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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11월호 좌담회 어서 (법련내용, 홈페이지 강의원고)
관리자
2019-10-28
1,931
안녕하십니까?
이번달 어서는 <소야전답서>입니다.
<소야전답서>는 1276년 8월, 대성인이 쉰다섯살 때 미노부에서 시모우사 지방의 중심 문하인 소야 교신이거나 아니면 그 일족의 누군가에게 보내신 편지입니다.
성불하기 위해 마음을 써야 할 점이 씌어 있어 별명을 ‘성불용심초’라고 합니다.
이 어서 첫머리에서 성불의 길은 ‘경지의 이법’에 있다고 밝히셨습니다.
‘경’은 관찰하는 대상을 말하고, ‘지’는 관찰하는 지혜를 말합니다. 이전경의 ‘지’는 얕고, ‘경’과 ‘지’가 동떨어져 있어 부처의 진실한 깨달음을 밝히지 못합니다. 법화경이야말로 부처의 진실한 지혜와 깨달음을 나타내고 경지명합해 즉신성불도 가능케 합니다.
대성인은 법화경에서 밝힌 ‘경지의 이법’이 다름 아닌 남묘호렌게쿄라고 나타내셨습니다.
이어서 성불의 근본법 다시 말해 불종인 묘법을 가르쳐준 ‘근원의 스승’을 잊으면 성불은 없다고 가르치셨습니다. 그리고 세간과 불법의 도리에 비추어 그릇된 스승은 버리고 올바른 스승을 따라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특히 말법의 중들이 불법의 도리를 몰라 스승을 멸시하고 단나에게 아첨한다고 말씀하시고 ‘법화경의 적을 보면서 책하지 않으면 무간지옥은 의심할 바 없다’ ‘방법을 책하지 않고서는 성불을 원해도 이룰 수 없다’고 엄하게 단언하셨습니다.
마지막으로 법화경의 경문 등을 인용해 ‘본종의 스승’을 위배하지 않는 것이 성불의 요체라고 거듭 가르치셨습니다.
대성인은 이러한 부처의 진의를 잊은 말법의 사람들을 훈계했다는 이유로 유배당하고 목숨이 위태로운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그러나 “아직 단념하지 않노라”는 대자비로 어떠한 난에도 굴하지 않고 민중구제를 위해 싸우겠다는 결의를 밝히고 이 어서를 끝맺으셨습니다.
그럼 [본문]을 함께 읽겠습니다.
[ 본 문 ] (어서전집 1056쪽 13행 ~ 15행)
이 법문을 니치렌이 말하므로 충언은 귀에 거슬림이 도리이기에 유죄되어 생명에도 미치었느니라. 그러나 아직 단념하지 않노라. 법화경은 종자와 같고, 부처는 심는 사람과 같으며, 중생은 밭과 같으니라.
이어서 [통해]를 읽어드리겠습니다.
[ 통 해 ]
이 법문을 니치렌이 설하므로 ‘충언은 귀에 거슬린다’고 하는 것이 도리이기에 유배당해 목숨이 위태로운 지경에 이르렀다. 그러나 아직 단념하지 않는다. 법화경은 씨앗과 같고, 부처는 씨앗을 심는 사람과 같고, 중생은 밭과 같다.
[ 어 구 해 설 ]
<충언은 귀에 거슬린다>는 공자의 언행 등을 기록한 《공자가어》에 “충언은 귀에 거슬린다”는 말이 있는데, 진심 어린 충고는 결점이나 잘못을 날카롭게 지적하므로 충고받은 사람이 순순히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뜻입니다.
[ 포 인 트 ]
이 어서는 어떤 난이나 박해에도 지지 않고 사람들에게 묘법이라는 성불의 씨앗을 심는 광선유포의 실천을 나타내신 성훈입니다.
대성인이 살아 계실 당시의 사람들은 아미타불이나 대일여래를 신봉해 석존을 업신여기고 법화경을 비방했습니다.
이에 대성인은 “이 법문” 다시 말해 부처의 진의인 법화경을 설하고 근본으로 삼아야 할 스승을 위배하면 안 된다고 제종의 방법을 강하게 책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충언은 귀에 거슬린다’는 도리대로 편견이나 사법에 집착하는 사람들에게서 오히려 심하게 미움받아 유배를 당하거나 목숨도 위태로운 박해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대성인은 “그러나 아직 단념하지 않노라” 하고 의연하게 외치셨습니다. 이 구절은 무슨 일이 있어도 한 걸음도 물러서지 않고 모든 민중을 구제하겠다는 어본불의 대자비의 생명에서 용솟음치는 선언입니다.
