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학 Q&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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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
교학관리자
2008.12.22
959
안녕하세요? 교학 담당자입니다.
2002년 7월 5일자 화광신문의 내용중에 발췌하였사오니,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
이소망 ‘신력(信力)’이라든가 ‘행력(行力)’이라는 말을 때때로 듣습니다만….
채아람 ‘묘법(妙法)의 사력(四力)’입니다. 우리가 불도수행을 해서 소원을 이루고 성불하기 위한 ‘4종의 작용과 힘’을 말합니다.
김소원 우리의 신력과 행력에 본존님의 법력(法力)과 불력(佛力)이 나타납니다.
박화랑 오늘은 그 사력에 대해 부탁드립니다.
채아람 사력 중에 신력과 행력은 우리들의 문제입니다.
김소원 우선 ‘신력’은 말할 것도 없이 본존님을 ‘믿는 힘’이며 본존님에 대한 확신이라고도 말할 수 있습니다.
이소망 ‘신’하면 마음속의 문제이므로 외부에서는 보이지 않습니다.
박화랑 무슨 일이 있으면 “신심하고 있는데 어찌 이런 일이…”라고 의심하는 마음이 싹트는 약한 ‘신력’이어서는 안 됩니다.
채아람 신력이 약하면 소원은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일상생활에서 신심은 승리의 열쇠입니다.
대성인과 본존님의 힘은 광대무변
김소원 우리의 불도수행의 근본이 신심이며 그 강한 신력은 자동적으로 행력으로 이어집니다. 열심히 근행과 창제를 하고 활동하는 것이 ‘행력’입니다.
이소망 본존님을 의심하지 않고 끝까지 믿는 힘이 ‘신력’이고 불법(佛法)을 실천하는 힘이 ‘행력’이지요.
김소원 그런데 ‘행력’의 ‘행(行)’에는 잘 아는 바와 같이 ‘자행(自行)’과 ‘화타행(化他行)’이 있습니다. “자행화타에 걸쳐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이며”(어서 1022쪽)라고 말씀하신 바와 같습니다. ‘근행과 창제’(자행)와 ‘절복(折伏)과 홍교(弘敎)’(화타행) 등 모든 학회활동은 행(行)으로 됩니다.
박화랑 신력과 행력은 우리의 마음 가짐 여하에 따라 강하게도 약하게도 됩니다.
채아람 신심한지는 오래 됐으나 타성에 흘렀던 사람이 병을 계기로 크게 발심해서 강하게 근행과 창제를 하며 열심히 학회활동을 하기 시작해서 훌륭히 병을 극복하고 전보다 더욱 건강해진 분이 있습니다.
이소망 열심히 ‘하고 있는 셈’인데 어느 새 타성에 빠지는…. 그 ‘하고 있는 셈’이 문제입니다. 저도 ‘발심(發心)’의 연속입니다.
김소원 그렇게 자각하여 발심하면 됩니다. 다음에는 ‘불력’과 ‘법력’에 대해 알아봅시다.
채아람 불력은 본불(本佛)이신 니치렌(日蓮) 대성인의 역용(力用) 입니다.
박화랑 대성인의 ‘역용’이란 무슨 말입니까.
김소원 대성인의 일체중생을 구제하려는 대서원(大誓願)이며 대자대비 (大慈大悲)의 힘을 말합니다. ‘보은초(報恩抄)’에 “니치렌의 자비가 광대하면 남묘호렌게쿄는 만연외(萬年外)· 미래까지도 유포(流布)하리라”(어서 329쪽)라고 있습니다.
이소망 너무나 유명한 말씀입니다.
채아람 요컨대 부처가 중생을 구제하는 힘이 ‘불력’입니다.
박화랑 끝으로 ‘법력’이란 무엇입니까.
