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학 Q&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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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서의 세계' 내용을 소개해 드립니다.
관리자
2009.12.21
669
안녕하십니까?
한국SGI 교학부입니다.
귀하께서 말씀하신 ‘불사’와 관련해서 이케다 선생님께서 언급해 주신 자료가 있어서 소개해 드립니다.
어서의 세계 제1권 276쪽에 나오는 자료입니다. 더 공부하시고자 한다면 앞 뒤에 이어지는 강의 내용을 보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
불사不死의 경지境地
모리나카 불계의 생명과 법을 지키는 용기의 싸움은 서로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SGI회장 석존은 불법의 진리를 깨닫고 ‘불사의 경지’를 얻었다고 합니다. 이것은 ‘죽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고, 죽음의 괴로움이나 죽음에 대한 두려움에서 해방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은 모든 두려움의 근원입니다. 그것마저도 극복할 수 있었기 때문에, 그 어떤 것도 두려워하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부처의 마음입니다.
석존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불사의 경지를 못보고 백 년을 사는 것보다 불사의 경지를 보고 하루를 사는 편이 났다.” “최상의 진리를 깨닫지 못하고 백 년을 사는 것보다 최상의 진리를 깨닫고 하루를 사는 편이 났다.”
사이토 ‘불사의 경지’’와 ‘최상의 진리’는 같은 의미라고 생각합니다.
SGI회장 그렇습니다. 석존은 또 이렇게도 말했습니다.
“열심히 일하는 것은 불사의 경지이다. 그러나 태만하고 게으른 것은 사死의 경애다. 힘써 일하는 사람은 죽는 일이 없다. 그러나 태만하고 게으른 자는 죽은 자와 같다.”
이것은 부처의 깨달음도 마와 싸우는 장절한 투쟁이었기 때문입니다. 석존은 깨달음을 얻게 되었을 때, 해가 질 때와 한밤중, 그리고 새벽에 세 편의 시21)를 읊었습니다. 그 시를 읽어보면 열심히 수행하는 것과 깨달음은 동일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사이토 이 세 편의 시 중에서 ‘새벽에 읊은 시’를 읽어보겠습니다.
“실로 다르마가 열심히 명상하고 있는 수행자에게 나타날 때, 수행자는 악마의 군대를 분쇄하고 안립安立해 있다. 마치 태양이 허공을 비추는 것과 같다.” 여기서 ‘다르마’는 법을 말합니다.
SGI회장 태양이 하늘 저편까지 비추는 대경애. 그것이 바로 오달의 경애입니다. 그것은 마와 투쟁하는 것과 불가분의 관계입니다. 마를 쳐부수고 태양의 대경애인 ‘불사의 경지’를 얻은 성자聖者에게 두려울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영원한 법과 하나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석존은 “불사의 문은 열렸도다.”, “불사는 득했도다.”라며 전 민중을 행복하게 하기 위한 대원정 길을 떠납니다. ‘자신을 위해서’가 아닙니다. 모두를 행복하게 하기 위해서 대우주에 만연한 마군과 투쟁을 개시하였습니다. 항상 그 원점으로 되돌아가면 의기소침하는 마음이 생길 리가 없습니다.
사이토 니치렌 대성인께서는 이 ‘불사의 경지’를 만인에게 열게 하기 위해 ‘일심욕견불, 부자석신명’으로 기심의 불계를 연 것이군요?
SGI회장 그렇습니다. 그리고 대성인이 연 불계 용현의 길, 석존으로 말하면 ‘다르마를 나타나게 하는 길’을 계승하는 것이 우리입니다. 우리가 ‘사자왕의 마음’으로 일어섰을 때, 흉중에 묘법이 넘쳐나 모든 장마障魔에 맞설 수 있는 부처의 생명력이 용현합니다.
이것을 바꾸어 말하면, 태양처럼 만인을 비추려는 실천, 사자왕처럼 백수의 장마를 타파하려는 실천 속에 성불의 길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대성인께서 “니치렌처럼 하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대성인과 마찬가지로 민중을 구제하려는 투쟁에 일어서지 않는 한 절대 성불할 수 없습니다.
