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학 Q&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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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락추풍오장원에 대하여
관리자
2010.06.28
1,170
안녕하십니까?
한국SGI교학부입니다. 참고하십시요.
수필 인간세기의 빛 (132)
스승과 추억이 담긴 노래 ‘오장원’과 ‘다이난코’
함께 노래하고 함께 춤춰라 사제(師弟)의 곡
위대한 창가(創價)의 제갈공명이여 일어서라
아버지는 ‘어서 성장하라’ 고 기다린다
그대들이여, 젊은 제갈공명이 되어 일어서라! 지난 3월, 도쿄마키구치기념회관에서 이케다 SGI 회장(맨 왼쪽)과 참석자 사이에 사제공전의 마음이 메아리친다.
승리하여 당당한
인생 구축하노라
오늘도 다시
자유다, 희망이다
승리의 노래 있으라
위대한 스승 도다 조세이(戶田城聖) 선생님이 좋아하신 노래가 두 곡 있다.
선생님 앞에서는 다양한 기회에 다양한 사람이 다양한 노래를 불렀다.
선생님은 모두의 마음을 소중히 여겨 고개를 끄덕이며 노래를 들으셨지만, 다시 부르도록 하신 노래는 좀처럼 없었다.
선생님이 각별히 좋아하며 거듭거듭 청년들에게 부르게 하신 노래는 ‘다이난코(大楠公)’와 ‘오장원(五丈原)’이었다.
이 두 곡을 처음으로 선생님에게 들려 드린 사람은 나였다.
(중략)
◇
그리운
은사를 회상하노라
오장원
오늘 아침도 들렸노라
어젯밤도 메아리쳤노라
세계적으로 유명한 <삼국지> 영웅 제갈공명의 성심을 도이 반스이라는 시인이 훌륭하게 읊은 노래가 ‘오장원’ 즉 ‘성락추풍오장원(星落秋風五丈原)’이다.
이것도 1953년 5월 5일 내가 청년들과 함께 도다 선생님 앞에서 들려 드린 곡이다. 나는 우리가 ‘오장원’을 부르기 시작하자 곧 선생님 눈에 눈물이 고이고, 감개 어린 모습으로 들으시던 일이 잊혀지지 않는다.
원시(元詩)는 무려 400행에 이르는 장편이다. 그 일부를 발췌해 노래했다.
저작권을 계승한 가족 여러분에게 쾌히 승낙을 받아 소설 ‘인간혁명(人間革命)’ 등을 쓸 때도 인용했다.
◇
기산(祁山) 비추(悲秋)에 바람이 일어 진중 어두운 오장원
………
승상 병세 깊어가도다……
제갈공명은 ‘수어(水魚)의 마음’으로 맺은 선대왕 유비 현덕이 세상을 떠난 후에도 함께 추구한 한나라 왕실의 부흥이라는 대업을 이루고, 천하의 안녕을 실현하기 위해 숙적 위나라에 원정을 거듭했다.
여섯 번째 원정에서 오장원까지 진출했다. 그러나 대치하는 위나라 사마의는 장기전으로 정하고, 여름이 지나 가을바람이 불기 시작해도 움직이지 않았다. 이윽고 공명은 부대 안에서 병으로 쓰러졌다.
도이 반스이의 시는 공명의 고독한 마음 깊은 곳을 날카롭게 파고들었다.
그 누구 성부(成否)를 예측하리오
생사를 다한 그의 정성
바라보니 은하 별이 밝도다
무수의 성두(星斗) 빛이 밝도다
어이 비추랴 영웅의 길을
고심 고투의 그의 가슴을
그 장렬함에 감동하여서
귀신도 울었다네 가을 바람
………
천 대의 후 지금도 아직
그 이름 향기롭다 제갈량
“자네들은 이 노래의 진정한 정신을 아는가.”
선생님은 자리를 같이한 청년에게 물어보시며 선대왕의 유업(遺業)을 계승하는 도중에 쓰러져서 꺼져가는 공명의 통곡하는 심정을 말씀하셨다.
그것은 그대로 광선유포의 대장군으로서 오직 홀로 전 책임을 짊어지고 일어선 스승의 고고한 혼을 나타낸 것이었다.
“확실히 공명은 긴 세월이 흐른 후까지 이름을 남기기는 했지만, 좌절은 좌절이다. 그러나 내게 좌절은 허용되지 않는다. 광포의 대사업이 좌절한다면 인류의 전도는 칠흑처럼 어둡기 때문이다.”
이튿날 나는 남자부 제1부대장으로 취임하고, ‘청년 확대’의 최전선에 섰다.
도다 선생님은 부대기를 수여하는 의식이 끝나고 나서 제2대 회장에 취임하셨을 때 발표하신 서원을 거듭 사자후(師子吼)하셨다. “75만 세대를 달성하지 못하면 내 장례식은 하지 마라!”
