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학 Q&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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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흉을 없애는 방법
관리자
2010.05.06
2,231
안녕하십니까?
한국SGI교학부입니다.
질문하신것에 대한 설명으로 선생님 지도를 2가지 보내드립니다.
참고하시어 신심수행에 도움이 되길 바랍니다.
池田 SGI회장의 나날의 대화 (제5회)
1994년 12월 05일
이케다(池田) SGI회장: 누구나 '자신을 빛내고 싶다'라고 원하고 있습니다. 그를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가.
자기 자신의 '일흉(一凶)과 싸우는 것입니다. 근본과제와 싸우는 것입니다.
니치렌(日蓮) 대성인은 '일흉을 금하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많은 기원을 하기보다도 이 일흉을 금하는 것입니다'라고 <입정안국론>에 쓰셨습니다. 「저 만기(萬祈)를 수행하기 보다는 이 일흉(一凶)을 금(禁)해야 할것이로다」(어서 24쪽)>
사회에도 '일흉'이 있습니다. 대성인은 당시 일본의 입정안국에 있어서, 애음(哀音)의 염불의 유행이야말로 '일흉'이라고 하신 것입니다.
'일흉' - 근본 병인(病因)과 싸우지 않고, 아무리 책략을 사용해도 해결은 없습니다.
개인의 인간혁명에 있어서도 자신의 성장을 멈추게 하는 '일흉'이 있습니다.
'나는 결점투성이다'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는데, 대부분의 경우 그것들도
'일흉'에서 파생된 결점인 것입니다.
예를 들면 '겁쟁이의 마음'.
예를 들면 '조잡(粗雜)'.
예를 들면 '감상(感傷)'.
예를 들면 '성질급함'.
그러한 자기 자신의 '일흉'을 자각하여 창제 또 창제하고, 행동 또 행동을 한다. 그것이 인간혁명의 수행입니다.
막연하게 살고 있을 뿐이라면 참된 진보는 없습니다.
수행입니다. '일흉'을 극복하면 일체가 크게 열리는 것입니다. 자기 자신이 빛나게 되는 것입니다. 전에는 결점으로 보였던 경향성까지 장점으로 빛나게 되는 것입니다.
광선유포의 '일흉'은 참성증상만의 닛켄(日顯)입니다. 닛켄종입니다. 이 일흉의 악을 근절하면 광선유포는 더욱 양양하게 열립니다.
독초도 '뿌리'를 뽑지 않으면 또 싹트게 됩니다.
그러므로 청년부는 추격의 손을 늦추지 말고, 악(惡)의 연합군과 싸워 가야겠습니다.
신.인간혁명 18권 (사자후)
어쨌든 실수라는 것은 방지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애써도 예기치 못한 형태로 일어나는 경우가 있습니다. 어떤 의미에서 마(魔)와의 공방전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제목(題目)입니다.
절대로 실수를 저지르지 않겠다는 서원을 담은 필사의 기원이 중요합니다.”
신이치가 이야기를 마치자 교열국장인 하리야마 게이스케가 질문했다.
“지금까지 자료를 보면 실수를 저지르는 사람은 대체로 정해져 있어 같은 사람이 몇번이고 범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 점은 어떻게 생각하면 좋을까요.”
“실수를 반복하는 배경에는 그 사람 생명의 경향성이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 사람이 자신을 응시하고 인간혁명하겠다는 일념입니다.”
일체는 자신의 생명에서 일어난다. 그것이 불법(佛法)의 법리다. 실수도 그 본질적인 요인은 자기 자신에게 있다.
야마모토 신이치(山本伸一)는 말했다.
“자신도 모르게 그만 방심해서 확인하는 원칙을 소홀히 하고 마는 것도 그 사람 생명의 경향성입니다.
그런 사람은 업무뿐만 아니라 교통사고 등도 일으키기 쉽습니다.
