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료실
-
2012년 6월호 좌담회어서 - 법련 내용과 동일
관리자
2012-05-25
9,007
6월 반좌담회 어서
개목초(開目抄)
고난과 투쟁하기 때문에 부처의 힘을 낼 수 있다
강한 신심으로 맞서자
[배경과 대의]
〈개목초〉는 니치렌대성인이 바로 말법의 본불(本佛), 즉 ‘인본존(人本尊)’임을 밝힌 ‘인본존 개현(開顯)의 서(書)’입니다. 대성인이 사도에 도착한 직후부터 집필에 몰두해 1272년 2월에 시조깅고를 통해 제자 일동에게 주셨습니다. 제목인 ‘개목’은 문자 그대로 “눈을 뜨다.”라는 말로, 말법의 일체중생을 구할 “대성인에게 눈을 떠라.”는 외침이라고 생각합니다.
대성인은 전년 9월 12일에 다쓰노구치법난을 당하고 이어서 사도로 유배되셨습니다. 제자들도 투옥되거나 추방당하고 소령을 몰수당하는 박해를 받고 “가마쿠라에서도 감죄(勘罪)의 때, 천중(千中) 구백구십구인(九百九十九人)이 퇴전했는데”(어서 907쪽)라는 성훈처럼 의심을 일으켜 퇴전하는 사람이 속출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대성인은 “대성인이 법화경 행자라면 어째서 제천이 가호하지 않는가?” 등, 세간 사람들이나 동요하는 제자들이 품은 의심이나 비판에 답하셨습니다.
먼저 사람들이 존경해야 할 대상으로 주사친(主師親)의 삼덕(三德)을 나타내고, 유교•외도(外道)•불교의 주사친을 설하셨습니다. 이어서 석존이 설한 일대성교(一代聖敎)의 깊고 얕음을 살펴보고, 법화경 본문수량품 문저(文底)에 비침된 사(事)의 일념삼천이 바로 성불하는 법이라고 밝히셨습니다. 그리고 대성인은 법화경 행자로 홀로 일어서서 많은 대난을 받았다고 말씀하십니다.
이 어서 후반에서는 “왜 제천이 가호하지 않는가?”라는 비판에 답하고, 법화경에서 설한 ‘삼류강적(三類强敵)’ 등을 바탕으로 말법의 법화경 행자가 난을 받는 일은 경문에 나온 내용과 같다고 가르치십니다.
그리고 제천의 가호가 있든 없든 민중을 구하기 위한 묘법을 넓히고, 일본의 기둥이자 안목이자 대선(大船)이 되겠노라고 불석신명(不惜身命)의 대서원을 세우셨습니다. 또 제자들에게는 어떤 난이 닥쳐도 신심을 관철하면 반드시 불계에 이른다는 성불의 길을 가르치셨습니다. 끝으로 대성인이 바로 말법시대 일체중생의 주사친이라는 점을 밝히고 이 어서를 끝맺으셨습니다.
[개목초 어서전집 234쪽 7행~9행]
나와 더불어 나의 제자는 제난이 있을지라도 의심이 없으면 자연히 불계에 이르리라. 천의 가호가 없음을 의심하지 말 것이며 현세가 안온하지 않음을 한탄하지 말지어다. 나의 제자에게 조석으로 가르쳐왔건만 의심을 일으켜서 모두 버렸으리라. 어리석은 자의 버릇이란 약속한 일을 필요한 때에는 잊어버리느니라.
[통 해]
나도 그리고 내 제자도 어떠한 난이 일어나도 의심이 없으면 반드시 불계에 이른다.
천의 가호가 없다고 해서 신앙을 의심하면 안 된다. 현세가 안온하지 않다고 해서 한탄하면 안 된다.
내 제자에게 아침저녁으로 가르쳤건만 의심을 일으켜서 모두 법화경을 버리고 말았다. 어리석은 사람은 항상 약속한 일을 중요한 때에 잊어버리고 만다.
[어 구 해 설]
【천(天)의 가호(加護)】 법화경 행자를 지키겠다고 맹세한 제천선신의 가호를 말함.
【현세(現世)가 안온(安穩)】 법화경 약초유품 제5에서는 “현세 안온”이라 하여, 묘법을 신수하는 사람은 현세에 안온한 경애를 얻는다고 설했다.
【필요한 때】 세상일이 현실이 되었을 때. 여기서는 난에 직면해서 성불할 기회를 얻었을 때를 말함.