그리고 마지막에 내 지휘로 ‘성락추풍오장원’을 크게 합창했다. 몇 번이고, 몇 번이고.
나는 거듭 눈물지으시는 스승을 바라보며 맹세했다.
‘선생님! 제가 모든 난을 정면으로 받아서 반드시 광선유포 승리의 돌파구를 열겠습니다! 부디 안심해 주십시오!’
그것은 참된 제자가 홀로 서는 서원의 노래가 되었다.
위대한
창가의 제갈공명이여
일어서라
승리의 역사를
영원히 남겨라
◇
그런데 도이 반스이는 언제 걸작 ‘성락추풍오장원’을 발표했는가.
그때 그는 스물일곱의 젊은 청년시인이었다. 정말로 젊음에는 위대한 힘이 있으며 무한한 빛이 있다.
그리고 비슷한 시기에 그는 불멸의 시를 또 하나 남겼다. ‘황성의 달’이다.
“봄날 고루(高樓)에서 꽃놀이의 향연…”으로 시작하는 뛰어난 시가(詩歌)다.
그것은 후쿠시마현 아이즈와카마쓰의 쓰루가성지와 미야기현 센다이의 아오바성지에서 발상을 얻은 것이라고 한다.
그리고 다키 렌타로의 곡은 오이타현 다케다에 있는 오카성지가 발상의 원천이다.
나도 세 곳의 성을 모두 방문했다. 어느 곳도 잊지 못할 역사이다. 특히 아오바성지에는 은사와 함께 올랐다.
도이 반스이가 세상을 떠난 지 2년쯤 되는 1954년 봄 4월이었다.
선생님은 그가 “성벽에 남은 건 덩굴뿐”이라고 읊은 견고한 돌담을 보시며 엄연히 말씀하셨다.
“학회는 인재로 성을 세우자!”
제갈공명은 외쳤다.
“나라를 다스리는 길은 힘껏 우수한 인재를 배출하고, 등용하는 것에 있다.”
그렇다. 인재를 육성하고 청년을 키우는 이외에 영속 승리는 없다.
지금, 인연이 깊은 도호쿠방면 미야기현에도 또 후쿠시마현에도 그리고 오이타현에도 사종문의 종교적 탄압을 극복하고 흔들림 없는 인재의 대성을 구축하셔서 기쁘기 그지없다.
구축했노라
창가장성(創價長城)
반석처럼
인재 진열
세계에 갖추고
(중략)
한국SGI교학부입니다. 참고하십시요.
수필 인간세기의 빛 (132)
스승과 추억이 담긴 노래 ‘오장원’과 ‘다이난코’
함께 노래하고 함께 춤춰라 사제(師弟)의 곡
위대한 창가(創價)의 제갈공명이여 일어서라
아버지는 ‘어서 성장하라’ 고 기다린다
그대들이여, 젊은 제갈공명이 되어 일어서라! 지난 3월, 도쿄마키구치기념회관에서 이케다 SGI 회장(맨 왼쪽)과 참석자 사이에 사제공전의 마음이 메아리친다.
승리하여 당당한
인생 구축하노라
오늘도 다시
자유다, 희망이다
승리의 노래 있으라
위대한 스승 도다 조세이(戶田城聖) 선생님이 좋아하신 노래가 두 곡 있다.
선생님 앞에서는 다양한 기회에 다양한 사람이 다양한 노래를 불렀다.
선생님은 모두의 마음을 소중히 여겨 고개를 끄덕이며 노래를 들으셨지만, 다시 부르도록 하신 노래는 좀처럼 없었다.
선생님이 각별히 좋아하며 거듭거듭 청년들에게 부르게 하신 노래는 ‘다이난코(大楠公)’와 ‘오장원(五丈原)’이었다.
이 두 곡을 처음으로 선생님에게 들려 드린 사람은 나였다.
(중략)
◇
그리운
은사를 회상하노라
오장원
오늘 아침도 들렸노라
어젯밤도 메아리쳤노라
세계적으로 유명한 <삼국지> 영웅 제갈공명의 성심을 도이 반스이라는 시인이 훌륭하게 읊은 노래가 ‘오장원’ 즉 ‘성락추풍오장원(星落秋風五丈原)’이다.
이것도 1953년 5월 5일 내가 청년들과 함께 도다 선생님 앞에서 들려 드린 곡이다. 나는 우리가 ‘오장원’을 부르기 시작하자 곧 선생님 눈에 눈물이 고이고, 감개 어린 모습으로 들으시던 일이 잊혀지지 않는다.
원시(元詩)는 무려 400행에 이르는 장편이다. 그 일부를 발췌해 노래했다.
저작권을 계승한 가족 여러분에게 쾌히 승낙을 받아 소설 ‘인간혁명(人間革命)’ 등을 쓸 때도 인용했다.