그러므로 거기에 자신의 일흉(一凶)이 있다는 것을 자각하고 그것을 변혁하겠다고 날마다 구체적으로 진지하게 기원을 계속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부장은 실수를 저지른 부원을 꾸짖기만 하지 말고 오히려 그것을 계기로 더욱 깊은 대화를 나눠 인간변혁의 길을 열 수 있도록 지도와 격려를 부탁합니다.
실수를 범하고 싶어서 범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모두 자기 나름대로 필사의 노력을 하고 있는 데도 일어나고 맙니다. 그렇기 때문에 대화와 격려가 중요합니다.
그 밖에 물어 보고 싶은 것은 없습니까.”
그러자 곧바로 질문을 던졌다.
“선생님께서 전국통신원대회에서 세이쿄(聖敎)신문사의 정신은 ‘강성하면서도 올바른 신심(信心)’이라고 말씀하셨는데, 그것을 습득하는데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입니까.”
신이치는 일언지하에 대답했다.
“어서(御書)라는 원점에 되돌아가야 합니다. 신심 본연의 자세의 근본을 제시한 어서를 마음속 깊이 새겨서 그대로 실천해야 합니다.
대성인도 ‘행학(行學)의 이도(二道)를 힘쓸지어다. 행학이 끊어지면 불법(佛法)은 없느니라’(어서 1361쪽)라고 말씀하시지 않았습니까.”
신이치는 편집총국장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런데 매일 아침 부장회의에서 어서를 함께 읽고 있습니까.”
“아닙니다. 읽고 있지 않습니다.”
“어떤 형태라도 좋으니 견실하게 어서를 배독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사상을 심화하고 신심을 확립하려면 이 길밖에 없습니다.
어서는 우리의 신심과 삶의 자세의 규범이며 근본입니다.
학회는 어서를 근본으로 했기 때문에 대성인께 직결하고 크게 발전했습니다. 그 어서 연찬을 등한시 하면 톱니바퀴가 기축에서 빠진 것처럼 공전을 반복할 뿐입니다. 세이쿄신문사는 어서라는 원점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한국SGI교학부입니다.
질문하신것에 대한 설명으로 선생님 지도를 2가지 보내드립니다.
참고하시어 신심수행에 도움이 되길 바랍니다.
池田 SGI회장의 나날의 대화 (제5회)
1994년 12월 05일
이케다(池田) SGI회장: 누구나 '자신을 빛내고 싶다'라고 원하고 있습니다. 그를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가.
자기 자신의 '일흉(一凶)과 싸우는 것입니다. 근본과제와 싸우는 것입니다.
니치렌(日蓮) 대성인은 '일흉을 금하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많은 기원을 하기보다도 이 일흉을 금하는 것입니다'라고 <입정안국론>에 쓰셨습니다. 「저 만기(萬祈)를 수행하기 보다는 이 일흉(一凶)을 금(禁)해야 할것이로다」(어서 24쪽)>
사회에도 '일흉'이 있습니다. 대성인은 당시 일본의 입정안국에 있어서, 애음(哀音)의 염불의 유행이야말로 '일흉'이라고 하신 것입니다.
'일흉' - 근본 병인(病因)과 싸우지 않고, 아무리 책략을 사용해도 해결은 없습니다.
개인의 인간혁명에 있어서도 자신의 성장을 멈추게 하는 '일흉'이 있습니다.
'나는 결점투성이다'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는데, 대부분의 경우 그것들도
'일흉'에서 파생된 결점인 것입니다.
예를 들면 '겁쟁이의 마음'.
예를 들면 '조잡(粗雜)'.
예를 들면 '감상(感傷)'.
예를 들면 '성질급함'.
그러한 자기 자신의 '일흉'을 자각하여 창제 또 창제하고, 행동 또 행동을 한다. 그것이 인간혁명의 수행입니다.
막연하게 살고 있을 뿐이라면 참된 진보는 없습니다.
