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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1월호 좌담회 어서 (법련내용, 홈페이지 강의원고)
관리자
2019-12-26
1,879
2020년 1월 좌담회 어서 <법화경제목초>
안녕하십니까?
이번달 어서는 <법화경제목초> 입니다.
<법화경제목초>는 대성인이 1266년 1월에 집필하신 어서로 누구에게 주셨는지는 분명하지 않지만 내용을 보아 예전에 염불을 신앙한 여성에게 주셨다고 추측됩니다.
어서 이름 그대로 이 어서는 남묘호렌게쿄라는 제목의 위대한 공력을 가르치셨습니다.
첫머리에서는 “제목의 의미를 모르고 불러도 공덕이 있는가”라는 질문을 드셨습니다. 대성인은 이 질문에 관해 법화경의 제목이야말로 부처의 방대한 가르침의 간심이자 모든 부처의 안목임을 확인하고 제목을 실천하는 근본은 ‘신’이라고 강조하셨습니다.
다시 말해 이해는 하지만 신심이 없는 ‘유해무신’인 사람은 아비대성에 떨어지고, 이해는 못해도 신심이 있는 ‘무해유신’인 사람은 성불한다며 신심이야말로 말법에 성불하는 요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어서 묘법을 만나 제목을 부르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자각하고 창제하도록 가르치셨습니다.
또 “묘호렌게쿄의 다섯 글자에 얼마나 큰 공덕이 담겨 있는가”라는 질문에 남묘호렌게쿄는 단순한 이름이 아니라 구계 및 불계의 중생 그리고 중생을 둘러싼 환경인 국토를 포함한 근본 법리 그 자체라고 나타내셨습니다.
그리고 ‘묘’라는 글자에 담긴 세가지 의의를 밝히셨습니다. 다시 말해 첫째, 제경의 곳간을 열어 부처의 진의인 묘법을 나타내는 ‘연다는 뜻’. 둘째, 모든 공덕을 담아 일체중생을 성불시키는 힘이 있다는 ‘구족·원만의 뜻’. 셋째, 성불할 수 없다고 하는 악인, 여인, 이승도 소생시키고 성불시키는 ‘소생의 뜻’입니다. 이것을 ‘묘의 삼의’라고 합니다.
마지막으로 법화경은 여인성불을 설한 유일한 경전이라고 강조한 뒤 악지식에 휩쓸리지 말고 오로지 남묘호렌게쿄라고 부르라고 말씀하시며 이 어서를 끝맺으셨습니다.
그럼 [본문]을 함께 읽겠습니다.
[ 본 문 ] (어서전집 943쪽 12행~13행)
묘라고 하는 것은 개라고 하는 것이며 세간에 재물을 쌓은 장에 열쇠가 없으면 열 수 없고 열지 않으면 장내의 재물을 보지 못한다.
이어서 [통해]를 읽어드리겠습니다.
[ 통 해 ]
묘는 연다는 뜻이다. 세간의 예로 말하면 재보를 쌓아 놓은 곳간도 열쇠가 없으면 열 수 없다. 열지 못하면 곳간의 재보를 볼 수 없다.
[ 포 인 트 ]
이 어서는 묘호렌게쿄의 ‘묘’라는 글자에는 ‘연다는 뜻’, ‘구족·원만의 뜻’, ‘소생의 뜻’이 있습니다. 배독어서에서는 ‘연다’는 뜻에 관해 가르치셨습니다.
“묘라고 하는 것은 개라고 하는 것이며”라는 구절은 법화경만이 불교의 크나큰 목적인 일체중생이 성불하는 길을 여는 유일한 경전이라고 밝히셨습니다.
재보를 쌓아둔 곳간도 열쇠가 없으면 열지 못해 안을 확인할 수 없습니다.
이 비유가 나타내듯이 법화경을 설하기 이전의 제경에서는 만인성불을 밝힌 묘법이라는 보물은 곳간에 갇혀 있었습니다. 법화경을 설하고 처음으로 제경의 ‘곳간’이 열리고 불의인 묘법이라는 ‘재보’가 나타났습니다.
묘법에는 인간의 생명에 숨겨진 불성이라는 재보를 흉중에 열어 생명을 약동시키는 힘이 있습니다. 그 재보를 자기 몸에 여는 열쇠가 ‘신심’입니다. 대성인은 “개란 신심의 이명”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남묘호렌게쿄라고 부름으로써 흉중의 ‘재보’가 나타납니다. 묘법의 강성한 신심으로 누구나 공덕과 복운 넘치는 인생을 열 수 있습니다.
생명에는 우주대의 가능성이 숨겨져 있습니다. 그 위대한 생명력을 내면에서 끄집어내 모든 사람을 소생시키는 희망의 종교가 니치렌불법입니다.
이케다 선생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창제에 힘쓰고 광선유포를 위해 전진하는 우리의 불도수행은 그야말로 ‘묘의 삼의’를 자기 생활이나 인생에서 상쾌하게 나타내는 가장 존귀한 실천입니다. 따라서 우리의 신앙즉인생에는 절대로 막힘이 없습니다. 어떤 경우라도 반드시 소생할 수 있습니다. 우주의 대법칙에 따라 모든 것을 원만하게 조화시키면서 무한한 활력으로 승리할 수 있음은 성훈에 비추어 틀림없습니다.”
자, 묘법과 함께 나아가는 훌륭한 인생을 벗에게 이야기하면서 자타 함께 무한한 생명의 가능성을 열지 않겠습니까?