채아람 본존님, 묘법의 우주대의 공력을 말합니다. “니치렌의 혼(魂)을 먹물에 물들여 넣어서 썼으니 믿으실지어다”(어서 1124쪽) 라고 말씀하십니다. 말법의 일체중생이 ‘절대적 행복’ 즉 ‘성불(成佛)’의 경애를 득할 수 있도록 대성인이 혼백을 담아 도현(圖顯)하신 것이 본존님입니다.
김소원 니치칸상인(日寬上人)은 본존님의 공력을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잠시라도 이 본존님을 믿고 남묘호렌게쿄라고 봉창한다면 “기원으로서 이루어지지 않음이 ?없고, 죄(罪)로서 멸(滅)하지 않음이 없으며, 복(福)으로서 오지 않음이 없고 이(理)로서 나타나지 않음이 없느니라”(<심의 본존초> 문단)라고.
박화랑 불력과 법력은 항상 엄연히 갖춰져 있군요.
김소원 그리고 불력과 법력은 우리의 신력과 행력에 따라 나타나는 것입니다.
강한 신심의 기원과 용기의 실천
채아람 그러므로 본존님의 ‘광대무변한 역용’ 즉 공덕(功德)은 우리가 신력과 행력을 어떻게 발휘할 수 있는가에 달려있는 것입니다.
이소망 예를 들면 조석근행에서 종을 칠 때 당목(撞木: 종방망이)에 힘을 넣지 않으면 종소리가 제대로 나지 않습니다.
김소원 그렇습니다. 당목이 아니라 젓가락으로 친다면 종소리는 당연히 작을 것입니다. 불력, 법력, 신력, 행력의 관계도 같습니다.
채아람 “이루어지고 이루어지지 않음은 신심에 의함이니 결코 니치렌의 잘못이 아니로다”(어서 1262쪽)라는 말씀을 마음에 깊이 새겨야 하겠습니다. 우주대의 ‘불력 법력’을 끌어내기 위해서는 본존님을 움직이게 할 수 있는 강하고 강한 신심의 기원이 근본입니다. 그리고 강력한 용기의 실천입니다.
2002년 7월 5일자 화광신문의 내용중에 발췌하였사오니,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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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소망 ‘신력(信力)’이라든가 ‘행력(行力)’이라는 말을 때때로 듣습니다만….
채아람 ‘묘법(妙法)의 사력(四力)’입니다. 우리가 불도수행을 해서 소원을 이루고 성불하기 위한 ‘4종의 작용과 힘’을 말합니다.
김소원 우리의 신력과 행력에 본존님의 법력(法力)과 불력(佛力)이 나타납니다.
박화랑 오늘은 그 사력에 대해 부탁드립니다.
채아람 사력 중에 신력과 행력은 우리들의 문제입니다.
김소원 우선 ‘신력’은 말할 것도 없이 본존님을 ‘믿는 힘’이며 본존님에 대한 확신이라고도 말할 수 있습니다.
이소망 ‘신’하면 마음속의 문제이므로 외부에서는 보이지 않습니다.
박화랑 무슨 일이 있으면 “신심하고 있는데 어찌 이런 일이…”라고 의심하는 마음이 싹트는 약한 ‘신력’이어서는 안 됩니다.
채아람 신력이 약하면 소원은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일상생활에서 신심은 승리의 열쇠입니다.
대성인과 본존님의 힘은 광대무변
김소원 우리의 불도수행의 근본이 신심이며 그 강한 신력은 자동적으로 행력으로 이어집니다. 열심히 근행과 창제를 하고 활동하는 것이 ‘행력’입니다.
이소망 본존님을 의심하지 않고 끝까지 믿는 힘이 ‘신력’이고 불법(佛法)을 실천하는 힘이 ‘행력’이지요.