[포인트 강의]
‘필 요한 때’에 투쟁하는 신심을
이번 달 어서는‘난을 극복하는 신심’을 가르치신 중요한 성훈입니다.
니치렌대성인은 “결국은 천(天)도 버리시고 제난(諸難)도 당하여라, 신명을 바칠 뿐이로다.”(어서 232쪽)라고 하여, 설령 제천의 가호가 없을지라도 말법의 일체중생을 구하고자 신명을 바쳐 광선유포를 위해 투쟁하겠다는 대서원을 세우셨습니다.
“제자여, 그 스승의 사자후에 호응해서 불이(不二)의 신심으로 일어서라.” 하고, 만감을 담아 외치신 부분이 “나와 더불어 나의 제자”로 시작하는 어문입니다.
일생성불을 목표로 하는 도중에 ‘삼장사마’가 다투어 일어나고 광선유포 도상에서 ‘삼류강적’이 출래함은 경전에서 설한 내용과 같습니다.
대성인은 제천의 가호가 없거나 현세가 안온하지 않음을 의심하면 안 된다, 한탄하면 안 된다고 거듭 가르치셨습니다. 불신(不信)이나 방법(謗法)은 신심을 파괴하기 때문입니다.
그럼 어떻게 하면 난을 극복할 수 있을까요.
“의심이 없으면”, 다시 말해 대성인과 같은 불석신명의 ‘강한 믿음’을 관철하면 어떠한 고난도 승리해내는 강력한 생명력을 용현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자연히’ 성불의 경애를 열 수 있다는 가르침입니다.
대성인은 제자들에게 이러한 점을 진작 가르쳤지만 현실의 난에 직면하자 많은 사람이 의심을 일으켜 퇴전했습니다.
‘필요한 때’야말로 사제의 약속을 절대로 잊지 않고 강한 신심으로 맞서야 합니다.
이케다 SGI 회장은 말씀하셨습니다.
“‘난즉오달(難卽悟達)’ 인생에서 불법(佛法)의 난, 신앙하는 도중에 일어나는 난은 모두 ‘부처가 되려고 일어나는 난’입니다. 부처가 된다는 것은 ‘영원한 행복’ ‘영원한 승리’를 의미합니다. 영원한 부처와 동등한 인격과 인간으로서 궁극적인 힘을 지닌 자기 자신이 될 기회입니다.”
‘필요한 때’에 투쟁하는 신심에 ‘불계’가 빛난다는 사실을 확신하고 다부지게 전진하지 않겠습니까.
[신입회원과 함께하는 좌담회어서]
고뇌도 내려다볼 수 있는 내가 된다
- 이달은 이케다 선생님이 “이것만 기억하면 됩니다. 이것만 잊지 않으면 괜찮습니다.”라고 말씀하신 〈개목초〉의 한 구절을 배웁니다.
중요한 어서군요.
- 아무리 괴로운 일이 생겨도 ‘의심하지 않고’ 계속 투쟁하는 사람은 반드시 흔들리지 않는 경애가 된다! 도다 선생님은 그 경애를 “살아 있다는 자체가 즐겁다.” “화가 났을 때도 유쾌하게 화를 낸다.”고 설명하셨습니다.
말하자면 어떤 분노나 괴로움도 내려다보고 무슨 일이 생겨도 즐겁게 전진한다, 그렇게 강하고 현명한 경애가 언제라도 용솟음치는 내가 된다는 말이지요.
정말 그렇게 되고 싶네요. 그렇지만 나도 모르게 의심하고 맙니다.
- (웃음) “의심이 없다.”는 말을 잘못 이해하고 있는 듯하네요.
아니, “의심하면 안 된다.”는 말이 아닌가요?
- 열심히 신심에 힘쓰는데 안 좋은 일을 겪으면 당연히 ‘왜 그럴까?’ 하고 생각합니다.
본디 〈개목초〉의 중요한 주제는 당연히 있어야 할 제천의 수호가 왜 없었느냐 하는 당시 사람들이 품은 ‘의심’입니다.
모든 사람을 구하고자 신심을 권유했더니 여럿이 합세해서 비난하고 온 나라가 욕을 하고 목을 자르려고 한 데다, 사실무근한 죄를 뒤집어씌워 유배까지 처했습니다. ‘왜 수호를 받지 못하는가!’라는 ‘의심’을 정면에서 답변하신 내용이지요.
그 말을 들으니 안심이 되는군요.