수행입니다. '일흉'을 극복하면 일체가 크게 열리는 것입니다. 자기 자신이 빛나게 되는 것입니다. 전에는 결점으로 보였던 경향성까지 장점으로 빛나게 되는 것입니다.
광선유포의 '일흉'은 참성증상만의 닛켄(日顯)입니다. 닛켄종입니다. 이 일흉의 악을 근절하면 광선유포는 더욱 양양하게 열립니다.
독초도 '뿌리'를 뽑지 않으면 또 싹트게 됩니다.
그러므로 청년부는 추격의 손을 늦추지 말고, 악(惡)의 연합군과 싸워 가야겠습니다.
신.인간혁명 18권 (사자후)
어쨌든 실수라는 것은 방지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애써도 예기치 못한 형태로 일어나는 경우가 있습니다. 어떤 의미에서 마(魔)와의 공방전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제목(題目)입니다.
절대로 실수를 저지르지 않겠다는 서원을 담은 필사의 기원이 중요합니다.”
신이치가 이야기를 마치자 교열국장인 하리야마 게이스케가 질문했다.
“지금까지 자료를 보면 실수를 저지르는 사람은 대체로 정해져 있어 같은 사람이 몇번이고 범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 점은 어떻게 생각하면 좋을까요.”
“실수를 반복하는 배경에는 그 사람 생명의 경향성이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 사람이 자신을 응시하고 인간혁명하겠다는 일념입니다.”
일체는 자신의 생명에서 일어난다. 그것이 불법(佛法)의 법리다. 실수도 그 본질적인 요인은 자기 자신에게 있다.
야마모토 신이치(山本伸一)는 말했다.
“자신도 모르게 그만 방심해서 확인하는 원칙을 소홀히 하고 마는 것도 그 사람 생명의 경향성입니다.
그런 사람은 업무뿐만 아니라 교통사고 등도 일으키기 쉽습니다.
그러므로 거기에 자신의 일흉(一凶)이 있다는 것을 자각하고 그것을 변혁하겠다고 날마다 구체적으로 진지하게 기원을 계속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부장은 실수를 저지른 부원을 꾸짖기만 하지 말고 오히려 그것을 계기로 더욱 깊은 대화를 나눠 인간변혁의 길을 열 수 있도록 지도와 격려를 부탁합니다.
실수를 범하고 싶어서 범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모두 자기 나름대로 필사의 노력을 하고 있는 데도 일어나고 맙니다. 그렇기 때문에 대화와 격려가 중요합니다.
그 밖에 물어 보고 싶은 것은 없습니까.”
그러자 곧바로 질문을 던졌다.
“선생님께서 전국통신원대회에서 세이쿄(聖敎)신문사의 정신은 ‘강성하면서도 올바른 신심(信心)’이라고 말씀하셨는데, 그것을 습득하는데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입니까.”
신이치는 일언지하에 대답했다.
“어서(御書)라는 원점에 되돌아가야 합니다. 신심 본연의 자세의 근본을 제시한 어서를 마음속 깊이 새겨서 그대로 실천해야 합니다.
대성인도 ‘행학(行學)의 이도(二道)를 힘쓸지어다. 행학이 끊어지면 불법(佛法)은 없느니라’(어서 1361쪽)라고 말씀하시지 않았습니까.”
신이치는 편집총국장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런데 매일 아침 부장회의에서 어서를 함께 읽고 있습니까.”
“아닙니다. 읽고 있지 않습니다.”
“어떤 형태라도 좋으니 견실하게 어서를 배독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사상을 심화하고 신심을 확립하려면 이 길밖에 없습니다.
어서는 우리의 신심과 삶의 자세의 규범이며 근본입니다.
학회는 어서를 근본으로 했기 때문에 대성인께 직결하고 크게 발전했습니다. 그 어서 연찬을 등한시 하면 톱니바퀴가 기축에서 빠진 것처럼 공전을 반복할 뿐입니다. 세이쿄신문사는 어서라는 원점으로 돌아가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