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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학 Q&A

 

  • 다쓰노구치법난

  • 관리자

  • 2010.08.16

  • 2,012

안녕하십니까?
한국SGI교학부입니다.

다쓰노구치법난의 배경에 대하여.
료칸의 기우와 교빈소장(1271년 6월~9월)
 
1271년은 전국적으로 가뭄이 심해 심각한 기근으로 이어졌습니다. 이에 막부는 진언율종의 승려인 고쿠라쿠사 료칸에게 기우제를 지내도록 명령합니다.
이 기우제 소식을 전해 들은 대성인은 료칸에게 “7일 안에 비를 내리게 한다면 니치렌은 료칸의 제자가 되리라. 만약 내리지 않으면 법화경에 귀의하라”는 말을 전합니다.
6월 18일부터 7일 동안 료칸은 수백 명의 제자를 모아 필사적인 기원을 했으나 한 방울의 비도 내리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다시 7월 4일까지 기한을 연장하여 기원했으나 끝내 비는 내리지 않고 도리어 폭풍만 거세게 불어 료칸은 완전히 패배했습니다.
료칸은 기우제에 실패하면 법화경에 귀의한다는 약속을 일방적으로 어겼을 뿐 아니라 기우제를 지낸 직후인 7월 8일에 조코묘사(淨光明寺)의 승려 교빈(行敏)의 이름으로 대성인에게 문난(問難: 어려운 것을 물음)의 서장을 보냅니다.〈교빈답서〉(어서 179쪽)
이에 대성인은 5일 후인 13일에 ‘사적(私的)인 문답’이 아닌 막부에 의견을 내어 공개법론대결을 하자는 취지의 회답을 보냅니다.
그러나 료칸은 다시 교빈의 명의로 대성인을 비난하는 소장(訴狀)을 문주소에 제출합니다. 문주소에서는 이 소장을 대성인에게 보내고 답변서를 제출하라고 요구했고, 그 답변서가 〈교빈소장회통〉(어서 180쪽)입니다.
교빈소장에서는 대성인의 교설(敎說)에 대한 여섯 항목 고소 이외에도, 대성인과 그 문하들을 정치·치안상 위험한 집단이라는 여섯 항목을 추가하여 고발합니다.
이는 몽고 내습의 위기에 직면한 막부의 내정(內政) 안정과 치안 유지를 명분으로 대성인을 모함하기 위한 고발이었습니다.
소장과 진장을 교환하고 양쪽을 소환해 대질신문을 해야 했으나, 료칸 등은 공개법론대결을 피하고 호조 일족의 부인이나 미망인들에게 아첨해 막부 권력자를 움직여 대성인에게 ‘참언(讒言)’을 가합니다.
9월 10일, 대성인은 평정소(評定所: 막부의 입법·행정사항을 결정하는 곳)에 소환되어 호조 도쿠소 가(家)의 집사이자 무사인 헤이노사에몬노조 요리쓰나의 심문을 받습니다. 대성인은 당당하게 반론하고 도리어 엄하게 간효하십니다.
이틀 뒤인 9월 12일, 대성인은 요리쓰나에게 〈입정안국론〉과 〈재작일어서〉(어서 183쪽)를 보내어 이틀 전 심문할 때의 ‘불쾌한 대면’은, 오직 적을 물리치고 국토를 안온케 하기 위해 속마음을 털어 놓은 것이라고 훈계하십니다. 그러나 그 지성 어린 간언은 통하지 않았고, 요리쓰나는 대성인을 체포하는 보복을 합니다.
 
다쓰노구치 법난(1271년 9월)
 
기우제에서 패한 료칸의 비열한 책모로 대성인은 9월 12일에 체포되어 같은 날 한밤중에 다쓰노구치에서 참수되기로 결정됐는데, 이것이 바로 ‘다쓰노구치 법난’입니다.
그러나 제천의 작용으로 참수 형장에 혜성이 나타나 막부는 대성인을 참수하지 못하고 사가미지방의 에치로 이송합니다.
결국 대성인을 참수하려던 막부의 계획은 실패로 돌아가고 ‘사도유죄(佐渡流罪)’라는 명목으로 유배를 보냅니다.
그런데 대성인 처벌에 대한 막부 내부의 의견 대립으로 다음 달 10일까지 약 한 달 동안 사가미지방 에치의 혼마로쿠로자에몬노조 저택에 머물게 됩니다.
대성인은 에치에 머물며 모두 여섯 통의 편지를 쓰셨습니다. 그 중 다쓰노구치 법난 때 체포되어 감옥에 들어간 니치로 등 5명에게 준 〈오인토롱어서〉에 “금야(今夜)의 추위에 따라 더욱 내 자신보다도 마음 아픈 것은 이루 다 말할 수 없노라”(어서 1212쪽)는 구절은 제자를 걱정하는 대성인의 깊은 자애가 잘 나타나 있습니다.
또 오타깅고 등에게 준 〈전중경수법문〉(어서 1000쪽)에는 대성인이 대난을 만나는 이유를 말씀하셨습니다.
에치에서 마지막으로 써서 니치로에게 준 〈토롱어서〉(어서 1213쪽)에는 “명일(明日) 사도지방으로 가느니라. 오늘 밤 날씨가 추우니 옥중의 상황이 염려되어 안쓰럽기만 하도다”라고 있듯이 남은 제자와 문하를 염려하는 심정이 잘 나타나 있습니다.
대성인이 에치에서 머무시는 동안, 문하들은 불안한 나날을 보냈지만 대성인에게는 발적현본하여 말법의 어본불로서 위대한 경애를 나타내신 20여 일이었습니다.
 
