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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학 Q&A

 

  • 답변 올려드립니다. 감사합니다.

  • 관리자

  • 2010.01.29

  • 708

안녕하십니까?
한국SGI 교학부입니다.

질문하신 내용에 대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1. 우선 국사훈에 대한 자료는 화광신문사에서 발간한 ‘수필 평화의 성’ 215p ‘불멸의 정예 10만 대 총회’를 봐 주시기 바랍니다. 자세히 소개되어 있습니다.
2. 청년훈에 대해서는 이케다 선생님께서 수필에서 써 주신 적이 있습니다만, 서적으로 발간되지는 않았기ㅔ에 주요 부분만 아래에 소개해 드립니다. 참고바랍니다.
3. 선생님께서 얼마 전 지도 속에서 청년시절 대지에 제목이 스며들게 하겠다는 일념으로 창제를 부르며 광포의 천지를 누볐다는 말씀과 사제 불멸의 승리를 염원하며 매일 밤 모두가 잠 든 늦은 시각까지 어본존께 진지하게 창제를 올렸다는 말씀을 해 주셨습니다.
선생님의 창제는 어느 누구보다도 깊은 일념을 담은 창제이실 것이며, 어느 누구보다도 많이 하시지 않으실까 생각합니다. 다만 몇 시간 하고 있다고 말씀하신 내용은 접해 본 적이 없어서 창제 시간에 대해서는 말씀 드리기 어렵습니다. 이상을 참고해 주시기 바랍니다.
4. 도사는 왜 남자가 주로 보나요?
한국에서는 주로 도사는 조직의 중심자가 봅니다.
브라질이나 미국의 경우 청년부장이 여성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따라서 청년부 회합 때에는 여성 청년부장이 도사를 봅니다.
앞으로 여성이 이사장인 나라도 나올 텐데요, 그러면 여성 이사장이 도사를 보지 않을까요?
4부가 모이는 회합에서는 장년부를 중심으로 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한국 사회의 구조와 사람들의 인식 등, 제반적인 부분에서 남성을 중심으로 흘러 가고 있기 때문에 그럴 것입니다.
이러한 부분은 시대의 흐름과 맞춰 보편성 있게 운영해 가는 부분이기 때문에, 앞으로 각 조직에서 여성 리더가 탄생하면 여성이 도사를 보는 일이 더욱 늘어나지 않을까요.
참고로 서구의 여러 나라에서는, 정식 회합이 아닌 창제회의 경우에는 도사를 꼭 조직의 리더가 보지 않고, 멤버들이 돌아가면서 보는 곳도 있다고 들었습니다.
따라서 도사를 남성이 보느냐 여성이 보느냐는 절대적인 사항이 아니며, 이체동심의 마음으로 광포를 향해 나아가는 아름다운 단결이 중요하다고 말씀 드릴 수 있겠습니다.
이상을 참고로 생각해 주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 청년훈에 대한 이케다 선생님의 수필
(중략)
자주 도다 선생님은 말씀하셨다.
“마키구치 선생님은 청년을 매우 좋아 하셨다. 나도 청년을 가장 좋아한다”
제3대인 나도 청년을 사랑한다. 신뢰하고 존경한다. 커다란 기대를 걸고 성장을 기원하며 기다리고 있다.
꼭 50년 전(1951년) 가을 도다 선생님은 결성된 지 2개월 반의 청년부에게 영원한 지침 ‘청년훈’을 주셨다.
《세이쿄신문》(10월 1일자)에 발표됐을 때 ‘청년훈’은 남녀청년부의 반장에게 보내는 것이었다. ‘반’은 당시 청년부의 최전선 조직이었다.
그것은 나무로 말하자면 땅속 깊이 넓게 뻗어있는 뿌리다. 최전선의 청년이 활기차게 싸워 양분을 흡수해 전진하고 있는가 어떤가. 이것이 광선유포의 대원동력이라 해도 좋다.
청년에게는 지표가 필요하다. 무엇을 위한 싸움인가.
자신의 사명은 무엇인가.
그 자각이 깊으면 깊을수록 행동의 불꽃은 생명의 깊은 곳에서부터 불타오르기 때문이다.

“새로운 세기를 만드는 것은 청년의 열의와 힘이다”
‘청년훈’의 선명하고 강렬한 모두의 한 구절에서 우리 청년은 피가 끓고 힘이 넘쳤다.
“분기하라! 청년 제군이여. 싸우지 않겠는가! 청년 제군이여”
학회정신을 터득하라!
동지의 사기를 고무하라!
광선유포 대원(大願)의 중심 인물이라는 것을 자각하라!
스승의 부름에 모두 용기 백배로 일어섰다.
당시 나는 그야말로 그런 남자부 반장이었다.
“광포의 주체자는 나다. 이 ‘청년훈’은 내게 주신 지침이다!”라고 나는 그렇게 생명에 새겼다.
그렇다면 무엇으로 선생님께 답할 것인가. 제일보의 싸움은 명확했다.
“도다 선생님이 내게 맡기신 우리 반원을 자신 이상의 인재로 성장시키자! 이케다 반을 두배, 세배, 열배로 확대해 가자!”
그러나 도다 선생님이 고문을 맡고 계신 회사에서 영업부장이란 중책을 해나가는 나날은 자유롭게 활동하는 일을 내게 허락하질 않았다.
궁지에서 살길을 구해 시작한 회사를 궤도에 올리는 일은 지극히 어려운 일이었으며 고투의 연속이었다. 미열도 계속돼 건강 상태도 매우 나빴다.
남자부 회합에도 참석하지 못하는 날이 계속됐다. “이케다는 퇴전했다!”라고 냉담하게 잘라 말하는 간부까지 있었다.
그러나 나는 결의하고 있었다. “어본존은 알고 계신다. 도다 선생님은 알고 계신다. 갖추어진 상황 속에서라면 누구라도 싸울 수 있다. 나는 선생님의 제자다! 사자의 자식이다! 아무리 괴롭다할지라도 어렵다할지라도 반드시 승리해 내겠다!”
용기란 무엇인가. 약한 자신을 이겨내고 환경에 지지 않는 일이다! 학회활동에서 결코 도망치지 않는 일이다!
시간이 없기 때문에 한순간 한순간을 소중히 하며 지혜를 짜내 싸움에 손을 써갔다.
가방에는 늘 엽서와 필기구를 넣어 틈틈이 벗에게 격려의 편지를 쓰고 또 썼다. 개인지도도 절복 실천에도 유연하게 도전하고 있었다.
한발작도 물러서지 않는 고투 속에서의 불도수행이었다.
그러나 그러한 어려움이 있었기에 지금의 내가 있다.
불법에서는 ‘원겸어업(願兼於業)’(원해서 업을 겸하다)이라고 해 보살은 원해서 고뇌 많은 악세에 태어난다고 설한다.
또 남을 위해 광포를 위해 일부러 고생의 땀을 흘리는 인생이야말로 지고의 인생이라고 가르치고 있다. 고난 속에서야 만이 타인의 고뇌에 동고(同苦)하고 격려할 수 있는 인간력(人間力)을 연마할 수 있다.
7월의 남자부 결성식으로부터 반년 후 22개 반 중에 우리 이케다 반은 당시 전남자부의 10%에 가까운 굴지의 대(大)반으로 확대했다.
그 싸움을 스승은 죽 보고 계셨다.
(후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