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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학 Q&A

 

  • 알기 쉬운 교학 제3권에 나오는 내용 보내드립니다.

  • 관리자

  • 2009.12.07

  • 684

안녕하십니까?
한국SGI 교학부입니다.

요청하신 자료에 대해서, 알기쉬운교학(전12권) 중 제3권에 '자비'라는 항목으로 나오는 자료를 아래에 첨부해 드립니다.
참고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자비(慈悲)

무한한 ‘발고여락(拔苦與樂)’ 의 자세

사막 같은 사회를 소생시키는 원천

‘자비’ 란 일반적으로 ‘인정’ 이라든가 ‘연민’ ‘자애’ 라는 의미를 표시하는 말로서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말은 본래 불법의 근본정신을 표시하는 용어입니다. ‘자비’ 라는 말에는 일반적으로 이해하고 있는 이상으로 깊고 넓으며 중요한 뜻이 내포되어 있습니다.
먼저 어원적으로 생각해 보면 ‘자(慈)’ 와 ‘비(悲)’ 란, 본래 다른 말이었습니다. 그리고 ‘비(悲)’ 란 말에는 ‘연민’ ‘정’ 이라는 뜻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부모의 애정에도 비유한다
불법에서는 ‘자비’ 의 말을 번역하여 ‘발고여락(拔苦與樂)’ 이라 설합니다. 즉 ‘자’ 란 일체중생으로부터 고뇌를 빼내는 것이며, 이것을 ‘발고(拔苦)’ 라 합니다(‘자’를 ‘발고’ 라 하고, ‘비’를 ‘여락’ 이라 하는 설도 있습니다).
이 ‘자비’ – ‘발고여락’ 의 자세는 자신의 자녀를 자애로 기르는 부모의 애정에도 비유할 수 있습니다.
자신의 자녀를 키우는 부모가 어느 때는 따뜻하게 포용하며, 또 어느 때는 엄하게 꾸짖고 건전한 인간으로서의 성장을 촉구할 것입니다.
아무리 자기 자녀가 반항하며 배반하는 일이 있어도 부모는 자녀를 크게 포용하여 끈기 있고 강하게 가르치며 타이를 것입니다.
불법의 근본정신인 ‘자비’ 의 생명으로 일관된 당체(當體)야말로 ‘부처’ 입니다. 부처의 ‘자비’ 는 부모가 자녀를 대하는 자세로서 일체중생(살아 있는 모든 존재)에 베풀고, 더구나 보다 강하고 깊게 확대 심화한 것이라 하겠습니다.
니치렌 대성인은 자신이 말법의 본불님이시라는 것을 선언하시고「日蓮은 일본국의 제인(諸人)에게 주(主)ㆍ사(師)ㆍ부모(父母)이니라」(어서 237쪽)고 단언하셨습니다. 여기에 ‘일본국의 제인’ 이란 그대로 일체중생을 뜻함은 말할 나위도 없습니다.
또「일체중생이 이(異)의 고(苦)를 받음은 모두가 이는 日蓮 일인(一人)의 고(苦)가 되느니라」(어서 758쪽)고도 말씀하셨습니다. 사람들의 여러 가지 고뇌를 그대로 자신의 고(苦)로 실감하시고 일체중생에 대한 발고여락의 싸움을 생애에 걸쳐 관철하셨습니다.
‘자비’ 와 일반적으로 말하는 ‘사랑’ 을 거의 동일시하는 사람도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사랑’ 은 ‘자비’ 에 훨씬 미치지 못합니다.
‘사랑’ 은 도리어 상대적인 것입니다. 배반당하면 ‘증오’ 로 형태가 변하는 것이며, 상대방이 어떻든 간에 구제하려고 하는, 생명의 내면에서 본연적으로 분출해 오는 광대한 ‘자비’ 의 마음과는 이질적이라 하겠습니다.
‘원품(元品)의 무명(無明)’ 을 타파하는 묘법
생각해 보면 세상은 자연계를 포함하여 상호간에 서로 도우며 보충하는 ‘발고여락’ 의 관계성에 의해 영위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사람들의 도움이나 자연의 혜택이 없으면 우리들은 ‘자기만 좋으면’ 된다는 좁은 생각에 집착하여 남을 희생하는 일이 있어도 자기 혼자만의 이익을 구하려고 하기 쉬운 것입니다. 그것은 사회의 조화를 파괴하는 작용이며, 반대로 자기 자신도 좁고 나약한 경애에 빠지고 마는 것입니다.
오늘날 인류는 큰 위기에 직면하여 종래와 같은 생활방식을 계속한다면 ‘집단자살’ 까지도 불사할지도 모른다며 걱정하고 있습니다. 지금이야말로 인류는 서로가 동정하며 사이 좋게 서로 협조하는 생활방식을 찾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어느 학자는 이 위기의 근본적인 원인은 인류의 도덕적인 미혹(迷惑)에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이 도덕적인 미혹을 니치렌 대성인의 불법에서는 보다 깊게 통찰하여 거기서 ‘원품의 무명(생명 근원의 미혹ㆍ어둠)’ 의 존재를 간파하여 그것을 타파해 가는 방법을 인류에게 교시하고 있습니다.

새로운 역사를 여는 열쇠
동정이나 조화라는 점에서 중요한 것은 사람들이나 사회가 ‘나를 위해 무엇을 해 줄 것인가’ 가 아니라, 사람들이나 사회를 위해 ‘내가 무엇을 해 줄까’ 하는 자세의 생명으로 일관된 경애로 전환하여 확립해 가는 일입니다.
‘자비’의 행동은 작위적(作爲的)으로 무리를 한다고도 억지로 발휘되는 것이 아닙니다. 따뜻하고 풍부한 생명에서만 자연히 넘쳐흘러 나오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생명 자체의 정화와 강화가 매우 중요합니다.
아름다운 선의(善意)의 협조에 의한 평화세계를 구축하려면 무엇보다도 우리들 한 사람 한 사람의 인간성의 근원에 ‘자비’의 인자(因子)를 심어 가는 일이 필요합니다. 이 작업이야말로 실은 새로운 인류의 역사를 개척하는 열쇠가 된다고 확신하는 바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