발적현본(發迹顯本)
 
에치에 계시면서 쓰신 어서에는 지금까지 술작한 어서와 크게 다른 내용이 있습니다.
하나는, 〈전중경수법문〉에서 ‘불경보살’의 실천을 강조하신 점입니다. 지금까지 불경보살은 거의 언급하지 않으셨습니다.
불경보살을 강조한 이유는 법화경을 수행할 때 왜 고난을 만나게 되는가 하는 이유를 가르치시기 위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법화경 권지품 ‘삼류(三類)의 강적’에도 “정법을 수행하고 홍통할 때는 그 시대와 나라에 따라 정법을 방해하는 세력이 반드시 난을 일으킨다. 하물며 말법에서 법화경을 수행하면 난이 나온다”라고 분명히 나와 있고 대성인도 자주 이 점을 가르치셨습니다.
그리고 정법을 수행함으로써 난을 만나는 또 하나의 이유는, 과거세의 숙업에 따른 것임을 불경보살의 예를 들어 가르치십니다. 또 무거운 숙업을 바꾸어〈전중(轉重)〉 가볍게 받고〈경수(輕受)〉 그 죄업을 소멸함으로써 성불할 수 있음을 가르쳐 주십니다.
아마 당시 신도 중에 법화경을 수행하는 대성인과 제자인 자신들이 왜 난을 받는지 의문을 품는 사람들이 생겨 동요가 일어나고 있다는 상황을 대성인이 보고받고, 그 의문에 답하기 위해 본초를 쓰신 것으로 생각합니다.
대성인이 자신의 법난을 불경보살에 견주어 전중경수의 모습이라고 한 것은 범부의 위치에서 한 말씀인데, 에치에서 쓰신 편지 속에는 또 하나 중요한 내용이 있습니다.
그것은 〈시조깅고전어소식〉(어서 1113쪽)에 있는 “다쓰노구치야말로 니치렌의 목숨을 버린 곳이니 불토(佛土)보다 못하겠느뇨” “니치렌이 난을 만나는 곳마다 불토이니라” 등의 구절입니다.
대성인은 자신이 고난을 당한 장소가 곧 불토라고 말씀하십니다. 그 장소가 불토라면 의정불이의 법리에 따라 그곳에 사는 사람도 부처라는 것은 당연한 이치입니다. 즉 대성인은 자신이 말법의 어본불이라고 간접적으로 표현하신 것입니다.
석존의 사자로서 말법의 중생에게 법화경을 전하는 행자, 즉 상행보살의 재탄(再誕)으로서 그 위치를 나타낸 글월은 있었으나, 말법의 부처라고 나타낸 글월은 에치에서 쓰신 편지에서 비로소 볼 수 있습니다.
즉 다쓰노구치 법난을 계기로 대성인은 상행보살의 재탄이라는 임시의 모습을 떨어 버리고 말법의 어본불로서 내증(內證: 마음속의 깨달음)을 나타내십니다.
 
에치에서 데라도마리로(1271년 10월)
 
1271년 10월 10일 대성인은 에치의 혼마로쿠로자에몬노조 저택을 출발하여 21일 에치고지방 데라도마리의 포구에 도착합니다.
데라도마리에서 제일 먼저 술작하신 어서가 22일 도키조닌에게 주신 〈데라도마리어서〉(어서 951쪽)입니다. 어서에서 대성인이 절복과 홍교를 하는 데 갖가지 난을 만나는 이유는, 법화경에서 그렇게 예언했기 때문임을 역설하셨습니다.
또 권지품 20행의 게(偈)에 있는 바와 같이 무지(無知)한 자에게서 악구매리당하고 도장(刀杖: 칼과 곤장)의 난을 받은 대성인은 “니치렌 이 경문에 해당되니 그대들 어찌 이 경문에 들지 않을소냐” “니치렌은 이 경문을 읽었노라. 그대들은 어찌하여 이 경문을 읽지 않느뇨”(어서 953쪽)라고 하시며, 경문을 몸으로 읽지 않고 문자로만 읽는 모든 종파의 사사(邪師: 잘못된 가르침을 설하는 사람)를 엄하게 파절하셨습니다.
나아가 이즈와 사도 두 차례 유죄에서 나타난 사실은, 대성인이 ‘삭삭견빈출(數數見?出: 삭삭은 가끔, 빈출은 있는 곳을 쫓겨나는 것. 즉 법화경 행자가 정법 때문에 2번 이상 유죄 등의 박해를 받는 것)’의 경문을 완벽하게 몸으로 읽으셨다는 것입니다.
또 경문과 부합한 것은 ‘법화경 행자’임을 증명한 사실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법화경은 삼세(三世)의 설법의 의식”(어서 953쪽)이고, 불변의 법리에서 보면 과거에 불경보살이 행한 홍교의 방궤(方軌: 바른 법칙)는 지금 대성인이 몸으로 읽으신 권지품과 같습니다.
권지품을 색독(色讀: 몸으로 실천, 수행하여 실증을 보여 주는 것)한 대성인은 “그때는 니치렌은 즉 불경보살”로서 절복의 모범이 될 것이라고 말씀하시고, 인난홍통(忍難弘通: 온갖 어려움과 난을 참고 극복하며 법을 홍통함)이야말로 말법의 올바른 수행임을 명확하게 결론지으십니다.
게다가 말법에 들어와 삼류의 강적이 출현하는데 권지품에서 서언(誓言)한 팔십만억 나유타의 보살이 출현하지 않았기에 대성인이 대신 정법을 홍통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삼류의 강적을 불러 일으키는 절복이야말로 권지품의 뜻에 맞는 말법의 홍교임을 말씀하시고, 말법에 절복을 부정하고 섭수(攝受: 절복의 상대말로, 상대의 잘못을 용인하면서 점차적으로 유인해 정법을 믿게 하는 화도법)를 주장하는 자를 파절하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