- ‘의심’을 극복하면 반드시 신심이 깊어집니다. 거꾸로 질문은 하지만 ‘의심’을 계속 품고 있다면 어떻게 될까요?
음, 우선 근행을 하지 않고, 회합도 가고 싶지 않겠지요(웃음).
- 저도 그렇습니다(웃음). 쏜살같이 불행한 길로 달려가는 거지요(웃음). 그러다 외톨이가 되면 거기서 좀처럼 빠져나올 수 없습니다. 그래서 학회 선배가 있고, 동지가 있습니다.
그렇군요! 학회에서 멀어지면 안 되겠네요.
- 학회에서 멀어지면 어본존에게서 멀어집니다. 괴로워하거나 고민하거나 의심해도 어본존 앞에 앉는다, 그리고 제목을 부른다, 그렇게 하면 ‘의심’을 없앨 수 있습니다.
그러면 되나요?
- 제목의 힘은 확실합니다. 제목을 끝까지 부르면 고난에 지지 않는 ‘강함’이 생깁니다. 똑바로 응시하며 앞으로 나아갈 ‘용기’가 생깁니다. 그리고 승리하기 위한 ‘지혜’가 생깁니다. 반드시 손을 내미는 내 편이 나타나 후원해줍니다. 제목을 부르면 ‘자연히’ 그렇게 됩니다.
그것이 ‘불계’군요.
- 벚꽃은 반드시 피지요. 겨울에 아무리 눈이 많이 내렸을지라도, 꽁꽁 얼어붙은 추위가 제아무리 계속 이어져도 꽃은 어김없이 핍니다. 벚꽃이 피지 않는다는 상상은 해본 적도 없지요. 대성인도 그렇게 생각하셨습니다. 제목을 끝까지 부르면 반드시 행복의 꽃이 핍니다.
아무리 힘들어도 제목을 멈추지 말라는 말씀이군요.
- 그렇지요. 지속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이케다 선생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괴로우면 괴로운 채로 제목을 부릅니다. 슬프면 슬픈 채로 어본존께 부딪칩니다. 고뇌는 고뇌로 크게 내려다보면서 앞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어본존을 배알함은 전 우주를 멀리 내다보고, 내려다보는 것과 같습니다. 자신의 괴로운 생명까지 내려다볼 수 있는 내가 됩니다.”
정말 제목은 굉장합니다!
개목초(開目抄)
고난과 투쟁하기 때문에 부처의 힘을 낼 수 있다
강한 신심으로 맞서자
[배경과 대의]
〈개목초〉는 니치렌대성인이 바로 말법의 본불(本佛), 즉 ‘인본존(人本尊)’임을 밝힌 ‘인본존 개현(開顯)의 서(書)’입니다. 대성인이 사도에 도착한 직후부터 집필에 몰두해 1272년 2월에 시조깅고를 통해 제자 일동에게 주셨습니다. 제목인 ‘개목’은 문자 그대로 “눈을 뜨다.”라는 말로, 말법의 일체중생을 구할 “대성인에게 눈을 떠라.”는 외침이라고 생각합니다.
대성인은 전년 9월 12일에 다쓰노구치법난을 당하고 이어서 사도로 유배되셨습니다. 제자들도 투옥되거나 추방당하고 소령을 몰수당하는 박해를 받고 “가마쿠라에서도 감죄(勘罪)의 때, 천중(千中) 구백구십구인(九百九十九人)이 퇴전했는데”(어서 907쪽)라는 성훈처럼 의심을 일으켜 퇴전하는 사람이 속출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대성인은 “대성인이 법화경 행자라면 어째서 제천이 가호하지 않는가?” 등, 세간 사람들이나 동요하는 제자들이 품은 의심이나 비판에 답하셨습니다.
먼저 사람들이 존경해야 할 대상으로 주사친(主師親)의 삼덕(三德)을 나타내고, 유교•외도(外道)•불교의 주사친을 설하셨습니다. 이어서 석존이 설한 일대성교(一代聖敎)의 깊고 얕음을 살펴보고, 법화경 본문수량품 문저(文底)에 비침된 사(事)의 일념삼천이 바로 성불하는 법이라고 밝히셨습니다. 그리고 대성인은 법화경 행자로 홀로 일어서서 많은 대난을 받았다고 말씀하십니다.
이 어서 후반에서는 “왜 제천이 가호하지 않는가?”라는 비판에 답하고, 법화경에서 설한 ‘삼류강적(三類强敵)’ 등을 바탕으로 말법의 법화경 행자가 난을 받는 일은 경문에 나온 내용과 같다고 가르치십니다.
