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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7월호 좌담회어서 홈페이지 강의 원고
구형모
2010-06-25
7,310
[ 7월 좌담회어서 강의 - <우에노전답서(용문어서)> ]
안녕하십니까? 이번달 어서는 <우에노전답서>입니다.
이 어서는 1279년 11월 6일, 니치렌대성인이 미노부에서 스루가지방(시즈오카현 중부)에 사는 난조 도키미쓰에게 준 편지이며 별명을 ‘용문어서’라고 합니다.
도키미쓰는 어릴 때부터 대성인의 제자가 되어 닛코상인에게 격려 받으며 신심에 면려한 당시 스물한살의 청년리더였습니다.
한편, 스루가지방에 광대한 영지를 소유하고 절대적 권력을 잡고 있던 호조가문은 닛코상인의 투쟁으로 이 지방의 광선유포가 전진하자, 대성인 문하를 비난하며 법화경의 신앙을 포기하도록 각종 박해를 가했습니다.
특히 1279년 가을에는 아쓰하라 농민신도 스무명이 사실무근한 죄로 억울하게 체포되고, 헤이노사에몬노조에게 세명이 참수 당해 순교한 아쓰하라법난이 일어납니다.
도키미쓰는 아쓰하라법난 속에서 탄압 받은 동지를 돕기 위해 헌신적으로 노력했습니다.
이 어서에서 대성인은 물고기가 용이 되려면 반드시 용문이라는 폭포를 올라야 하듯이, 부처가 되려면 생명을 위협하는 대난을 극복해야 한다고 하며, 제자들에게 지금 대원을 세워 법화경을 위해 신명을 바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럼 본문을 함께 읽겠습니다.
[ 본 문 ]
원컨대 나의 제자 등은 대원을 세우라. 거년 재작년의 역병으로 죽은 사람들의 수에도 들어가지 않았고, 또 당시 몽고의 공격에서 벗어나리라고도 보이지 않는다. 어쨌든 죽음은 일정이니라. 그때의 한탄은 당시와 같으리라. 이왕이면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법화경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시라. 이슬을 대해에다 넣고 먼지를 대지에 묻는다고 생각하시라. 법화경의 제삼에 가로되 ‘원컨대 이 공덕으로써 널리 일체에 미치게 하여 우리와 중생과 모두 함께 불도를 이루겠노라.’ 운운.
(어서 1561쪽 1행~5행)
이어서 통해를 읽어 드리겠습니다.
[ 통 해 ]
원하건대, 내 제자들이여 대원을 일으키시라. (그대들은) 지난해, 지지난해에 유행한 역병으로 타개한 사람들의 수에도 들어가지 않았다. 그리고 지금 몽고가 쳐들어 오면 죽음을 면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할 수 없다. 어쨌든 죽음은 피할 수 없다. 그때의 한탄은 현재의 박해로 인해 죽는 한탄과 같다. 똑같이 죽는다면, 이왕이면 법화경을 위해 목숨을 버리시라. 이것이 바로 이슬을 대해에 넣고 먼지를 대지에 묻는 일과 같다고 생각하시라. 법화경 제3권에 “원컨대 이 공덕으로써 널리 일체에 미치게 하여 우리와 중생이 모두 함께 불도를 이루겠노라.”라고 설해져 있다.
[ 어 구 해 설 ]
[“그때의 한탄은 당시와 같으리라.”의 당시】는 현재라는 뜻이며, 1279년 대성인 문하가 받은 아쓰하라법난의 때를 가리킵니다.
[ 어 서 해 설 ]
이 어서에서 니치렌대성인은 제자들에게 “대원을 세우라.”고 강력히 말씀하셨습니다. 당시는 일본 전체가 재난에 휩싸였던 시대였습니다. 역병 등으로 죽지 않아도 몽고의 공격으로 인한 죽음은 피하기 어려운 상황에 처했습니다.
대성인 문하는 아쓰하라법난을 받은 시기였고 권력의 탄압이 가하는 대난을 각오해야 했습니다. 대성인은 어쨌든 죽음을 면하기 어려우면 “법화경을 위해 목숨을 버려라.”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슬’이 ‘대해’와 하나가 되고, ‘먼지’가 ‘대지’와 하나가 되듯이 덧없이 작은 생명이라도 대원을 위해 끝까지 살고 묘법에 끝까지 바친다면, 영원하고 무한한 자비의 대생명과 하나가 됩니다. 거기에는 근본적인 사명을 이루는 만족감, 충실감이 넘칩니다. 이것이 바로 구원에 이룬 ‘지용보살’의 대서원을 각성하는 일입니다.