김소원 그런데 ‘행력’의 ‘행(行)’에는 잘 아는 바와 같이 ‘자행(自行)’과 ‘화타행(化他行)’이 있습니다. “자행화타에 걸쳐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이며”(어서 1022쪽)라고 말씀하신 바와 같습니다. ‘근행과 창제’(자행)와 ‘절복(折伏)과 홍교(弘敎)’(화타행) 등 모든 학회활동은 행(行)으로 됩니다.
박화랑 신력과 행력은 우리의 마음 가짐 여하에 따라 강하게도 약하게도 됩니다.
채아람 신심한지는 오래 됐으나 타성에 흘렀던 사람이 병을 계기로 크게 발심해서 강하게 근행과 창제를 하며 열심히 학회활동을 하기 시작해서 훌륭히 병을 극복하고 전보다 더욱 건강해진 분이 있습니다.
이소망 열심히 ‘하고 있는 셈’인데 어느 새 타성에 빠지는…. 그 ‘하고 있는 셈’이 문제입니다. 저도 ‘발심(發心)’의 연속입니다.
김소원 그렇게 자각하여 발심하면 됩니다. 다음에는 ‘불력’과 ‘법력’에 대해 알아봅시다.
채아람 불력은 본불(本佛)이신 니치렌(日蓮) 대성인의 역용(力用) 입니다.
박화랑 대성인의 ‘역용’이란 무슨 말입니까.
김소원 대성인의 일체중생을 구제하려는 대서원(大誓願)이며 대자대비 (大慈大悲)의 힘을 말합니다. ‘보은초(報恩抄)’에 “니치렌의 자비가 광대하면 남묘호렌게쿄는 만연외(萬年外)· 미래까지도 유포(流布)하리라”(어서 329쪽)라고 있습니다.
이소망 너무나 유명한 말씀입니다.
채아람 요컨대 부처가 중생을 구제하는 힘이 ‘불력’입니다.
박화랑 끝으로 ‘법력’이란 무엇입니까.
채아람 본존님, 묘법의 우주대의 공력을 말합니다. “니치렌의 혼(魂)을 먹물에 물들여 넣어서 썼으니 믿으실지어다”(어서 1124쪽) 라고 말씀하십니다. 말법의 일체중생이 ‘절대적 행복’ 즉 ‘성불(成佛)’의 경애를 득할 수 있도록 대성인이 혼백을 담아 도현(圖顯)하신 것이 본존님입니다.
김소원 니치칸상인(日寬上人)은 본존님의 공력을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잠시라도 이 본존님을 믿고 남묘호렌게쿄라고 봉창한다면 “기원으로서 이루어지지 않음이 ?없고, 죄(罪)로서 멸(滅)하지 않음이 없으며, 복(福)으로서 오지 않음이 없고 이(理)로서 나타나지 않음이 없느니라”(<심의 본존초> 문단)라고.
박화랑 불력과 법력은 항상 엄연히 갖춰져 있군요.
김소원 그리고 불력과 법력은 우리의 신력과 행력에 따라 나타나는 것입니다.
강한 신심의 기원과 용기의 실천
채아람 그러므로 본존님의 ‘광대무변한 역용’ 즉 공덕(功德)은 우리가 신력과 행력을 어떻게 발휘할 수 있는가에 달려있는 것입니다.
이소망 예를 들면 조석근행에서 종을 칠 때 당목(撞木: 종방망이)에 힘을 넣지 않으면 종소리가 제대로 나지 않습니다.
김소원 그렇습니다. 당목이 아니라 젓가락으로 친다면 종소리는 당연히 작을 것입니다. 불력, 법력, 신력, 행력의 관계도 같습니다.
채아람 “이루어지고 이루어지지 않음은 신심에 의함이니 결코 니치렌의 잘못이 아니로다”(어서 1262쪽)라는 말씀을 마음에 깊이 새겨야 하겠습니다. 우주대의 ‘불력 법력’을 끌어내기 위해서는 본존님을 움직이게 할 수 있는 강하고 강한 신심의 기원이 근본입니다. 그리고 강력한 용기의 실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