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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2월호 좌담회 어서 (법련내용, 홈페이지 강의원고)
관리자
2023-02-15
464
2023년 2월 좌담회 어서 <센니치니부인답서>(뇌문고어서)
안녕하십니까?
이번달 어서는 <센니치니부인답서>입니다.
이 어서는 1278년 윤10월 19일, 대성인이 57세 때, 미노부에서 사도에 있는 센니치니 앞으로 보내신 편지입니다.
센니치니와 남편 아부쓰보는 대성인이 사도에 유배되었을 때 제자가 되어, 신변의 위험을 무릅쓰고 대성인을 지킨 사도 지방의 중심 문하입니다.
대성인이 사면되어 미노부에 입산하신 뒤에도, 아부쓰보는 고령임에도 불구하고 사도에서 미노부까지 먼 길을 마다하지 않고 수차례 공양물을 짊어지고 대성인을 찾아갔습니다.
대성인은 그때마다 남편을 보내고 집을 지키는 센니치니의 노고를 헤아려 편지를 보내 따뜻하게 격려하셨습니다. 이 어서는 그중 한통입니다.
대성인은 이 어서 첫머리에서 센니치니가 보낸 공양물에 깊이 감사하고, 흙떡을 공양하여 아소카왕으로 태어난 덕승동자 등의 고사를 인용해 공양의 공덕이 얼마나 큰지 가르치셨습니다.
그리고 법화경은 삼세시방에 걸친 제불의 스승이기에, 그 법화경을 공양하는 사람은 모든 부처에게 공양한 것과 똑같이 헤아릴 수 없는 공덕을 받는다고 밝히셨습니다.
또 법화경은 모든 경 중 가장 뛰어난 사자왕의 경전이므로 법화경을 수지하는 여인은 무엇도 두려워할 필요가 없고, 어떠한 숙명도 묘법의 힘에 의해 공덕으로 전환할 수 있다며, 숙명전환의 신심을 밝히셨습니다.
게다가 하늘의 달이 ‘사만유순’을 넘어 땅에 있는 연못에 비치듯이, 뇌문의 북소리가 ‘천만리’를 넘어 들려오듯이, 사도에서 미노부까지 남편을 보낸 센니치니의 진심은 아무리 멀리 떨어져 있어도 대성인에게 바로 전해진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부처가 되는 길도 이와 같아서 우리 사제는 설령 각자 몸은 떨어져 고뇌로 가득한 예토에 살고 있더라도, 마음은 성불의 세계인 영산에 살고 있다며, 사제불이의 마음의 중요성을 가르치셨습니다.
그럼 [본문]을 함께 읽겠습니다.
[본문] (어서전집 1316쪽 15행~18행)
비유하면 천월은 사만유순이지만 대지의 연못에는 수유에 그림자가 비치고, 뇌문의 북은 천만리나 멀어도 치면 수유에 들린다. 그대는 사도의 지방에 계시더라도 마음은 이 지방에 왔느니라. 부처가 되는 길도 이와 같으니, 우리들은 예토에 있지만 마음은 영산에 사느니라. 얼굴을 본들 무엇하리오. 마음이야말로 소중합니다.
이어서 [통해]를 읽어드리겠습니다.
[통해]
예를 들면 하늘의 달은 사만유순이나 떨어져 있지만 땅에 있는 연못에는 순식간에 달 그림자가 비칩니다. 뇌문의 북은 천만리나 멀리 있어도 북을 치면 순식간에 들립니다. 마찬가지로 당신의 몸은 사도 지방에 있지만 마음은 이 지방(미노부)에 와 있습니다. 부처가 되는 길도 이와 같습니다. 우리는 예토에 살고 있지만 마음은 영산정토에 살고 있습니다. 얼굴을 본다 해도 무엇하겠습니까. 마음이야말로 중요합니다.
[어구해설]
<유순>은 산스크리트어 요자나를 음역한 말입니다. 유선나라고도 합니다. 인도에서 쓰던 거리의 단위로, 1유순은 당시 왕이 하루에 행군하는 거리를 말하며 대략 10킬로미터 정도로 여겨집니다.
<수유>는 시간의 단위로 하루의 30분의 1을 가리키는 경우와 가장 짧은 시간의 단위인 순간을 가리키는 경우가 있는데, 여기서는 후자를 의미합니다.
<뇌문의 북>은 중국 뤄양의 도읍에서 멀리 떨어진 회계성으로 지금의 항저우라는 도시의 뇌문에 있던 거대한 북입니다. 이 북을 치면 그 소리가 순식간에 멀리 있는 뤄양까지 들렸다고 합니다.
<예토>는 더럽혀진 국토를 말합니다. 번뇌와 괴로움이 충만한, 범부가 사는 사바세계를 가리킵니다.
<영산>은 영취산의 줄임말입니다. 이 산에서 법화경을 설했다고 하며, 구원의 부처가 있는 불국토를 의미합니다.