◇
기산(祁山) 비추(悲秋)에 바람이 일어 진중 어두운 오장원
………
승상 병세 깊어가도다……
제갈공명은 ‘수어(水魚)의 마음’으로 맺은 선대왕 유비 현덕이 세상을 떠난 후에도 함께 추구한 한나라 왕실의 부흥이라는 대업을 이루고, 천하의 안녕을 실현하기 위해 숙적 위나라에 원정을 거듭했다.
여섯 번째 원정에서 오장원까지 진출했다. 그러나 대치하는 위나라 사마의는 장기전으로 정하고, 여름이 지나 가을바람이 불기 시작해도 움직이지 않았다. 이윽고 공명은 부대 안에서 병으로 쓰러졌다.
도이 반스이의 시는 공명의 고독한 마음 깊은 곳을 날카롭게 파고들었다.
그 누구 성부(成否)를 예측하리오
생사를 다한 그의 정성
바라보니 은하 별이 밝도다
무수의 성두(星斗) 빛이 밝도다
어이 비추랴 영웅의 길을
고심 고투의 그의 가슴을
그 장렬함에 감동하여서
귀신도 울었다네 가을 바람
………
천 대의 후 지금도 아직
그 이름 향기롭다 제갈량
“자네들은 이 노래의 진정한 정신을 아는가.”
선생님은 자리를 같이한 청년에게 물어보시며 선대왕의 유업(遺業)을 계승하는 도중에 쓰러져서 꺼져가는 공명의 통곡하는 심정을 말씀하셨다.
그것은 그대로 광선유포의 대장군으로서 오직 홀로 전 책임을 짊어지고 일어선 스승의 고고한 혼을 나타낸 것이었다.
“확실히 공명은 긴 세월이 흐른 후까지 이름을 남기기는 했지만, 좌절은 좌절이다. 그러나 내게 좌절은 허용되지 않는다. 광포의 대사업이 좌절한다면 인류의 전도는 칠흑처럼 어둡기 때문이다.”
이튿날 나는 남자부 제1부대장으로 취임하고, ‘청년 확대’의 최전선에 섰다.
도다 선생님은 부대기를 수여하는 의식이 끝나고 나서 제2대 회장에 취임하셨을 때 발표하신 서원을 거듭 사자후(師子吼)하셨다. “75만 세대를 달성하지 못하면 내 장례식은 하지 마라!”
그리고 마지막에 내 지휘로 ‘성락추풍오장원’을 크게 합창했다. 몇 번이고, 몇 번이고.
나는 거듭 눈물지으시는 스승을 바라보며 맹세했다.
‘선생님! 제가 모든 난을 정면으로 받아서 반드시 광선유포 승리의 돌파구를 열겠습니다! 부디 안심해 주십시오!’
그것은 참된 제자가 홀로 서는 서원의 노래가 되었다.
위대한
창가의 제갈공명이여
일어서라
승리의 역사를
영원히 남겨라
◇
그런데 도이 반스이는 언제 걸작 ‘성락추풍오장원’을 발표했는가.
그때 그는 스물일곱의 젊은 청년시인이었다. 정말로 젊음에는 위대한 힘이 있으며 무한한 빛이 있다.
그리고 비슷한 시기에 그는 불멸의 시를 또 하나 남겼다. ‘황성의 달’이다.
“봄날 고루(高樓)에서 꽃놀이의 향연…”으로 시작하는 뛰어난 시가(詩歌)다.
그것은 후쿠시마현 아이즈와카마쓰의 쓰루가성지와 미야기현 센다이의 아오바성지에서 발상을 얻은 것이라고 한다.
그리고 다키 렌타로의 곡은 오이타현 다케다에 있는 오카성지가 발상의 원천이다.
나도 세 곳의 성을 모두 방문했다. 어느 곳도 잊지 못할 역사이다. 특히 아오바성지에는 은사와 함께 올랐다.
도이 반스이가 세상을 떠난 지 2년쯤 되는 1954년 봄 4월이었다.
선생님은 그가 “성벽에 남은 건 덩굴뿐”이라고 읊은 견고한 돌담을 보시며 엄연히 말씀하셨다.
“학회는 인재로 성을 세우자!”
제갈공명은 외쳤다.
“나라를 다스리는 길은 힘껏 우수한 인재를 배출하고, 등용하는 것에 있다.”
그렇다. 인재를 육성하고 청년을 키우는 이외에 영속 승리는 없다.
지금, 인연이 깊은 도호쿠방면 미야기현에도 또 후쿠시마현에도 그리고 오이타현에도 사종문의 종교적 탄압을 극복하고 흔들림 없는 인재의 대성을 구축하셔서 기쁘기 그지없다.
구축했노라
창가장성(創價長城)
반석처럼
인재 진열
세계에 갖추고
(중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