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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12월호 좌담회어서 홈페이지 강의 원고
관리자
2011-11-28
8,841
12월 반좌담회 어서 강의 <소야전답서>
안녕하십니까? 이번달 어서는 <소야전답서>입니다.
이 어서는 1276년 8월, 대성인이 미노부에서 시모우사에 있는 소야전에게 보내신 어서입니다. 소야 가문의 소야교신은 시모우사 방면에서 활약한 문하들 중에서도 중심적인 존재로 중요한 법문이 담긴 여러 편의 어서를 받은 것으로 보아, 신심과 학식을 갖춘 인물인 듯합니다. 이 어서는 ‘성불용심초’라는 별명처럼 남묘호렌게쿄야말로 성불의 원리인 ‘경지이법’에 합당한 것임을 밝히면서 말법에는 ‘방법’을 책해야만 성불할 수 있다는, ‘성불을 위해 유념해야 할 마음가짐’을 강조하신 어서입니다.
경지의 ‘지’는 지혜이고, ‘경’은 지혜가 포착하는 대상입니다. 깊고도 넓은 부처의 지혜는 만물의 본질에 도달하고 경지가 합치됩니다. 이 부처의 깨달음인 경지이법을 반듯하게 신수하면 즉신성불 할 수 있습니다.
대성인은 이 경지이법이란 남묘호렌게쿄뿐이라고 밝히셨습니다. 부처는 법화경에서 지용보살에게 말법 악세에 고뇌하는 중생을 구하고자 이 남묘호렌게쿄를 넓히라고 의탁했습니다. 그리고 그 경문대로 오로지 홀로 온갖 난을 견디고 극복하면서 홍통하신 분이 바로 대성인입니다. 그러므로 대성인이 바로 말법의 일체중생에게 성불의 근본법을 전수해주신 ‘근원의 스승’임이 암시되어 있습니다.
또한 세간과 불법의 도리에 비춰 그릇된 스승을 버리고 올바른 스승을 따라야한다는 점을 가르치셨습니다. 특히 말법의 승들이 불법의 도리를 알지 못하고 법화경의 적으로 변한 실태를 지적하며, 경문에 비춰 그 방법을 엄하게 훈계하고 가책해야 하는 중요성을 가르치셨습니다.
그리고 법화경 경문 등을 인용한 결론으로써, 근본으로 삼아야 할 스승을 거스르지 않는 일이 성불하는 요체라고 지남한 뒤 “아직 단념하지 않노라.”라고, 목숨에 미치는 대난에도 민중을 구하겠다는 마음을 절대로 굽히지 않겠다는 의지를 내비치며 이 어서를 끝맺으셨습니다.
그럼 [본문]을 함께 읽겠습니다.
[ 본 문 ] 소야전답서 1056쪽 13행 ~ 15행
이 법문을 니치렌이 말하므로, 충언은 귀에 거슬림이 도리이기에 유죄되어 생명에도 미치었느니라. 그러나 아직 단념하지 않노라. 법화경은 종자와 같고, 부처는 심는 사람과 같으며, 중생은 밭과 같으니라.
이어서 [통해]를 읽어드리겠습니다.
[ 통 해 ]
니치렌이 이 법문을 설하므로, “충언은 귀에 거슬림”이 도리이기에 유배당하거나 목숨이 위태로웠다. 그러나 아직 단념하지 않는다. 법화경은 씨앗과 같고 부처는 그 씨앗을 심는 사람이며, 중생은 밭과 같다.
[ 어 구 해 설 ]
【충언은 귀에 거슬림】이란 공자의 언행 등을 기록한 《공자가어》에 “충언은 귀에 거슬린다.”는 말이 있습니다. 진심어린 충고는 결점이나 과오를 날카롭게 지적하기 때문에 충고를 받는 사람이 순순히 받아들이기 힘들다는 뜻입니다.
[ 어 서 해 설 ]
‘우리가 지금 누구 덕분에 묘법을 신앙할 수 있는가.’ 하고 생각해보면 각자의 가슴속에 혼신을 다해 신심을 가르쳐준 선배나 동지, 가족의 모습이 떠오를 것입니다. 그 가장 근원이 되는 존재가 바로 대성인입니다.
