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학 Q&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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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법화경의 지해(교학부)
관리자
2017.11.13
1,082
안녕하십니까?
한국 SGI교학부입니다.
지해와 지혜
1. 지해(智解) : 지혜에 의해서 사물의 내용을 해료(解了=깨달음)하는 것.(지해(智解)란 지금까지 얻은 지식과 자신의 지혜를 기초로 하여 대상(對象)을 이해하는 것)
2. 지혜(智慧) : 사물(事物).사상(事象)의 시비.선악을 분별하고 진리를 꿰뚫어 보는 인식작용을 말함. 제법의 실상을 비추어, 무명을 타파하고 깨달음을 얻는 작용을 말함.
* 마키구치 선생님은 “불법을 ‘지해(智解)’하려고 하면 안 된다. ‘신해(信解)’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비록 어렵게 느꼈다 해도 광포의 실천에 힘쓰면서 ‘이해하자’, ‘알고 싶다’고 육박함으로써 자신의 경애를 열 수 있습니다. 한 구절이라도 좋고 한줄이라도 좋으니 날마다 어서를 배독함으로써 자신의 생명을 최고로 빛낼 수 있습니다. <세계를 비추는 태양의 불법 제19회 신앙의 기본 ‘신행학’ ③>
* 대성인은 법화경의 행자로서 자신의 경지(境地)를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니치렌(日蓮)의 법화경의 지해(智解)는 천태·전교에는 천만(千萬)의 일분(一分)도 미치지 못하지만, 난을 견디고 자비가 뛰어났음은 공구(恐懼)함마저 가질 것이로다”(어서 202쪽)라고. 법화경에 대한 지해의 깊이는 가령 천태·전교가 뛰어나다고 할지라도 ‘인난’과 ‘자비’에서는 대성인이 훨씬 뛰어나다는 말씀입니다. 물론 말법의 홍통에서도 법화경에 대한 ‘지해’, 즉 도리를 다하여 논리정연하게 교의(敎義)를 전개하는 것은 중요합니다. 대성인도 이론적 해명의 공적을 천태와 전교에 양보하는 일은 있어도 그 필요성을 부정하시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그 이상으로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악세말법(惡世末法)에 법을 넓히고 고뇌에 빠진 사람들을 구제하는 ‘인난’과 ‘자비’입니다. 이 ‘인난’과 ‘자비’는 표리일체(表裏一體)입니다. 민중구제의 자비가 깊을수록 난을 견디고 법을 넓히는 힘도 뛰어납니다. ‘난을 견디다’란 결코 일방적인 수동(受動)의 모습이 아닙니다. 말법은 악(惡)이 강한 시대입니다. 그 악을 깨고 사람들을 각성시키는 사명을 자각한 사람은 모두 난과 계속 투쟁할 각오를 필요로 하기 때문입니다. 그 근본에는 말법의 중생에게 방법의 길을 걷게 하지 않겠다는 엄한 자비가 있습니다. 이 사랑의 마음이 말법의 민중구제에 직결합니다. <이케다 SGI회장의 개목초 강의> 제7회 ‘법화경(法華經)의 행자(行者)
* 니치렌(日蓮)대성인은「혜(慧)또한 감당하지 못하면 신(信)으로써 혜(慧)에 대(代)하고 신(信)의 자(字)를 간요로 삼으셨느니라」(어서 339쪽)라고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우리들은 감사하게도 어본존을 믿음으로써 지혜에 대신할 수 있는 것입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은지 알 수 없을 경우나 어느 것을 선택하는 것이 좋은지 모를 때 등, 자신의 지식과 경험, 지혜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으므로 어본존께 기원할 수 밖에 없다고 정해서 제목을 올리는 것입니다. 그러면「이신대혜」(신(信)으로써 지혜에 대신함)라고 하여「이렇게 하자」라고 훌륭한 지혜가 솟아나고 그대로 했을 경우에는 틀림없이 결과는 훌륭하게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케다(池田)선생님은「제목을 많이 불러가는 사람이 최고로 머리가 좋아지는 것입니다」라고 이야기하셨습니다.「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란 부처님의 지혜이고 우주와 생명을 꿰뚫고 있는 근본의 법리이기 때문에 어본존께 제목을 봉창할 때에 생명의 근저에서 최고의 지혜가 솟아나는 것입니다. 그 지혜를 발휘하면서 행복하고 올바른 인생의 길을 걸어 갔으면 합니다.
