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학 Q&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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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
교학관리자
2006.01.13
1,202
안녕하세요? 교학담당자입니다.
답변이 늦어져서 죄송합니다.
월간법련 04년 06월호의 내용을 실어 드립니다. 참조바랍니다.
불도수행의 공덕은 헤아릴 수 없이 크지만 그중에서 우리들은 ‘인간혁명’을 제일로 중시합니다. 상쾌하고 강인한 생명력이야말로 행복한 인생을 사는 최고의 원동력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인간혁명’한 인간상은 어떤 모습일까요? 니치렌 대성인께서는 ‘상락아정’의 사덕(四德)을 통해 진실한 인간상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상(常)’이란 과거, 현재, 미래를 꿰뚫는 영원한 생명관에 근본을 둔 삶의 자세입니다. 세상의 변천에 무감각한 이전경의 ‘무상(無常)’과 달리 모든 변화를 의연하게 받아들이고 모든 막힘을 적극적으로 타파하는 모습입니다.
‘낙(樂)’이란 모든 불안과 고뇌를 여유로운 경애로 이겨 내고 확신에 찬 일념으로 사물을 정확히 꿰뚫어 보는 힘을 갖춘 생명입니다. 이전경에서 설하는, ‘인생 자체가 괴로움’일 뿐이라고 체념하는 자세와 확연히 다릅니다.
‘아(我)’란 이기주의와 만심에 가득찬 편협한 생명을 창제로 열어 불계를 용현함으로써 무엇에도 분동하지 않는 확고한 자신이 되는 것입니다. 어떤 상황에도 변치 않는 본질<아(我)> 같은 것은 없다는 ‘무아(無我)’의 낮은 생명관과 확실히 다릅니다.
‘정(淨)’이란 여러 가지 번뇌의 더러움과 생명의 탁함에 물들지 않고 오히려 모든 더러움을 씻어 전환하는 강력한 생명력을 말합니다. 세상이 번뇌와 악덕으로 만연하다는 것만 말하는 이전경의 ‘부정(不淨)’의 개념과 다릅니다.
뿌리는 흙탕물 속에 있어도 수면 위로 청정한 꽃을 피우는 연꽃과 같은 강인하고 맑은 인품을 의미하는 것이 ‘정’입니다.
이는 다름 아닌 본존님을 믿고 진지하게 창제에 면려하는 우리들이 목표로 하는 모습이겠지요.
지용의 보살로서 하루하루 성실한 실천 속에서 상락아정이라는 향기로운 덕성을 자신의 생명에 물들여 갑시다.
답변이 늦어져서 죄송합니다.
월간법련 04년 06월호의 내용을 실어 드립니다. 참조바랍니다.
불도수행의 공덕은 헤아릴 수 없이 크지만 그중에서 우리들은 ‘인간혁명’을 제일로 중시합니다. 상쾌하고 강인한 생명력이야말로 행복한 인생을 사는 최고의 원동력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인간혁명’한 인간상은 어떤 모습일까요? 니치렌 대성인께서는 ‘상락아정’의 사덕(四德)을 통해 진실한 인간상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상(常)’이란 과거, 현재, 미래를 꿰뚫는 영원한 생명관에 근본을 둔 삶의 자세입니다. 세상의 변천에 무감각한 이전경의 ‘무상(無常)’과 달리 모든 변화를 의연하게 받아들이고 모든 막힘을 적극적으로 타파하는 모습입니다.
‘낙(樂)’이란 모든 불안과 고뇌를 여유로운 경애로 이겨 내고 확신에 찬 일념으로 사물을 정확히 꿰뚫어 보는 힘을 갖춘 생명입니다. 이전경에서 설하는, ‘인생 자체가 괴로움’일 뿐이라고 체념하는 자세와 확연히 다릅니다.
‘아(我)’란 이기주의와 만심에 가득찬 편협한 생명을 창제로 열어 불계를 용현함으로써 무엇에도 분동하지 않는 확고한 자신이 되는 것입니다. 어떤 상황에도 변치 않는 본질<아(我)> 같은 것은 없다는 ‘무아(無我)’의 낮은 생명관과 확실히 다릅니다.
‘정(淨)’이란 여러 가지 번뇌의 더러움과 생명의 탁함에 물들지 않고 오히려 모든 더러움을 씻어 전환하는 강력한 생명력을 말합니다. 세상이 번뇌와 악덕으로 만연하다는 것만 말하는 이전경의 ‘부정(不淨)’의 개념과 다릅니다.
뿌리는 흙탕물 속에 있어도 수면 위로 청정한 꽃을 피우는 연꽃과 같은 강인하고 맑은 인품을 의미하는 것이 ‘정’입니다.
이는 다름 아닌 본존님을 믿고 진지하게 창제에 면려하는 우리들이 목표로 하는 모습이겠지요.
지용의 보살로서 하루하루 성실한 실천 속에서 상락아정이라는 향기로운 덕성을 자신의 생명에 물들여 갑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