이 어서에서는 누가 근본의 스승인지를 망각하면 성불의 길에서 벗어나게 된다고 가르치십니다. 당시의 모든 종파는 아미타불이나 대일여래를 신봉하고, 석존을 업신여기며 법화경을 비방했습니다. 그에 반해 대성인은 “이 법문”, 다시 말해 근본으로 삼을 스승을 거슬러서는 안 된다고 설하고 제종의 방법을 강하게 책망했습니다. 그러한 까닭에 “충언은 귀에 거슬림”이라는 도리대로 편견이나 사법에 집착하는 사람들에게 오히려 심한 미움을 사서 유배를 당하거나 목숨까지 위협하는 박해를 받으셨습니다.
그럼에도 대성인은 “아직 단념하지 않노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일절에서 광선유포를 향한 투쟁을 결코 포기하지 않겠다는 강한 뜻을 읽을 수 있습니다. 대성인이 대난을 극복하고 법화경을 넓히지 않았다면 말법의 중생을 구할 법은 끊어지고 말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법에 대해서 “법화경은 씨앗과 같고 부처는 그 씨앗을 심는 사람이며, 중생은 밭과 같다.”고 중대한 의의를 밝히셨습니다.
남묘호렌게쿄는 모든 사람을 부처로 만드는 근본적인 불종입니다. 그리고 부처는 그 씨앗을 심는 사람이 되어, 중생의 마음이라는 밭에 성불할 수 있는 씨앗을 심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묘법을 말함으로써 그 사람의 생명에 본디 갖추어진 불성을 되살아나게 할 수 있습니다. 절복.홍교는 말 그대로 벗의 마음에 묘법의 씨앗을 심는 ‘부처의 행동’입니다.
포인트
첫째 포인트는 따라야할 스승을 거스르면 성불은 할 수 없다는 점입니다.
대성인은 절대로 악승을 따라서는 안 된다. 목숨을 걸고 사람들에게 묘법을 넓히는 대성인을 근원의 스승으로 삼아야 한다고 강조하십니다.
일체중생의 행복을 바라며 거듭되는 대난에 맞서 싸워 오신 대성인의 정신에 정면에서 위배하는 것이 닛켄종입니다.
닛켄종은 절복도 하지 않고 공양만을 탐내며 사치와 유흥에 빠졌으면서도 불석신명으로 광선유포를 위해 투쟁하는 창가학회에 박해를 가하기 위해 계책을 꾸몄습니다. 어서에 비춰 닛켄의 대죄는 분명합니다.
지난 11월로 닛켄종이 학회에 파문 통보를 한 지 20년이 됐습니다.
그 동안 학회는 이케다 선생님의 사신홍법의 투쟁으로 세계 192개국에 창가연대를 확대했습니다. 반대로 닛켄종은 신도수가 2%까지 감소했으며 멸망의 나락으로 떨어지고 있습니다. 정사는 분명합니다.
우리는 어디까지나 대성인 직결의 신심으로 이케다 선생님과 함께 명랑하게 세계 광포를 위해 전진해야겠습니다.
둘째 포인트는 사람들의 마음에 부처의 씨앗을 심는 하종의 대화가 중요하다는 점입니다.
하종에는 문법하종과 발심하종이 있습니다.
문법하종은 ‘법을 듣는다’는 말처럼 상대에게 묘법을 말하고 듣게 하는 것입니다. 상대가 바로 신심을 하든 하지 않든 그것은 관계없습니다.
이와는 달리 발심하종은 상대가 ‘나도 신심을 해보자’고 발심하는 것입니다.
이케다 선생님은 하종에 대해 다음과 같이 지도하셨습니다.
절복은 어서에 씌어 있는 여설수행이며 “난사(難事) 중의 난사”다. 그리고 정법을 들려주는 ‘문법하종(聞法下種)’이나 상대방이 결의하는 ‘발심하종(發心下種)’도 공덕은 같다. 최고로 존귀한 ‘여래의 일’을 하고 있다.
중요한 점은 상대의 행복을 진심으로 바라고 성불의 근본법인 묘법을 자기답게 성실하게 끝까지 말해야 합니다.
말한 쪽도 듣는 쪽도 커다란 선근과 공덕을 생명에 새길 수 있습니다.