한국 SGI교학부입니다.
지해와 지혜
1. 지해(智解) : 지혜에 의해서 사물의 내용을 해료(解了=깨달음)하는 것.(지해(智解)란 지금까지 얻은 지식과 자신의 지혜를 기초로 하여 대상(對象)을 이해하는 것)
2. 지혜(智慧) : 사물(事物).사상(事象)의 시비.선악을 분별하고 진리를 꿰뚫어 보는 인식작용을 말함. 제법의 실상을 비추어, 무명을 타파하고 깨달음을 얻는 작용을 말함.
* 마키구치 선생님은 “불법을 ‘지해(智解)’하려고 하면 안 된다. ‘신해(信解)’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비록 어렵게 느꼈다 해도 광포의 실천에 힘쓰면서 ‘이해하자’, ‘알고 싶다’고 육박함으로써 자신의 경애를 열 수 있습니다. 한 구절이라도 좋고 한줄이라도 좋으니 날마다 어서를 배독함으로써 자신의 생명을 최고로 빛낼 수 있습니다. <세계를 비추는 태양의 불법 제19회 신앙의 기본 ‘신행학’ ③>
* 대성인은 법화경의 행자로서 자신의 경지(境地)를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니치렌(日蓮)의 법화경의 지해(智解)는 천태·전교에는 천만(千萬)의 일분(一分)도 미치지 못하지만, 난을 견디고 자비가 뛰어났음은 공구(恐懼)함마저 가질 것이로다”(어서 202쪽)라고. 법화경에 대한 지해의 깊이는 가령 천태·전교가 뛰어나다고 할지라도 ‘인난’과 ‘자비’에서는 대성인이 훨씬 뛰어나다는 말씀입니다. 물론 말법의 홍통에서도 법화경에 대한 ‘지해’, 즉 도리를 다하여 논리정연하게 교의(敎義)를 전개하는 것은 중요합니다. 대성인도 이론적 해명의 공적을 천태와 전교에 양보하는 일은 있어도 그 필요성을 부정하시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그 이상으로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악세말법(惡世末法)에 법을 넓히고 고뇌에 빠진 사람들을 구제하는 ‘인난’과 ‘자비’입니다. 이 ‘인난’과 ‘자비’는 표리일체(表裏一體)입니다. 민중구제의 자비가 깊을수록 난을 견디고 법을 넓히는 힘도 뛰어납니다. ‘난을 견디다’란 결코 일방적인 수동(受動)의 모습이 아닙니다. 말법은 악(惡)이 강한 시대입니다. 그 악을 깨고 사람들을 각성시키는 사명을 자각한 사람은 모두 난과 계속 투쟁할 각오를 필요로 하기 때문입니다. 그 근본에는 말법의 중생에게 방법의 길을 걷게 하지 않겠다는 엄한 자비가 있습니다. 이 사랑의 마음이 말법의 민중구제에 직결합니다. <이케다 SGI회장의 개목초 강의> 제7회 ‘법화경(法華經)의 행자(行者)
* 니치렌(日蓮)대성인은「혜(慧)또한 감당하지 못하면 신(信)으로써 혜(慧)에 대(代)하고 신(信)의 자(字)를 간요로 삼으셨느니라」(어서 339쪽)라고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우리들은 감사하게도 어본존을 믿음으로써 지혜에 대신할 수 있는 것입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은지 알 수 없을 경우나 어느 것을 선택하는 것이 좋은지 모를 때 등, 자신의 지식과 경험, 지혜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으므로 어본존께 기원할 수 밖에 없다고 정해서 제목을 올리는 것입니다. 그러면「이신대혜」(신(信)으로써 지혜에 대신함)라고 하여「이렇게 하자」라고 훌륭한 지혜가 솟아나고 그대로 했을 경우에는 틀림없이 결과는 훌륭하게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케다(池田)선생님은「제목을 많이 불러가는 사람이 최고로 머리가 좋아지는 것입니다」라고 이야기하셨습니다.「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란 부처님의 지혜이고 우주와 생명을 꿰뚫고 있는 근본의 법리이기 때문에 어본존께 제목을 봉창할 때에 생명의 근저에서 최고의 지혜가 솟아나는 것입니다. 그 지혜를 발휘하면서 행복하고 올바른 인생의 길을 걸어 갔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