[포인트]
대성인은 배독 어문의 첫머리에 센니치니가 스승을 구도하는 마음이 거리를 초월해 전해진다고 비유를 들어 나타내셨습니다.
다시 말해, 하늘에 떠 있는 달 그림자가 곧바로 땅에 있는 연못에 비치듯이, 고대 중국의 ‘뇌문의 북’ 소리가 천만리 떨어져 있어도 순식간에 들리듯이 ‘당신의 마음은 틀림없이 내게 전해진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센니치니는 법화경의 신심을 관철해, 해마다 대성인이 계신 곳에 남편을 보내 진심 어린 공양물을 전했습니다.
그렇지만 ‘멀리 떨어져 있는 대성인을 더 이상 뵐 수 없는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렇기에 ‘마음은 나와 함께 투쟁하고 있다.’는 스승의 격려가 센니치니에게 얼마나 큰 용기와 희망을 주었을지 이루 다 헤아릴 수 없습니다.
대성인은 이어지는 어문에서 “부처가 되는 길”에서도 중요한 것은 ‘마음’이라고 밝히셨습니다. 대성인은 우리 ‘몸’은 ‘예토’라는 고뇌로 가득한 현실세계에 있어도, 정법을 행하는 우리 ‘마음’은 함께 ‘영취산’ 다시 말해, 상적광토에 있다고 가르치셨습니다.
“마음은 영산에 사느니라.”는 자신의 흉중에는 무엇에도 지지 않는 ‘부처의 생명’을 용현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이를 확신하고 어떤 때에도 신심으로 마음을 연마해 전진하는 것이 불도수행의 근본입니다.
또 “얼굴을 본들 무엇하리오. 마음이야말로 소중합니다.”라는 말씀처럼, ‘만날 수 있느냐 없느냐’와 같은 형식이 아닌 ‘사제불이의 마음’이야말로 중요하다고 결론지으셨습니다.
이케다 선생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사제불이, 이것이 창가의 대도입니다. 지금까지 학회가 삼장사마, 삼류강적과 싸울 때, 일심불란으로 철저히 기원하고 정의를 끝까지 외친 사람은 나와 불이의 마음으로 일어선 존귀한 무관의 학회원이었습니다. 용감한 서민이 학회를 지탱하고 지켜 오늘날의 큰 발전을 구축했습니다. ‘사제불이’의 혼이 모든 장마를 물리쳤습니다.”
우리는 언제나 스승과 함께 구도심을 불태워 광포의 대도를 나아갑시다.
감사합니다.
안녕하십니까?
이번달 어서는 <센니치니부인답서>입니다.
이 어서는 1278년 윤10월 19일, 대성인이 57세 때, 미노부에서 사도에 있는 센니치니 앞으로 보내신 편지입니다.
센니치니와 남편 아부쓰보는 대성인이 사도에 유배되었을 때 제자가 되어, 신변의 위험을 무릅쓰고 대성인을 지킨 사도 지방의 중심 문하입니다.
대성인이 사면되어 미노부에 입산하신 뒤에도, 아부쓰보는 고령임에도 불구하고 사도에서 미노부까지 먼 길을 마다하지 않고 수차례 공양물을 짊어지고 대성인을 찾아갔습니다.
대성인은 그때마다 남편을 보내고 집을 지키는 센니치니의 노고를 헤아려 편지를 보내 따뜻하게 격려하셨습니다. 이 어서는 그중 한통입니다.
대성인은 이 어서 첫머리에서 센니치니가 보낸 공양물에 깊이 감사하고, 흙떡을 공양하여 아소카왕으로 태어난 덕승동자 등의 고사를 인용해 공양의 공덕이 얼마나 큰지 가르치셨습니다.
그리고 법화경은 삼세시방에 걸친 제불의 스승이기에, 그 법화경을 공양하는 사람은 모든 부처에게 공양한 것과 똑같이 헤아릴 수 없는 공덕을 받는다고 밝히셨습니다.
또 법화경은 모든 경 중 가장 뛰어난 사자왕의 경전이므로 법화경을 수지하는 여인은 무엇도 두려워할 필요가 없고, 어떠한 숙명도 묘법의 힘에 의해 공덕으로 전환할 수 있다며, 숙명전환의 신심을 밝히셨습니다.
게다가 하늘의 달이 ‘사만유순’을 넘어 땅에 있는 연못에 비치듯이, 뇌문의 북소리가 ‘천만리’를 넘어 들려오듯이, 사도에서 미노부까지 남편을 보낸 센니치니의 진심은 아무리 멀리 떨어져 있어도 대성인에게 바로 전해진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부처가 되는 길도 이와 같아서 우리 사제는 설령 각자 몸은 떨어져 고뇌로 가득한 예토에 살고 있더라도, 마음은 성불의 세계인 영산에 살고 있다며, 사제불이의 마음의 중요성을 가르치셨습니다.