우리는 자타 함께 행복을 지향하며 한 사람이라도 더 많은 사람에게 묘법의 위대함과 학회의 훌륭함을 이야기해 가야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안녕하십니까? 이번달 어서는 <소야전답서>입니다.
이 어서는 1276년 8월, 대성인이 미노부에서 시모우사에 있는 소야전에게 보내신 어서입니다. 소야 가문의 소야교신은 시모우사 방면에서 활약한 문하들 중에서도 중심적인 존재로 중요한 법문이 담긴 여러 편의 어서를 받은 것으로 보아, 신심과 학식을 갖춘 인물인 듯합니다. 이 어서는 ‘성불용심초’라는 별명처럼 남묘호렌게쿄야말로 성불의 원리인 ‘경지이법’에 합당한 것임을 밝히면서 말법에는 ‘방법’을 책해야만 성불할 수 있다는, ‘성불을 위해 유념해야 할 마음가짐’을 강조하신 어서입니다.
경지의 ‘지’는 지혜이고, ‘경’은 지혜가 포착하는 대상입니다. 깊고도 넓은 부처의 지혜는 만물의 본질에 도달하고 경지가 합치됩니다. 이 부처의 깨달음인 경지이법을 반듯하게 신수하면 즉신성불 할 수 있습니다.
대성인은 이 경지이법이란 남묘호렌게쿄뿐이라고 밝히셨습니다. 부처는 법화경에서 지용보살에게 말법 악세에 고뇌하는 중생을 구하고자 이 남묘호렌게쿄를 넓히라고 의탁했습니다. 그리고 그 경문대로 오로지 홀로 온갖 난을 견디고 극복하면서 홍통하신 분이 바로 대성인입니다. 그러므로 대성인이 바로 말법의 일체중생에게 성불의 근본법을 전수해주신 ‘근원의 스승’임이 암시되어 있습니다.
또한 세간과 불법의 도리에 비춰 그릇된 스승을 버리고 올바른 스승을 따라야한다는 점을 가르치셨습니다. 특히 말법의 승들이 불법의 도리를 알지 못하고 법화경의 적으로 변한 실태를 지적하며, 경문에 비춰 그 방법을 엄하게 훈계하고 가책해야 하는 중요성을 가르치셨습니다.
그리고 법화경 경문 등을 인용한 결론으로써, 근본으로 삼아야 할 스승을 거스르지 않는 일이 성불하는 요체라고 지남한 뒤 “아직 단념하지 않노라.”라고, 목숨에 미치는 대난에도 민중을 구하겠다는 마음을 절대로 굽히지 않겠다는 의지를 내비치며 이 어서를 끝맺으셨습니다.
그럼 [본문]을 함께 읽겠습니다.
[ 본 문 ] 소야전답서 1056쪽 13행 ~ 15행
이 법문을 니치렌이 말하므로, 충언은 귀에 거슬림이 도리이기에 유죄되어 생명에도 미치었느니라. 그러나 아직 단념하지 않노라. 법화경은 종자와 같고, 부처는 심는 사람과 같으며, 중생은 밭과 같으니라.
이어서 [통해]를 읽어드리겠습니다.
[ 통 해 ]
니치렌이 이 법문을 설하므로, “충언은 귀에 거슬림”이 도리이기에 유배당하거나 목숨이 위태로웠다. 그러나 아직 단념하지 않는다. 법화경은 씨앗과 같고 부처는 그 씨앗을 심는 사람이며, 중생은 밭과 같다.
[ 어 구 해 설 ]
【충언은 귀에 거슬림】이란 공자의 언행 등을 기록한 《공자가어》에 “충언은 귀에 거슬린다.”는 말이 있습니다. 진심어린 충고는 결점이나 과오를 날카롭게 지적하기 때문에 충고를 받는 사람이 순순히 받아들이기 힘들다는 뜻입니다.
[ 어 서 해 설 ]
‘우리가 지금 누구 덕분에 묘법을 신앙할 수 있는가.’ 하고 생각해보면 각자의 가슴속에 혼신을 다해 신심을 가르쳐준 선배나 동지, 가족의 모습이 떠오를 것입니다. 그 가장 근원이 되는 존재가 바로 대성인입니다.