감사합니다.
안녕하십니까?
이번달 어서는 <법화경제목초> 입니다.
<법화경제목초>는 대성인이 1266년 1월에 집필하신 어서로 누구에게 주셨는지는 분명하지 않지만 내용을 보아 예전에 염불을 신앙한 여성에게 주셨다고 추측됩니다.
어서 이름 그대로 이 어서는 남묘호렌게쿄라는 제목의 위대한 공력을 가르치셨습니다.
첫머리에서는 “제목의 의미를 모르고 불러도 공덕이 있는가”라는 질문을 드셨습니다. 대성인은 이 질문에 관해 법화경의 제목이야말로 부처의 방대한 가르침의 간심이자 모든 부처의 안목임을 확인하고 제목을 실천하는 근본은 ‘신’이라고 강조하셨습니다.
다시 말해 이해는 하지만 신심이 없는 ‘유해무신’인 사람은 아비대성에 떨어지고, 이해는 못해도 신심이 있는 ‘무해유신’인 사람은 성불한다며 신심이야말로 말법에 성불하는 요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어서 묘법을 만나 제목을 부르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자각하고 창제하도록 가르치셨습니다.
또 “묘호렌게쿄의 다섯 글자에 얼마나 큰 공덕이 담겨 있는가”라는 질문에 남묘호렌게쿄는 단순한 이름이 아니라 구계 및 불계의 중생 그리고 중생을 둘러싼 환경인 국토를 포함한 근본 법리 그 자체라고 나타내셨습니다.
그리고 ‘묘’라는 글자에 담긴 세가지 의의를 밝히셨습니다. 다시 말해 첫째, 제경의 곳간을 열어 부처의 진의인 묘법을 나타내는 ‘연다는 뜻’. 둘째, 모든 공덕을 담아 일체중생을 성불시키는 힘이 있다는 ‘구족·원만의 뜻’. 셋째, 성불할 수 없다고 하는 악인, 여인, 이승도 소생시키고 성불시키는 ‘소생의 뜻’입니다. 이것을 ‘묘의 삼의’라고 합니다.
마지막으로 법화경은 여인성불을 설한 유일한 경전이라고 강조한 뒤 악지식에 휩쓸리지 말고 오로지 남묘호렌게쿄라고 부르라고 말씀하시며 이 어서를 끝맺으셨습니다.
그럼 [본문]을 함께 읽겠습니다.
[ 본 문 ] (어서전집 943쪽 12행~13행)
묘라고 하는 것은 개라고 하는 것이며 세간에 재물을 쌓은 장에 열쇠가 없으면 열 수 없고 열지 않으면 장내의 재물을 보지 못한다.
이어서 [통해]를 읽어드리겠습니다.
[ 통 해 ]
묘는 연다는 뜻이다. 세간의 예로 말하면 재보를 쌓아 놓은 곳간도 열쇠가 없으면 열 수 없다. 열지 못하면 곳간의 재보를 볼 수 없다.
[ 포 인 트 ]
이 어서는 묘호렌게쿄의 ‘묘’라는 글자에는 ‘연다는 뜻’, ‘구족·원만의 뜻’, ‘소생의 뜻’이 있습니다. 배독어서에서는 ‘연다’는 뜻에 관해 가르치셨습니다.
“묘라고 하는 것은 개라고 하는 것이며”라는 구절은 법화경만이 불교의 크나큰 목적인 일체중생이 성불하는 길을 여는 유일한 경전이라고 밝히셨습니다.
재보를 쌓아둔 곳간도 열쇠가 없으면 열지 못해 안을 확인할 수 없습니다.
이 비유가 나타내듯이 법화경을 설하기 이전의 제경에서는 만인성불을 밝힌 묘법이라는 보물은 곳간에 갇혀 있었습니다. 법화경을 설하고 처음으로 제경의 ‘곳간’이 열리고 불의인 묘법이라는 ‘재보’가 나타났습니다.
묘법에는 인간의 생명에 숨겨진 불성이라는 재보를 흉중에 열어 생명을 약동시키는 힘이 있습니다. 그 재보를 자기 몸에 여는 열쇠가 ‘신심’입니다. 대성인은 “개란 신심의 이명”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남묘호렌게쿄라고 부름으로써 흉중의 ‘재보’가 나타납니다. 묘법의 강성한 신심으로 누구나 공덕과 복운 넘치는 인생을 열 수 있습니다.
생명에는 우주대의 가능성이 숨겨져 있습니다. 그 위대한 생명력을 내면에서 끄집어내 모든 사람을 소생시키는 희망의 종교가 니치렌불법입니다.
이케다 선생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창제에 힘쓰고 광선유포를 위해 전진하는 우리의 불도수행은 그야말로 ‘묘의 삼의’를 자기 생활이나 인생에서 상쾌하게 나타내는 가장 존귀한 실천입니다. 따라서 우리의 신앙즉인생에는 절대로 막힘이 없습니다. 어떤 경우라도 반드시 소생할 수 있습니다. 우주의 대법칙에 따라 모든 것을 원만하게 조화시키면서 무한한 활력으로 승리할 수 있음은 성훈에 비추어 틀림없습니다.”
자, 묘법과 함께 나아가는 훌륭한 인생을 벗에게 이야기하면서 자타 함께 무한한 생명의 가능성을 열지 않겠습니까?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