그럼 [본문]을 함께 읽겠습니다.
[본문] (어서전집 1316쪽 15행~18행)
비유하면 천월은 사만유순이지만 대지의 연못에는 수유에 그림자가 비치고, 뇌문의 북은 천만리나 멀어도 치면 수유에 들린다. 그대는 사도의 지방에 계시더라도 마음은 이 지방에 왔느니라. 부처가 되는 길도 이와 같으니, 우리들은 예토에 있지만 마음은 영산에 사느니라. 얼굴을 본들 무엇하리오. 마음이야말로 소중합니다.
이어서 [통해]를 읽어드리겠습니다.
[통해]
예를 들면 하늘의 달은 사만유순이나 떨어져 있지만 땅에 있는 연못에는 순식간에 달 그림자가 비칩니다. 뇌문의 북은 천만리나 멀리 있어도 북을 치면 순식간에 들립니다. 마찬가지로 당신의 몸은 사도 지방에 있지만 마음은 이 지방(미노부)에 와 있습니다. 부처가 되는 길도 이와 같습니다. 우리는 예토에 살고 있지만 마음은 영산정토에 살고 있습니다. 얼굴을 본다 해도 무엇하겠습니까. 마음이야말로 중요합니다.
[어구해설]
<유순>은 산스크리트어 요자나를 음역한 말입니다. 유선나라고도 합니다. 인도에서 쓰던 거리의 단위로, 1유순은 당시 왕이 하루에 행군하는 거리를 말하며 대략 10킬로미터 정도로 여겨집니다.
<수유>는 시간의 단위로 하루의 30분의 1을 가리키는 경우와 가장 짧은 시간의 단위인 순간을 가리키는 경우가 있는데, 여기서는 후자를 의미합니다.
<뇌문의 북>은 중국 뤄양의 도읍에서 멀리 떨어진 회계성으로 지금의 항저우라는 도시의 뇌문에 있던 거대한 북입니다. 이 북을 치면 그 소리가 순식간에 멀리 있는 뤄양까지 들렸다고 합니다.
<예토>는 더럽혀진 국토를 말합니다. 번뇌와 괴로움이 충만한, 범부가 사는 사바세계를 가리킵니다.
<영산>은 영취산의 줄임말입니다. 이 산에서 법화경을 설했다고 하며, 구원의 부처가 있는 불국토를 의미합니다.
[포인트]
대성인은 배독 어문의 첫머리에 센니치니가 스승을 구도하는 마음이 거리를 초월해 전해진다고 비유를 들어 나타내셨습니다.
다시 말해, 하늘에 떠 있는 달 그림자가 곧바로 땅에 있는 연못에 비치듯이, 고대 중국의 ‘뇌문의 북’ 소리가 천만리 떨어져 있어도 순식간에 들리듯이 ‘당신의 마음은 틀림없이 내게 전해진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센니치니는 법화경의 신심을 관철해, 해마다 대성인이 계신 곳에 남편을 보내 진심 어린 공양물을 전했습니다.
그렇지만 ‘멀리 떨어져 있는 대성인을 더 이상 뵐 수 없는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렇기에 ‘마음은 나와 함께 투쟁하고 있다.’는 스승의 격려가 센니치니에게 얼마나 큰 용기와 희망을 주었을지 이루 다 헤아릴 수 없습니다.
대성인은 이어지는 어문에서 “부처가 되는 길”에서도 중요한 것은 ‘마음’이라고 밝히셨습니다. 대성인은 우리 ‘몸’은 ‘예토’라는 고뇌로 가득한 현실세계에 있어도, 정법을 행하는 우리 ‘마음’은 함께 ‘영취산’ 다시 말해, 상적광토에 있다고 가르치셨습니다.
“마음은 영산에 사느니라.”는 자신의 흉중에는 무엇에도 지지 않는 ‘부처의 생명’을 용현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이를 확신하고 어떤 때에도 신심으로 마음을 연마해 전진하는 것이 불도수행의 근본입니다.
또 “얼굴을 본들 무엇하리오. 마음이야말로 소중합니다.”라는 말씀처럼, ‘만날 수 있느냐 없느냐’와 같은 형식이 아닌 ‘사제불이의 마음’이야말로 중요하다고 결론지으셨습니다.
이케다 선생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사제불이, 이것이 창가의 대도입니다. 지금까지 학회가 삼장사마, 삼류강적과 싸울 때, 일심불란으로 철저히 기원하고 정의를 끝까지 외친 사람은 나와 불이의 마음으로 일어선 존귀한 무관의 학회원이었습니다. 용감한 서민이 학회를 지탱하고 지켜 오늘날의 큰 발전을 구축했습니다. ‘사제불이’의 혼이 모든 장마를 물리쳤습니다.”
우리는 언제나 스승과 함께 구도심을 불태워 광포의 대도를 나아갑시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