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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학 Q&A

 

  • [RE]아부쓰보

  • 관리자

  • 2013.09.05

  • 1,322

안녕하십니까? 한국SGI교학부입니다.
1. 아부쓰보는 대성인이 사도유죄가 되어 쓰카하라의 삼매당에 들어가셨을 때에 대성인을 논힐(論詰)(논하여 힐난함)하려고 하다가(1272년 (문영 9년) 3월) 도리어 파절되어 염불을 버리고 부인인 센니치니와 함께 귀의했다고 한다. 아부쓰보는 그 신분도 원래 사도에 살고 있던 재가택주(집과 논밭을 가진 자작농)인 듯 했으며, 지두도 유력한 무사도 아닌 '서민'의 한 사람이었다. <독일.오스트리아 합동 SGI최고회의 1991. 6. 5>
2. 아부쓰보와 센니치니 내외는 니치렌 대성인의 사도유죄 중에 사도에서 대성인 문하가 됐다. 그때 아부쓰보 내외는 심한 감시를 받는 대성인을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지키고 떠받쳤다. 대성인은 “아부쓰보에게 궤를 등에 지워서 한밤중에 여러 번 찾아오신 일들을 어느 세상엔들 잊겠느뇨”(어서 1313쪽)라고 마음 가득 고마운 마음을 쓰셨다. 내외는 사도유죄가 사면된 대성인이 미노부에 들어가신 후에도 대성인의 가르침대로 순수한 신심에 힘썼다. 아부쓰보는 먼 길을 마다하지 않고 수차례 미노부를 방문했다.(중략)
대성인이 “북국(北國)의 도사(導師)”(어서 1304쪽)라고도 “아부쓰보 상인(上人)”(어서 1305쪽)이라고도 찬탄하신 아부쓰보는 1279년에 서거했다. 아들 도쿠로는 아버지의 유지(遺志)를 받들어 묘법 홍통에 힘썼다. 온 가족이 사도를 무대로 니치렌 대성인의 제자로서 모범을 보인 것이다. <생사일대사혈맥초강의<제13회(完)>>
3. 사도에서도 염불자의 힘은 막강하여, 염불을 버리라고 주장하는 니치렌을 그들은 몹시 증오했다. 염불을 믿는 자들 중에서도 특히 강성한 한 신자가 있었다. 그 사람은 바로 아부쓰보였다. 아부쓰보는 고령이었지만, 니치렌이 사도에 유배되어 온 사실을 듣고 ‘내 손으로 그 악승(惡僧)을 퇴치하겠다!’며 쓰카하라로 쳐들어갔다. 아부쓰보는 니치렌을 보자마자 심하게 다그쳤다. “어찌하여 염불을 비방하는가?” 니치렌은 그를 타이르듯이 경문에 비추어 염불의 그릇됨을 논리 정연하게 말했다. 그 모습에는 청렴함과 위엄, 그리고 인격의 빛이 서려 있었다. 니치렌의 법문을 듣고 있는 사이 아부쓰보는 공격성이 사라지고 눈앞이 확 트이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리하여 아부쓰보는 그 즉석에서 염불을 버리고 니치렌에게 귀의했다. 아부쓰보는 아내 센니치니에게도 염불을 버리게 하고, 그 후로는 신심의 정성을 다하여 니치렌을 외호(外護: 외부에서 보호해 줌)하게 되었다. 그리고 때로는 감시의 눈을 피해 음식물을 비롯하여 종이 등 필요한 물품도 공양했다. <신 인간혁명 제11권, 약진>
4. 어서사전 1001쪽 참고 (원래 준도쿠상황의 북면의 무사로서 1221년 상황이 사도에 유배되었을 때 함께 사도로 가서 정주했다고 전해지고 있다.)
5. 니치렌대성인어서전집 하권 제자단나등열전 11,12쪽 참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