대성인은 법화경 화성유품의 한 구절을 인용하고 이 어서를 끝맺으셨습니다.
“우리와 중생과 모두 함께 불도를 이루겠노라.” 하고 말씀하셨듯이, 내 생명을 묘법에 바친 공덕은 자기뿐 아니라 일체중생에게 돌아가며 또 모든 중생이 성불하는 힘이 됩니다.
조그만 자기 세계를 타파할 때, 가장 가치 있는 자신의 인생이 열립니다. 그런 확신으로 오늘도 새로운 도전의 한 걸음을 힘차게 내디딥시다.
[ 포인트 강의 ]
첫째 포인트는 “제자들이여, 대원을 세워라”는 점입니다.
현실 생활을 보면 병과 사고와 경제고 등 온갖 숙명의 폭풍우는 나의 사정과는 관계 없이 나타납니다.
신심에 면려하면 삼장사마가 다투어 일어납니다. 이러한 고난 속에서도 존귀한 학회 동지는 이를 악물고 ‘광선유포를 위해 승리하게 해주십시오, 반드시 숙명전환하여 광포를 위해 활동하겠습니다’고 맹세하며 한계를 부수는 도전을 해왔습니다.
최악의 상황에서도 광선유포의 대원을 불러 일으켜 지용 보살의 저력을 상기시켰을 때 반드시 자신의 작은 경애를 깨고 일체를 승리하는 위대한 용기와 지혜가 샘솟습니다.
니치렌 불법은 서원의 종교입니다. <어의구전>에는 “대원이란 법화홍통이니라.”(어서 736쪽)고 씌어 있습니다.
우리 창가학회의 사제는 이러한 광선유포의 대원을 공유한 사제입니다.
도다 선생님은 제2차 세계대전 중, 탄압당한 구치소에서 ‘동지의 노래’를 작곡하셨습니다.
우리 지금 부처님의 뜻을 받아서
묘법 유포의 대원을
드높이 받쳐 들고 혼자서 선다
내 동지는 적고 적은 많도다
최악의 상황에서 민중구제의 대원에 홀로 일어서신 분이 창가의 스승입니다.
이 스승의 마음을 계승하는 곳에 학회 정신이 있습니다.
이케다 선생님은 다음과 같이 쓰셨습니다.
제자가 자기중심의 ‘소원(小願)’에 머무는 한, 사제불이는 되지 않는다. 작고 좁은 자신으로 일생이 끝나고 만다. ‘대원’은 스승과 같은 서원(誓願)에 서는 것이다. 법화경 행자인 스승과 마음을 합쳐 행동하는 것이다. 그때 이슬을 대해에 넣고 먼지를 대지에 묻듯이, 헤아릴 수 없는 웅대한 경애가 열린다.
따라서 위대한 희망에 살고 위대한 용기를 내어 행동해야 합니다.
그렇게 했을 때 자신의 경애도 반드시 크게 열립니다.
둘째 포인트는 “자신이 불도수행을 하여 얻은 공덕을 중생에게 회향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회향이라고 하면 먼저 돌아가신 분들에 대한 추선 회향을 떠올릴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회향에는 자신이 기원하고 투쟁한 묘법의 공덕은 모든 사람에게 회향할 수 있다는 뜻이 있습니다. 자기 혼자만 행복해지는 것이 아니라 연이 있는 모든 사람, 즉 살아있는 모든 사람에게도, 돌아가신 분들에게도 자신의 공덕을 아낌없이 돌릴 수 있습니다. 이 얼마나 넓은 마음입니까.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의 승리는 결코 자신만의 승리가 아닙니다.
일가일족에도, 선조대대 에게도 통합니다.
그리고 이 정의로운 승리와 이러한 승리의 파동이 지역과 사회 나아가 세계를 선의 방향으로 움직이게 함은 틀림없습니다.