그리고 제천의 가호가 있든 없든 민중을 구하기 위한 묘법을 넓히고, 일본의 기둥이자 안목이자 대선(大船)이 되겠노라고 불석신명(不惜身命)의 대서원을 세우셨습니다. 또 제자들에게는 어떤 난이 닥쳐도 신심을 관철하면 반드시 불계에 이른다는 성불의 길을 가르치셨습니다. 끝으로 대성인이 바로 말법시대 일체중생의 주사친이라는 점을 밝히고 이 어서를 끝맺으셨습니다.
[개목초 어서전집 234쪽 7행~9행]
나와 더불어 나의 제자는 제난이 있을지라도 의심이 없으면 자연히 불계에 이르리라. 천의 가호가 없음을 의심하지 말 것이며 현세가 안온하지 않음을 한탄하지 말지어다. 나의 제자에게 조석으로 가르쳐왔건만 의심을 일으켜서 모두 버렸으리라. 어리석은 자의 버릇이란 약속한 일을 필요한 때에는 잊어버리느니라.
[통 해]
나도 그리고 내 제자도 어떠한 난이 일어나도 의심이 없으면 반드시 불계에 이른다.
천의 가호가 없다고 해서 신앙을 의심하면 안 된다. 현세가 안온하지 않다고 해서 한탄하면 안 된다.
내 제자에게 아침저녁으로 가르쳤건만 의심을 일으켜서 모두 법화경을 버리고 말았다. 어리석은 사람은 항상 약속한 일을 중요한 때에 잊어버리고 만다.
[어 구 해 설]
【천(天)의 가호(加護)】 법화경 행자를 지키겠다고 맹세한 제천선신의 가호를 말함.
【현세(現世)가 안온(安穩)】 법화경 약초유품 제5에서는 “현세 안온”이라 하여, 묘법을 신수하는 사람은 현세에 안온한 경애를 얻는다고 설했다.
【필요한 때】 세상일이 현실이 되었을 때. 여기서는 난에 직면해서 성불할 기회를 얻었을 때를 말함.
[포인트 강의]
‘필 요한 때’에 투쟁하는 신심을
이번 달 어서는‘난을 극복하는 신심’을 가르치신 중요한 성훈입니다.
니치렌대성인은 “결국은 천(天)도 버리시고 제난(諸難)도 당하여라, 신명을 바칠 뿐이로다.”(어서 232쪽)라고 하여, 설령 제천의 가호가 없을지라도 말법의 일체중생을 구하고자 신명을 바쳐 광선유포를 위해 투쟁하겠다는 대서원을 세우셨습니다.
“제자여, 그 스승의 사자후에 호응해서 불이(不二)의 신심으로 일어서라.” 하고, 만감을 담아 외치신 부분이 “나와 더불어 나의 제자”로 시작하는 어문입니다.
일생성불을 목표로 하는 도중에 ‘삼장사마’가 다투어 일어나고 광선유포 도상에서 ‘삼류강적’이 출래함은 경전에서 설한 내용과 같습니다.
대성인은 제천의 가호가 없거나 현세가 안온하지 않음을 의심하면 안 된다, 한탄하면 안 된다고 거듭 가르치셨습니다. 불신(不信)이나 방법(謗法)은 신심을 파괴하기 때문입니다.
그럼 어떻게 하면 난을 극복할 수 있을까요.
“의심이 없으면”, 다시 말해 대성인과 같은 불석신명의 ‘강한 믿음’을 관철하면 어떠한 고난도 승리해내는 강력한 생명력을 용현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자연히’ 성불의 경애를 열 수 있다는 가르침입니다.
대성인은 제자들에게 이러한 점을 진작 가르쳤지만 현실의 난에 직면하자 많은 사람이 의심을 일으켜 퇴전했습니다.
‘필요한 때’야말로 사제의 약속을 절대로 잊지 않고 강한 신심으로 맞서야 합니다.
이케다 SGI 회장은 말씀하셨습니다.
“‘난즉오달(難卽悟達)’ 인생에서 불법(佛法)의 난, 신앙하는 도중에 일어나는 난은 모두 ‘부처가 되려고 일어나는 난’입니다. 부처가 된다는 것은 ‘영원한 행복’ ‘영원한 승리’를 의미합니다. 영원한 부처와 동등한 인격과 인간으로서 궁극적인 힘을 지닌 자기 자신이 될 기회입니다.”