한국SGI 교학부입니다.
귀하께서 말씀하신 ‘불사’와 관련해서 이케다 선생님께서 언급해 주신 자료가 있어서 소개해 드립니다.
어서의 세계 제1권 276쪽에 나오는 자료입니다. 더 공부하시고자 한다면 앞 뒤에 이어지는 강의 내용을 보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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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사不死의 경지境地
모리나카 불계의 생명과 법을 지키는 용기의 싸움은 서로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SGI회장 석존은 불법의 진리를 깨닫고 ‘불사의 경지’를 얻었다고 합니다. 이것은 ‘죽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고, 죽음의 괴로움이나 죽음에 대한 두려움에서 해방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은 모든 두려움의 근원입니다. 그것마저도 극복할 수 있었기 때문에, 그 어떤 것도 두려워하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부처의 마음입니다.
석존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불사의 경지를 못보고 백 년을 사는 것보다 불사의 경지를 보고 하루를 사는 편이 났다.” “최상의 진리를 깨닫지 못하고 백 년을 사는 것보다 최상의 진리를 깨닫고 하루를 사는 편이 났다.”
사이토 ‘불사의 경지’’와 ‘최상의 진리’는 같은 의미라고 생각합니다.
SGI회장 그렇습니다. 석존은 또 이렇게도 말했습니다.
“열심히 일하는 것은 불사의 경지이다. 그러나 태만하고 게으른 것은 사死의 경애다. 힘써 일하는 사람은 죽는 일이 없다. 그러나 태만하고 게으른 자는 죽은 자와 같다.”
이것은 부처의 깨달음도 마와 싸우는 장절한 투쟁이었기 때문입니다. 석존은 깨달음을 얻게 되었을 때, 해가 질 때와 한밤중, 그리고 새벽에 세 편의 시21)를 읊었습니다. 그 시를 읽어보면 열심히 수행하는 것과 깨달음은 동일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사이토 이 세 편의 시 중에서 ‘새벽에 읊은 시’를 읽어보겠습니다.
“실로 다르마가 열심히 명상하고 있는 수행자에게 나타날 때, 수행자는 악마의 군대를 분쇄하고 안립安立해 있다. 마치 태양이 허공을 비추는 것과 같다.” 여기서 ‘다르마’는 법을 말합니다.
SGI회장 태양이 하늘 저편까지 비추는 대경애. 그것이 바로 오달의 경애입니다. 그것은 마와 투쟁하는 것과 불가분의 관계입니다. 마를 쳐부수고 태양의 대경애인 ‘불사의 경지’를 얻은 성자聖者에게 두려울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영원한 법과 하나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석존은 “불사의 문은 열렸도다.”, “불사는 득했도다.”라며 전 민중을 행복하게 하기 위한 대원정 길을 떠납니다. ‘자신을 위해서’가 아닙니다. 모두를 행복하게 하기 위해서 대우주에 만연한 마군과 투쟁을 개시하였습니다. 항상 그 원점으로 되돌아가면 의기소침하는 마음이 생길 리가 없습니다.
사이토 니치렌 대성인께서는 이 ‘불사의 경지’를 만인에게 열게 하기 위해 ‘일심욕견불, 부자석신명’으로 기심의 불계를 연 것이군요?
SGI회장 그렇습니다. 그리고 대성인이 연 불계 용현의 길, 석존으로 말하면 ‘다르마를 나타나게 하는 길’을 계승하는 것이 우리입니다. 우리가 ‘사자왕의 마음’으로 일어섰을 때, 흉중에 묘법이 넘쳐나 모든 장마障魔에 맞설 수 있는 부처의 생명력이 용현합니다.
이것을 바꾸어 말하면, 태양처럼 만인을 비추려는 실천, 사자왕처럼 백수의 장마를 타파하려는 실천 속에 성불의 길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대성인께서 “니치렌처럼 하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대성인과 마찬가지로 민중을 구제하려는 투쟁에 일어서지 않는 한 절대 성불할 수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