이 어서에서는 누가 근본의 스승인지를 망각하면 성불의 길에서 벗어나게 된다고 가르치십니다. 당시의 모든 종파는 아미타불이나 대일여래를 신봉하고, 석존을 업신여기며 법화경을 비방했습니다. 그에 반해 대성인은 “이 법문”, 다시 말해 근본으로 삼을 스승을 거슬러서는 안 된다고 설하고 제종의 방법을 강하게 책망했습니다. 그러한 까닭에 “충언은 귀에 거슬림”이라는 도리대로 편견이나 사법에 집착하는 사람들에게 오히려 심한 미움을 사서 유배를 당하거나 목숨까지 위협하는 박해를 받으셨습니다.
그럼에도 대성인은 “아직 단념하지 않노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일절에서 광선유포를 향한 투쟁을 결코 포기하지 않겠다는 강한 뜻을 읽을 수 있습니다. 대성인이 대난을 극복하고 법화경을 넓히지 않았다면 말법의 중생을 구할 법은 끊어지고 말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법에 대해서 “법화경은 씨앗과 같고 부처는 그 씨앗을 심는 사람이며, 중생은 밭과 같다.”고 중대한 의의를 밝히셨습니다.
남묘호렌게쿄는 모든 사람을 부처로 만드는 근본적인 불종입니다. 그리고 부처는 그 씨앗을 심는 사람이 되어, 중생의 마음이라는 밭에 성불할 수 있는 씨앗을 심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묘법을 말함으로써 그 사람의 생명에 본디 갖추어진 불성을 되살아나게 할 수 있습니다. 절복.홍교는 말 그대로 벗의 마음에 묘법의 씨앗을 심는 ‘부처의 행동’입니다.
포인트
첫째 포인트는 따라야할 스승을 거스르면 성불은 할 수 없다는 점입니다.
대성인은 절대로 악승을 따라서는 안 된다. 목숨을 걸고 사람들에게 묘법을 넓히는 대성인을 근원의 스승으로 삼아야 한다고 강조하십니다.
일체중생의 행복을 바라며 거듭되는 대난에 맞서 싸워 오신 대성인의 정신에 정면에서 위배하는 것이 닛켄종입니다.
닛켄종은 절복도 하지 않고 공양만을 탐내며 사치와 유흥에 빠졌으면서도 불석신명으로 광선유포를 위해 투쟁하는 창가학회에 박해를 가하기 위해 계책을 꾸몄습니다. 어서에 비춰 닛켄의 대죄는 분명합니다.
지난 11월로 닛켄종이 학회에 파문 통보를 한 지 20년이 됐습니다.
그 동안 학회는 이케다 선생님의 사신홍법의 투쟁으로 세계 192개국에 창가연대를 확대했습니다. 반대로 닛켄종은 신도수가 2%까지 감소했으며 멸망의 나락으로 떨어지고 있습니다. 정사는 분명합니다.
우리는 어디까지나 대성인 직결의 신심으로 이케다 선생님과 함께 명랑하게 세계 광포를 위해 전진해야겠습니다.
둘째 포인트는 사람들의 마음에 부처의 씨앗을 심는 하종의 대화가 중요하다는 점입니다.
하종에는 문법하종과 발심하종이 있습니다.
문법하종은 ‘법을 듣는다’는 말처럼 상대에게 묘법을 말하고 듣게 하는 것입니다. 상대가 바로 신심을 하든 하지 않든 그것은 관계없습니다.
이와는 달리 발심하종은 상대가 ‘나도 신심을 해보자’고 발심하는 것입니다.
이케다 선생님은 하종에 대해 다음과 같이 지도하셨습니다.
절복은 어서에 씌어 있는 여설수행이며 “난사(難事) 중의 난사”다. 그리고 정법을 들려주는 ‘문법하종(聞法下種)’이나 상대방이 결의하는 ‘발심하종(發心下種)’도 공덕은 같다. 최고로 존귀한 ‘여래의 일’을 하고 있다.
중요한 점은 상대의 행복을 진심으로 바라고 성불의 근본법인 묘법을 자기답게 성실하게 끝까지 말해야 합니다.
말한 쪽도 듣는 쪽도 커다란 선근과 공덕을 생명에 새길 수 있습니다.
우리는 자타 함께 행복을 지향하며 한 사람이라도 더 많은 사람에게 묘법의 위대함과 학회의 훌륭함을 이야기해 가야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