‘필요한 때’에 투쟁하는 신심에 ‘불계’가 빛난다는 사실을 확신하고 다부지게 전진하지 않겠습니까.
[신입회원과 함께하는 좌담회어서]
고뇌도 내려다볼 수 있는 내가 된다
- 이달은 이케다 선생님이 “이것만 기억하면 됩니다. 이것만 잊지 않으면 괜찮습니다.”라고 말씀하신 〈개목초〉의 한 구절을 배웁니다.
중요한 어서군요.
- 아무리 괴로운 일이 생겨도 ‘의심하지 않고’ 계속 투쟁하는 사람은 반드시 흔들리지 않는 경애가 된다! 도다 선생님은 그 경애를 “살아 있다는 자체가 즐겁다.” “화가 났을 때도 유쾌하게 화를 낸다.”고 설명하셨습니다.
말하자면 어떤 분노나 괴로움도 내려다보고 무슨 일이 생겨도 즐겁게 전진한다, 그렇게 강하고 현명한 경애가 언제라도 용솟음치는 내가 된다는 말이지요.
정말 그렇게 되고 싶네요. 그렇지만 나도 모르게 의심하고 맙니다.
- (웃음) “의심이 없다.”는 말을 잘못 이해하고 있는 듯하네요.
아니, “의심하면 안 된다.”는 말이 아닌가요?
- 열심히 신심에 힘쓰는데 안 좋은 일을 겪으면 당연히 ‘왜 그럴까?’ 하고 생각합니다.
본디 〈개목초〉의 중요한 주제는 당연히 있어야 할 제천의 수호가 왜 없었느냐 하는 당시 사람들이 품은 ‘의심’입니다.
모든 사람을 구하고자 신심을 권유했더니 여럿이 합세해서 비난하고 온 나라가 욕을 하고 목을 자르려고 한 데다, 사실무근한 죄를 뒤집어씌워 유배까지 처했습니다. ‘왜 수호를 받지 못하는가!’라는 ‘의심’을 정면에서 답변하신 내용이지요.
그 말을 들으니 안심이 되는군요.
- ‘의심’을 극복하면 반드시 신심이 깊어집니다. 거꾸로 질문은 하지만 ‘의심’을 계속 품고 있다면 어떻게 될까요?
음, 우선 근행을 하지 않고, 회합도 가고 싶지 않겠지요(웃음).
- 저도 그렇습니다(웃음). 쏜살같이 불행한 길로 달려가는 거지요(웃음). 그러다 외톨이가 되면 거기서 좀처럼 빠져나올 수 없습니다. 그래서 학회 선배가 있고, 동지가 있습니다.
그렇군요! 학회에서 멀어지면 안 되겠네요.
- 학회에서 멀어지면 어본존에게서 멀어집니다. 괴로워하거나 고민하거나 의심해도 어본존 앞에 앉는다, 그리고 제목을 부른다, 그렇게 하면 ‘의심’을 없앨 수 있습니다.
그러면 되나요?
- 제목의 힘은 확실합니다. 제목을 끝까지 부르면 고난에 지지 않는 ‘강함’이 생깁니다. 똑바로 응시하며 앞으로 나아갈 ‘용기’가 생깁니다. 그리고 승리하기 위한 ‘지혜’가 생깁니다. 반드시 손을 내미는 내 편이 나타나 후원해줍니다. 제목을 부르면 ‘자연히’ 그렇게 됩니다.
그것이 ‘불계’군요.
- 벚꽃은 반드시 피지요. 겨울에 아무리 눈이 많이 내렸을지라도, 꽁꽁 얼어붙은 추위가 제아무리 계속 이어져도 꽃은 어김없이 핍니다. 벚꽃이 피지 않는다는 상상은 해본 적도 없지요. 대성인도 그렇게 생각하셨습니다. 제목을 끝까지 부르면 반드시 행복의 꽃이 핍니다.
아무리 힘들어도 제목을 멈추지 말라는 말씀이군요.
- 그렇지요. 지속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이케다 선생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괴로우면 괴로운 채로 제목을 부릅니다. 슬프면 슬픈 채로 어본존께 부딪칩니다. 고뇌는 고뇌로 크게 내려다보면서 앞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어본존을 배알함은 전 우주를 멀리 내다보고, 내려다보는 것과 같습니다. 자신의 괴로운 생명까지 내려다볼 수 있는 내가 됩니다.”
정말 제목은 굉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