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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학 Q&A

 

  • [RE]시조깅고전답서 1180쪽

  • 관리자

  • 2018.11.07

  • 1,151

안녕하십니까?
한국SGI 교학부입니다.

* 법화경은 생명의 근원의 법리인 일념삼천을 설한 것이며 종<시간적>으로는 영원히, 횡<공간적>으로는 일염부제<세계>에 넓혀지는 가르침입니다. 그러나 그것을 넓히기 위해서는 대단한 어려움이 뒤따릅니다.
왜 그런가 하면 일념삼천의 근간을 이루는 일체중생 개성불도(一切衆生 皆成佛道)라는 사고방식은, 불법을 알고 있는 것은 자기들 뿐이라며 권위주의에 안주하던 사람에게는 자신의 지위를 위태롭게 하는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오히려「현인 성인」으로 보여지고 있는 사람들이 법화경의 행자를 박해하는 데 광분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박해가 강하므로 이 신앙을 관철하는 것은 난사중의 난사입니다.
대성인의 문하에도 처음에는 신심을 했어도 엄한 난을 참지 못하고 퇴전한 자, 혹은 눈 앞의 이익에 빠져 반역한 자가 있다고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다쓰노구치법난, 사도유죄 등의 때에 몇몇 문하가 퇴전 했습니다. 성인어난사에는『오타의 지카마사·나가사키지로효에노조도키쓰나·다이신보』나『나고에의 부인, 쇼우보·산미보』의 이름을 드시고 있습니다.(어서 1190-1191쪽)
이 사람들은 뚜렷이 알 수 있는 모습으로 퇴전하고 혹은 반역한 자인데 대성인은 외견상으로는 신심을 계속하고 있는 것처럼 보여도 마음속으로는 의심을 품고 퇴전하고 있는 사람의 경우가 있다고 지적하신 것입니다.
그것이『혹은 몸은 퇴전하지 않았으나 마음이 퇴전하고 혹은 마음은 퇴전하지 않았으나 몸은 퇴전했느니라』는 말씀입니다.
이 중에서『몸은 퇴전하지 않았으나 마음이 퇴전하고』란 외견상으로는 신심을 하고 있지만 마음속으로는 의심으로 인해서 신심을 잃고 있는 자를 말합니다.
『마음은 퇴전하지 않았으나 몸은 퇴전했느니라』란 신심은 잃지 않았으나 겁이 많아 대성인과는 관계없는 것 같은 태도를 보이는 자가 이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몸은 퇴전하지 않음』이란 단순히 활동 시간이 없다는 뜻이 아니라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러나 엄밀히 말하면 신앙이란 <어의구전>에『귀명<歸命 : 즉 南無>』을 석(釋)해서『귀(歸)란 색법(色法), 명(命)이란 심법(心法)』이라고 말씀하시듯이 색<身>과 심(心)과 양쪽에 걸치는 것이며 어느 한 쪽을 잃으면 올바른「귀명」<신앙>이라고 말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대성인은 이런 예들을 드시면서 시조깅고에게 현재의 공덕만을 기뻐하지 말고 더욱더 강성한 신앙할 것을 타이르시고 있는 것입니다.

*「공사에 걸친 대난」이란, 니치렌 대성인이 묘법홍통으로 인하여 당하신 여러 대난을 말합니다. 대성인이 받으신 대난 중에서도 마쓰바가야쓰의 법난(1260년 8월), 이즈유죄(1261년 5월), 고마쓰바라의 법난(1264년 11월), 다쓰노구치 및 사도유죄(1271년 9월)의 네 번에 걸친 난은 신명에 까지 미치는 도장와석의 대난이었습니다.
「공(公)」의 대난은 공권력에 의한 박해이며 이즈와 사도의 유죄가 이것에 해당합니다. 마쓰바가야쓰, 고마쓰바라의 법난 등은 「사(私)」의 대난에 해당된다고 생각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