자, 사제승리의 7월을 목표로 함께 광선유포의 대원을 혁혁히 불태우며 용기 내어 계속해서 전진해 가지 않겠습니까. 고맙습니다.
안녕하십니까? 이번달 어서는 <우에노전답서>입니다.
이 어서는 1279년 11월 6일, 니치렌대성인이 미노부에서 스루가지방(시즈오카현 중부)에 사는 난조 도키미쓰에게 준 편지이며 별명을 ‘용문어서’라고 합니다.
도키미쓰는 어릴 때부터 대성인의 제자가 되어 닛코상인에게 격려 받으며 신심에 면려한 당시 스물한살의 청년리더였습니다.
한편, 스루가지방에 광대한 영지를 소유하고 절대적 권력을 잡고 있던 호조가문은 닛코상인의 투쟁으로 이 지방의 광선유포가 전진하자, 대성인 문하를 비난하며 법화경의 신앙을 포기하도록 각종 박해를 가했습니다.
특히 1279년 가을에는 아쓰하라 농민신도 스무명이 사실무근한 죄로 억울하게 체포되고, 헤이노사에몬노조에게 세명이 참수 당해 순교한 아쓰하라법난이 일어납니다.
도키미쓰는 아쓰하라법난 속에서 탄압 받은 동지를 돕기 위해 헌신적으로 노력했습니다.
이 어서에서 대성인은 물고기가 용이 되려면 반드시 용문이라는 폭포를 올라야 하듯이, 부처가 되려면 생명을 위협하는 대난을 극복해야 한다고 하며, 제자들에게 지금 대원을 세워 법화경을 위해 신명을 바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럼 본문을 함께 읽겠습니다.
[ 본 문 ]
원컨대 나의 제자 등은 대원을 세우라. 거년 재작년의 역병으로 죽은 사람들의 수에도 들어가지 않았고, 또 당시 몽고의 공격에서 벗어나리라고도 보이지 않는다. 어쨌든 죽음은 일정이니라. 그때의 한탄은 당시와 같으리라. 이왕이면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법화경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시라. 이슬을 대해에다 넣고 먼지를 대지에 묻는다고 생각하시라. 법화경의 제삼에 가로되 ‘원컨대 이 공덕으로써 널리 일체에 미치게 하여 우리와 중생과 모두 함께 불도를 이루겠노라.’ 운운.
(어서 1561쪽 1행~5행)
이어서 통해를 읽어 드리겠습니다.
[ 통 해 ]
원하건대, 내 제자들이여 대원을 일으키시라. (그대들은) 지난해, 지지난해에 유행한 역병으로 타개한 사람들의 수에도 들어가지 않았다. 그리고 지금 몽고가 쳐들어 오면 죽음을 면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할 수 없다. 어쨌든 죽음은 피할 수 없다. 그때의 한탄은 현재의 박해로 인해 죽는 한탄과 같다. 똑같이 죽는다면, 이왕이면 법화경을 위해 목숨을 버리시라. 이것이 바로 이슬을 대해에 넣고 먼지를 대지에 묻는 일과 같다고 생각하시라. 법화경 제3권에 “원컨대 이 공덕으로써 널리 일체에 미치게 하여 우리와 중생이 모두 함께 불도를 이루겠노라.”라고 설해져 있다.
[ 어 구 해 설 ]
[“그때의 한탄은 당시와 같으리라.”의 당시】는 현재라는 뜻이며, 1279년 대성인 문하가 받은 아쓰하라법난의 때를 가리킵니다.
[ 어 서 해 설 ]
이 어서에서 니치렌대성인은 제자들에게 “대원을 세우라.”고 강력히 말씀하셨습니다. 당시는 일본 전체가 재난에 휩싸였던 시대였습니다. 역병 등으로 죽지 않아도 몽고의 공격으로 인한 죽음은 피하기 어려운 상황에 처했습니다.
대성인 문하는 아쓰하라법난을 받은 시기였고 권력의 탄압이 가하는 대난을 각오해야 했습니다. 대성인은 어쨌든 죽음을 면하기 어려우면 “법화경을 위해 목숨을 버려라.”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슬’이 ‘대해’와 하나가 되고, ‘먼지’가 ‘대지’와 하나가 되듯이 덧없이 작은 생명이라도 대원을 위해 끝까지 살고 묘법에 끝까지 바친다면, 영원하고 무한한 자비의 대생명과 하나가 됩니다. 거기에는 근본적인 사명을 이루는 만족감, 충실감이 넘칩니다. 이것이 바로 구원에 이룬 ‘지용보살’의 대서원을 각성하는 일입니다.
