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학 Q&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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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1272년에서 1273년 대성인님미 사도에 계실때 가마쿠라에서 일어난 정변에 대해서 상세하게 알려주십시요
관리자
2014.01.13
1,630
안녕하십니까?
한국SGI교학부입니다.
자계반역난(自界叛逆難)이란 약사경에서 설하는 칠난(七難) 중에 하나로 동료 간의 분쟁, 내란 등을 가리킵니다. 대성인은 <입정안국론>에서 법화경에 대한 방법(謗法)이 이어지면 이 자계반역난과 타국침핍난(외국의 침략)이 반드시 일어난다고 예언하고 경고하셨습니다.
대성인이 사도에 유배중이시던 1272년 2월에 호조 일문(一門)에서 내분이 일어나 가마쿠라와 교토에서 전투가 일어났습니다<2월 소동>. 대성인이 다쓰노구치 법난 때 예언한 자계반역의 난이 불과 150일 후에 현실로 된 것입니다.
2월 소동이란 1272년 2월에 교토와 가마쿠라에서 일어난 내란(호조 도키스케의 난)을 말합니다. 싯켄(執權)직에 있던 호조 도키무네의 서형(庶兄)이며 로쿠하라단다이(조큐의 난 뒤에 설치한 가마쿠라 막부의 조정 감시기관) 미나미가타인 호조 도키스케가 일방적으로 반란 혐의를 뒤집어쓰고, 막부의 명을 받은 로쿠하라단다이 기타가타인 호조 요시무네에게 살해됐습니다. 또 나고에 도키아키라와 노리토키가 이 사건과 연루돼 가마쿠라에서 살해됐습니다. 말하자면 호조 일족의 자기들끼리의 골육상잔(骨肉相殘)인 셈입니다.
“만약 니치렌이 (사도에) 유죄 당하지 않고 가마쿠라에 있기라도 했다면 지난 번에 있었던 싸움(1272년 2월 호조 일족의 내란=)에 연루되어 틀림없이 타살(打殺)당했을 것이다.”(어서 1164쪽, 통해)라는 어서처럼 대성인은 사도유죄라는 큰 난을 당하셨습니다. 그러나 사도유죄 덕분에 전란(戰亂)을 피해 목숨을 구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더욱이 “대사(大事)로 되고 보면 반드시 커다란 소동이 행(幸)으로 된다.”(어서 1164쪽, 통해)라고도 말씀하셨습니다.
묘법 세계에서는 모든 것에 의미가 있습니다. 모든 것이 부처의 뜻입니다.
결국 막부는 대성인의 존재를 무시할 수가 없게 되어, 최고 집권자인 도키무네는 대성인의 유죄를 풀어주는 결정을 내렸습니다. 1274년 2월의 일이었습니다.
한국SGI교학부입니다.
자계반역난(自界叛逆難)이란 약사경에서 설하는 칠난(七難) 중에 하나로 동료 간의 분쟁, 내란 등을 가리킵니다. 대성인은 <입정안국론>에서 법화경에 대한 방법(謗法)이 이어지면 이 자계반역난과 타국침핍난(외국의 침략)이 반드시 일어난다고 예언하고 경고하셨습니다.
대성인이 사도에 유배중이시던 1272년 2월에 호조 일문(一門)에서 내분이 일어나 가마쿠라와 교토에서 전투가 일어났습니다<2월 소동>. 대성인이 다쓰노구치 법난 때 예언한 자계반역의 난이 불과 150일 후에 현실로 된 것입니다.
2월 소동이란 1272년 2월에 교토와 가마쿠라에서 일어난 내란(호조 도키스케의 난)을 말합니다. 싯켄(執權)직에 있던 호조 도키무네의 서형(庶兄)이며 로쿠하라단다이(조큐의 난 뒤에 설치한 가마쿠라 막부의 조정 감시기관) 미나미가타인 호조 도키스케가 일방적으로 반란 혐의를 뒤집어쓰고, 막부의 명을 받은 로쿠하라단다이 기타가타인 호조 요시무네에게 살해됐습니다. 또 나고에 도키아키라와 노리토키가 이 사건과 연루돼 가마쿠라에서 살해됐습니다. 말하자면 호조 일족의 자기들끼리의 골육상잔(骨肉相殘)인 셈입니다.
“만약 니치렌이 (사도에) 유죄 당하지 않고 가마쿠라에 있기라도 했다면 지난 번에 있었던 싸움(1272년 2월 호조 일족의 내란=)에 연루되어 틀림없이 타살(打殺)당했을 것이다.”(어서 1164쪽, 통해)라는 어서처럼 대성인은 사도유죄라는 큰 난을 당하셨습니다. 그러나 사도유죄 덕분에 전란(戰亂)을 피해 목숨을 구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더욱이 “대사(大事)로 되고 보면 반드시 커다란 소동이 행(幸)으로 된다.”(어서 1164쪽, 통해)라고도 말씀하셨습니다.
묘법 세계에서는 모든 것에 의미가 있습니다. 모든 것이 부처의 뜻입니다.
결국 막부는 대성인의 존재를 무시할 수가 없게 되어, 최고 집권자인 도키무네는 대성인의 유죄를 풀어주는 결정을 내렸습니다. 1274년 2월의 일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