘법을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승리의 경전 '어서'에서 배운다> 제29회 고니치보어서(光日房御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