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학 Q&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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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개목초 어서에서
관리자
2016.06.07
1,670
안녕하십니까?
한국SGI교학부입니다.
1. 주사친(主師親)의 삼덕(三德)이란, 사전의 의미로, 주덕(主德)은 중생을 수호하는 힘, 작용을 말합니다. 사덕(師德)은 중생을 지도하고 교화하는 힘, 작용을 말합니다. 친덕(親德)은 중생을 자애하는 활동을 말합니다
2. 〈개목초〉에서 만인이 존경해야 할 대상으로 ‘주덕’ ‘사덕’ ‘친덕’ 등 삼덕을 말씀하셨습니다. 또 배우고 익혀야 할 사상과 종교로서 유·외·내, 즉 유교와 도교 등 중국의 제교, 인도의 외도 즉 불교 이외의 제교, 그리고 내도인 불교 등 셋을 말씀하셨습니다. 요컨대 이들은 당시 일본으로 들어온 세계의 모든 주요 사상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전 세계의 주요 사상과 종교를 검토하여 일체중생이 진실로 존경해야 할 주사친의 삼덕을 갖춘 존재가 누구인지를 명확하게 밝히는 것이〈개목초〉어서의 골격이며 일관된 주제입니다. 이들 사상과 종교에서 설한 신불(神佛)·보살·성인·현인 등은 어떤 형태든 주사친 중 어느 한 가지 덕을 갖추었다고 설했으며, 실제로 많은 사람들에게서 존경받았습니다. 그러나 대성인이 여기서 말씀하시려는 핵심은 ‘누가 주사친의 삼덕을 모두 겸비한 존재인가’라는 점입니다. 삼덕을 ‘구비(具備)’해야 일체중생에게 존경받을 자격이 있는 존재기 때문입니다.
〈개목초〉에 있듯이, 고대 인도와 중국의 사상·종교는 창조신(創造神)이나 시비(是非)를 가리는 신(神) 또는 이상적인 황제, 그리고 가르침을 남기는 성인·현인 등에 주사친의 삼덕이 있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어떤 것이라 해도 삼덕구비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존귀함과 위엄, 힘 등 주덕에 해당하는 것은 갖추었으나 부모의 자애와 같은 덕을 볼 수 없는 이가 있습니다. 반대로 자애의 덕은 있어도 존귀함이 없는 이도 있습니다. 또 존귀함이나 자애는 있어도 중생을 이끄는 법을 설하지 않으므로 스승의 덕을 볼 수 없는 이도 있습니다. 이와 같이 삼덕 중의 일부분만 갖춘 경우가 많습니다.
대성인은 〈개목초〉에서 유교·외도·내도의 주사친을 논하면서 각각의 가르침이 어떤 ‘법’을 설하는지 또 그 ‘법’에 준해 중생이 어떤 실천을 하는지에 초점을 맞추어 검토하셨습니다.
삼덕은 중생과의 관계에서 나타나는 불·보살이나 제존(諸尊)의 덕이므로 중생에게 무엇을 가르치고 어떤 실천을 촉구할 것이냐라는 점이 진정한 삼덕을 터득하는 데 매우 중요하다는 것은 말할 나위도 없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검토하면, 석존만이 일체중생에 대해 삼덕을 구비하고 있는 것이며, 중국의 유교나 인도 외도(外道)의 제존·제사(諸師)는 ‘인과(因果)’를 모르기 때문에 진실한 주사친이라고 할 수 없다고 결론을 내릴 수 있습니다.
대성인은 〈개목초〉에서 ‘오중(五重)의 상대(相對)’를 통해서 진정한 ‘성불의 인과’인 ‘본인본과(本因本果)’를 밝히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법화경 본문수량품의 문저에 비침되어 있는 진실한 십계호구·일념삼천입니다.
한국SGI교학부입니다.
1. 주사친(主師親)의 삼덕(三德)이란, 사전의 의미로, 주덕(主德)은 중생을 수호하는 힘, 작용을 말합니다. 사덕(師德)은 중생을 지도하고 교화하는 힘, 작용을 말합니다. 친덕(親德)은 중생을 자애하는 활동을 말합니다
2. 〈개목초〉에서 만인이 존경해야 할 대상으로 ‘주덕’ ‘사덕’ ‘친덕’ 등 삼덕을 말씀하셨습니다. 또 배우고 익혀야 할 사상과 종교로서 유·외·내, 즉 유교와 도교 등 중국의 제교, 인도의 외도 즉 불교 이외의 제교, 그리고 내도인 불교 등 셋을 말씀하셨습니다. 요컨대 이들은 당시 일본으로 들어온 세계의 모든 주요 사상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전 세계의 주요 사상과 종교를 검토하여 일체중생이 진실로 존경해야 할 주사친의 삼덕을 갖춘 존재가 누구인지를 명확하게 밝히는 것이〈개목초〉어서의 골격이며 일관된 주제입니다. 이들 사상과 종교에서 설한 신불(神佛)·보살·성인·현인 등은 어떤 형태든 주사친 중 어느 한 가지 덕을 갖추었다고 설했으며, 실제로 많은 사람들에게서 존경받았습니다. 그러나 대성인이 여기서 말씀하시려는 핵심은 ‘누가 주사친의 삼덕을 모두 겸비한 존재인가’라는 점입니다. 삼덕을 ‘구비(具備)’해야 일체중생에게 존경받을 자격이 있는 존재기 때문입니다.
〈개목초〉에 있듯이, 고대 인도와 중국의 사상·종교는 창조신(創造神)이나 시비(是非)를 가리는 신(神) 또는 이상적인 황제, 그리고 가르침을 남기는 성인·현인 등에 주사친의 삼덕이 있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어떤 것이라 해도 삼덕구비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존귀함과 위엄, 힘 등 주덕에 해당하는 것은 갖추었으나 부모의 자애와 같은 덕을 볼 수 없는 이가 있습니다. 반대로 자애의 덕은 있어도 존귀함이 없는 이도 있습니다. 또 존귀함이나 자애는 있어도 중생을 이끄는 법을 설하지 않으므로 스승의 덕을 볼 수 없는 이도 있습니다. 이와 같이 삼덕 중의 일부분만 갖춘 경우가 많습니다.
대성인은 〈개목초〉에서 유교·외도·내도의 주사친을 논하면서 각각의 가르침이 어떤 ‘법’을 설하는지 또 그 ‘법’에 준해 중생이 어떤 실천을 하는지에 초점을 맞추어 검토하셨습니다.
삼덕은 중생과의 관계에서 나타나는 불·보살이나 제존(諸尊)의 덕이므로 중생에게 무엇을 가르치고 어떤 실천을 촉구할 것이냐라는 점이 진정한 삼덕을 터득하는 데 매우 중요하다는 것은 말할 나위도 없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검토하면, 석존만이 일체중생에 대해 삼덕을 구비하고 있는 것이며, 중국의 유교나 인도 외도(外道)의 제존·제사(諸師)는 ‘인과(因果)’를 모르기 때문에 진실한 주사친이라고 할 수 없다고 결론을 내릴 수 있습니다.
대성인은 〈개목초〉에서 ‘오중(五重)의 상대(相對)’를 통해서 진정한 ‘성불의 인과’인 ‘본인본과(本因本果)’를 밝히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법화경 본문수량품의 문저에 비침되어 있는 진실한 십계호구·일념삼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