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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학 Q&A

 

  • 물과같은신심

  • 관리자

  • 2010.09.15

  • 995

안녕하십니까?
한국SGI교학부입니다.

‘물같은 신심’ 에 대하여
화광신문에 실렸던 내용 세가지입니다.


1. 깨끗한 물과 같은 신심 관철

대저 현재, 법화경(어본존)을 믿는 사람이 있다. 불과 같이 믿는 사람도 있다. 혹은 물과 같이 믿는 사람도 있다. 불법의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타오르는 것과 같이 환희하지만 멀어지면 불법을 버리는 마음이 생긴다. 물과 같이 믿는다는 것은 항상 퇴하지 않고 믿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새로운 시대를 열고, 사회를 소생시켜가는 것이 우리들의 책무입니다. 또 각자 여러가지 분야에서 사회의 승리자가 되어가는 것이 그 구체적 실천의 하나의 모습 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이 장대한 목표를 달성하는 것은 하루 아침에 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하루하루의 노력의 집적이 필요하며 그 최대의 원동력은 신심의 힘이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그래서 어떠한 신심의 모습이 바람직한 것인가 신심의 본연의 자세에 대해서 생각해 보기로 합니다.

이 어문에 있듯이 불과 같은 신심과 물과 같은 신심이라는 두종류가 있습니다. 불의 신심이란 일시적으로 감격하고 타오르는 듯한 정열을 가지고 열심히 활동하지만 어느새 멀어지고 타성에 흘러 결국은 퇴전하고 생활에 비참한 모습을 나타내는 듯한 신심을 말합니다.
또 비상식적인 행동을 취해서 세간에 폐를 끼치는 신심의 모습도 불의 신심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반대로 물과 같은 신심이란 강의 물이 어디까지나 멈추지않고 흐르듯이 꾸준하면서도 나날이 착실하게 마음을 열고 확신을 깊게해서 전진하며 생활에 명익(冥益)이 나타나오는 신심을 말합니다.
우리들은 일시적인 감정이나 아견, 생활의 실패 등으로 신심이 좌우되어서는 결코 안됩니다.
생애 깨끗한 물과 같은 신심을 관철해서 사회인으로서 승리하는 것이야말로 성불을 위한 직도입니다.
신심은 창제로 시작해서 창제로 끝난다고 하는데 응용의 시대, 활동이 다양화된 신시대가 되면 될수록 신심의 기본이 중요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선 우리들 한사람 한사람이 나약한 마음을 버리고 새로운 결의에 입각해 우리들 한사람 한사람이 진지하게 열심히 창제하는 것입니다. 근행창제의 실천에 전혼을 기울이고 있는가 아닌가를 재점검해 보지 않겠습니까.

2. 중국의 회남자(准南子)의 인간훈(人間訓)에도「대저 음덕이 있는 자는 반드시 양보가 있고, 음행(陰行)이 있는자는 반드시 소명(昭名)이 있도다」라고 있는데, 불법에서는 그것을 생명의 인과율(因果律)로서 포착하고 있다.
비록 다른 사람이 보고있던 보고있지 않던, 자신이 행한 선행은 조금의 오차도 없이 자기의 생명에 인(因)으로서 새겨져 쌓인다. 그것이 생명의 법이라는 것이다. 한편으로 생각하면 매우 엄할지도 모르겠지만, 그래야만 만인에게 평등하게 되는 것이다. 불법에는 「명(冥)의 조람(照覽)」이라는 말이 있는데, 즉 아무도 몰라도 제천선신(諸天善神)과 부처는 일체중생의 일념과 언동을 분명히 보고 알고있다는 뜻이다. 음덕과 똑같은 원리인 것이다.
요는 음덕을 얼마만큼 쌓는가 하는 것이다. 지금 말한바와 같이 선행은 자신의 생명속에 축적되어 가기 때문에 밖에서 볼 수 있는 것이 아니어서, 그런 뜻에서 "음"이라고도 한다. 우리들이 쌓은 음덕이 현실면에서 꽃피는 것을 양보라고 한다.
광선유포를 위해 누가 보고 있지 않더라도 밤낮으로 정진하고 있는 자세가 최대최고의 음덕의 실천인 것이다. 음덕은 반드시 양보로 나타나지 않을 리가 없다. 물이 흐르는 듯한 신심을 지속한 사람들의 복운과 공덕에 가득한 모습, 가정을 보면 분명할 것이다.


3. 제목의 공덕은 쌓이고 쌓여 장래, 반드시 꽃핀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긴 인생에는 취업, 결혼, 대인관계, 병 등등 죽을 때까지 여러가지의 문제, 고뇌, 재난을 만나는 것입니다. 누구라도 인생의 폭풍우나 파도를 피할 수는 없습니다. 문제는 그때 대처하는 방법입니다.
평소에 물이 흐르듯이 창제를 거듭하고 있는 사람과 그렇지 않는 사람과는 괴로움이 전혀 다릅니다. 언제나 진지한 제목(題目)에 철저한 사람은 훌륭하게 그것을 극복하고 변독위약(變毒爲藥)하여 대(大)성장할 수 있습니다. 그때 그 사람은 축적된 제목의 위대한 공력(功力)을 실감할 수 있겠지요.
반대로 평소에 제목의 축적을 게을리한 사람은 인생의 폭풍우에 농락당하여 지옥의 생활을 체험, 그것을 극복하는데 대단한 노력을 필요로 하고 몹시 괴로운 것입니다. 제목의 힘을 경시(輕視)하는 일은 있어서는 안됩니다.
제목을 지속하지 않는 사람은 신심(信心)을 반성하지 않으면 현명(賢明)하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 제목을 할 수 있는 한 부르려고 실천하는 사람이야말로 인생의 현인(賢人)인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