대성인은 법화경 화성유품의 한 구절을 인용하고 이 어서를 끝맺으셨습니다.
“우리와 중생과 모두 함께 불도를 이루겠노라.” 하고 말씀하셨듯이, 내 생명을 묘법에 바친 공덕은 자기뿐 아니라 일체중생에게 돌아가며 또 모든 중생이 성불하는 힘이 됩니다.
조그만 자기 세계를 타파할 때, 가장 가치 있는 자신의 인생이 열립니다. 그런 확신으로 오늘도 새로운 도전의 한 걸음을 힘차게 내디딥시다.
[ 포인트 강의 ]
첫째 포인트는 “제자들이여, 대원을 세워라”는 점입니다.
현실 생활을 보면 병과 사고와 경제고 등 온갖 숙명의 폭풍우는 나의 사정과는 관계 없이 나타납니다.
신심에 면려하면 삼장사마가 다투어 일어납니다. 이러한 고난 속에서도 존귀한 학회 동지는 이를 악물고 ‘광선유포를 위해 승리하게 해주십시오, 반드시 숙명전환하여 광포를 위해 활동하겠습니다’고 맹세하며 한계를 부수는 도전을 해왔습니다.
최악의 상황에서도 광선유포의 대원을 불러 일으켜 지용 보살의 저력을 상기시켰을 때 반드시 자신의 작은 경애를 깨고 일체를 승리하는 위대한 용기와 지혜가 샘솟습니다.
니치렌 불법은 서원의 종교입니다. <어의구전>에는 “대원이란 법화홍통이니라.”(어서 736쪽)고 씌어 있습니다.
우리 창가학회의 사제는 이러한 광선유포의 대원을 공유한 사제입니다.
도다 선생님은 제2차 세계대전 중, 탄압당한 구치소에서 ‘동지의 노래’를 작곡하셨습니다.
우리 지금 부처님의 뜻을 받아서
묘법 유포의 대원을
드높이 받쳐 들고 혼자서 선다
내 동지는 적고 적은 많도다
최악의 상황에서 민중구제의 대원에 홀로 일어서신 분이 창가의 스승입니다.
이 스승의 마음을 계승하는 곳에 학회 정신이 있습니다.
이케다 선생님은 다음과 같이 쓰셨습니다.
제자가 자기중심의 ‘소원(小願)’에 머무는 한, 사제불이는 되지 않는다. 작고 좁은 자신으로 일생이 끝나고 만다. ‘대원’은 스승과 같은 서원(誓願)에 서는 것이다. 법화경 행자인 스승과 마음을 합쳐 행동하는 것이다. 그때 이슬을 대해에 넣고 먼지를 대지에 묻듯이, 헤아릴 수 없는 웅대한 경애가 열린다.
따라서 위대한 희망에 살고 위대한 용기를 내어 행동해야 합니다.
그렇게 했을 때 자신의 경애도 반드시 크게 열립니다.
둘째 포인트는 “자신이 불도수행을 하여 얻은 공덕을 중생에게 회향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회향이라고 하면 먼저 돌아가신 분들에 대한 추선 회향을 떠올릴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회향에는 자신이 기원하고 투쟁한 묘법의 공덕은 모든 사람에게 회향할 수 있다는 뜻이 있습니다. 자기 혼자만 행복해지는 것이 아니라 연이 있는 모든 사람, 즉 살아있는 모든 사람에게도, 돌아가신 분들에게도 자신의 공덕을 아낌없이 돌릴 수 있습니다. 이 얼마나 넓은 마음입니까.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의 승리는 결코 자신만의 승리가 아닙니다.
일가일족에도, 선조대대 에게도 통합니다.
그리고 이 정의로운 승리와 이러한 승리의 파동이 지역과 사회 나아가 세계를 선의 방향으로 움직이게 함은 틀림없습니다.
자, 사제승리의 7월을 목표로 함께 광선유포의 대원을 혁혁히 불태우며 용기 내어 계속해서 전진해 가지 않겠습니까.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