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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학 Q&A

 

  • [RE]일안의거북이

  • 관리자

  • 2013.05.15

  • 1,554

안녕하십니까?
한국SGI교학부입니다.

<일안(一眼)의 거북>
큰바다 속 깊이깊이 한마리의 거북이가 살고 있었습니다. 이 거북은 외눈이어서 「일안의 거북」이라고 하며 손도 발도 없습니다. 더구나 배가 뜨겁기는 철판을 달군 것과 같았고, 등딱지가 차겁기로는 설산(雪山)과 흡사했습니다. 이 거북이 밤낮으로 쉴사이 없이 입버릇처럼 말하고 있는 것은 「이 뜨거운 배를 식히고, 차거운 등딱지를 따듯하게 하고 싶다」는 것이었습니다. 적전단이라는 성목(聖木)이 있는데, 이 나무는 그 거북의 배를 식힐 수 있는 나무이며, 거북은 어떻게 해서든지 적전단의 유목(流木)을 찾아 올라가서 배를 식히고 등을 쬐어 따듯하게 하려고 원했습니다. 그러나 자연의 법리(法理)로서, 깊은 바다속에서 천년에 한번밖에 떠오를수 없는 거북인 것입니다. 그리고 떠올랐다 하더라도 이 나무를 만나기란 어려운 일입니다. 큰바다는 한없이 넓고 거북은 작습니다. 게다가 부목(浮木)은 대단히 희귀한 것입니다. 보통 부목은 있지만 적전단의 부목은 절대로 만날 수가 없습니다, 하물며 거북의 배의 크기에 맞추어 조각한 것 같은 ,적당한 크기의 구멍이 있는 부목을 만난다는 것은 지극히 곤란한 것입니다. 지나치게 커서 구멍에 몸이 빠져버리면 등딱지를 따듯하게 할 수 없을뿐더러, 구멍에서 빠져나올 수 도 없습니다. 반대로 구멍이 작아서 배를 구멍에 넣을 수 없으면 파도에 밀려 떨어져 다시 바다속에 가라 앉고 말 것입니다. 비록 불가사의하게도, 적당한 구멍이 있는 적전단의 부목을 만났다 하더라도, 거북은 외눈밖에 없으므로 부목이 서쪽으로 흐르고 있는것을 동쪽으로 착각하고, 타려고 급히 헤엄쳐 가면 점점 부목으로부터 멀어져 가고 맙니다, 또 동쪽으로 흐르는 것을 서쪽으로 착각을 일으킵니다. 이와 같이 무량무변겁(劫)이라는 긴 세월이 흘러도, 일안의 거북은 적당한 구멍이 있는 적전단을 만나기 어렵다는 것입니다. 적전단 외의 소나무가 떡갈나무 등의 부목을 만나기 쉽지만 적전단의 부목을 만나기는 어렵다란, 법화경 이외의 일체경은 만나기 쉽고 법화경에는 만나기 어렵다는 것을 비유한 것입니다. 또한 비록 적전단의 부목을 만났더라도 적당한 크기의 구멍을 만나기 어렵다는 것은 법화경은 만나도, 법화경의 간심(肝心)인 南無妙法蓮華經를 만나 제목을 부르게 되기가 어렵다는 것을 비유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동쪽을 보고 서쪽으로, 서쪽을 보고 동쪽으로 착각을 한다는 것은 중생이 현명한 체 하지만, 뛰어난 법을 열등하다고, 열등한 것을 뛰어났다고 생각하는 것을 말합니다.니치렌대성인(大聖人)은 “인신은 얻기 어려워 천상(天上)의 실낱을 해저의 바늘에 꿰는 것보다도 드물고 불법은 듣기 어려우니, 일안(一眼)의 거북이 부목(浮木)을 만나기보다도 어렵소이다”(성우문답초,어서 494쪽)고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받기 어려운 인신’을 받아 불법을 만나고 또 정법(正法)에 귀의(歸依)한다는 것은 상상을 초월하는 난사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해낸 우리들은 희유(希有)의 복운을 가진 사람입니다.불전(佛典)에 설해져 있는 ‘일안(一眼)의 거북’은 육도윤회(六道輪廻) 속에서 사람으로 태어나 묘법(妙法)과 만나게 되는 것의 지난(至難)함을 비유하고 있는 것입니다.
일안의 거북은 잡아함경(雜阿含經)의 맹귀경(盲龜經)이나 법화경(法華經) 묘장엄왕(妙莊嚴王) 본사품(本事品) 제27(第二十七)등에 설해져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