대성인은 불석신명의 광포 실천을 “법화경은 종자와 같고, 부처는 심는 사람과 같으며, 중생은 밭과 같으니라.”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만인성불을 밝히는 하종 실천을 비유한 말씀입니다.
법화경의 진수인 남묘호렌게쿄는 모든 사람을 부처로 만드는 근원의 ‘불종’입니다. 그리고 부처는 ‘심는 사람’이 되어 중생의 ‘심전’에 성불의 ‘씨앗’을 심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묘법을 말하면 상대방의 생명에 있는 불성을 불러일으킬 수 있습니다.
이케다 선생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니치렌불법은 ‘하종불법’입니다. 중생의 생명에 ‘부처의 씨앗’을 심는 것입니다. 상대방이 곧바로 발심하지 않아도 반드시 꽃필 때가 옵니다. 그때를 끌어당기는 것이 기원의 힘입니다.
성의와 확신을 담아 이야기한 만큼 그 소리가 씨앗이 되어 불연이 맺어지고 복덕이 넓혀집니다. 신뢰가 생기고 신용이 남습니다.
그러므로 오늘도 용기 늠름하게 대화에 나서 벗의 마음이라는 대지에 행복의 씨앗을 심읍시다!”
우리가 실천하는 절복, 홍교는 벗의 마음에 묘법의 씨앗을 심는 ‘부처의 행동’입니다. 하반기도 자타 함께 행복을 바라는 기원을 근본으로 성실하게 진심 어린 대화를 지역에 넓힙시다.
감사합니다.
이번달 어서는 <소야전답서>입니다.
<소야전답서>는 1276년 8월, 대성인이 쉰다섯살 때 미노부에서 시모우사 지방의 중심 문하인 소야 교신이거나 아니면 그 일족의 누군가에게 보내신 편지입니다.
성불하기 위해 마음을 써야 할 점이 씌어 있어 별명을 ‘성불용심초’라고 합니다.
이 어서 첫머리에서 성불의 길은 ‘경지의 이법’에 있다고 밝히셨습니다.
‘경’은 관찰하는 대상을 말하고, ‘지’는 관찰하는 지혜를 말합니다. 이전경의 ‘지’는 얕고, ‘경’과 ‘지’가 동떨어져 있어 부처의 진실한 깨달음을 밝히지 못합니다. 법화경이야말로 부처의 진실한 지혜와 깨달음을 나타내고 경지명합해 즉신성불도 가능케 합니다.
대성인은 법화경에서 밝힌 ‘경지의 이법’이 다름 아닌 남묘호렌게쿄라고 나타내셨습니다.
이어서 성불의 근본법 다시 말해 불종인 묘법을 가르쳐준 ‘근원의 스승’을 잊으면 성불은 없다고 가르치셨습니다. 그리고 세간과 불법의 도리에 비추어 그릇된 스승은 버리고 올바른 스승을 따라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특히 말법의 중들이 불법의 도리를 몰라 스승을 멸시하고 단나에게 아첨한다고 말씀하시고 ‘법화경의 적을 보면서 책하지 않으면 무간지옥은 의심할 바 없다’ ‘방법을 책하지 않고서는 성불을 원해도 이룰 수 없다’고 엄하게 단언하셨습니다.
마지막으로 법화경의 경문 등을 인용해 ‘본종의 스승’을 위배하지 않는 것이 성불의 요체라고 거듭 가르치셨습니다.
대성인은 이러한 부처의 진의를 잊은 말법의 사람들을 훈계했다는 이유로 유배당하고 목숨이 위태로운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그러나 “아직 단념하지 않노라”는 대자비로 어떠한 난에도 굴하지 않고 민중구제를 위해 싸우겠다는 결의를 밝히고 이 어서를 끝맺으셨습니다.
그럼 [본문]을 함께 읽겠습니다.
[ 본 문 ] (어서전집 1056쪽 13행 ~ 15행)
이 법문을 니치렌이 말하므로 충언은 귀에 거슬림이 도리이기에 유죄되어 생명에도 미치었느니라. 그러나 아직 단념하지 않노라. 법화경은 종자와 같고, 부처는 심는 사람과 같으며, 중생은 밭과 같으니라.
이어서 [통해]를 읽어드리겠습니다.
[ 통 해 ]
이 법문을 니치렌이 설하므로 ‘충언은 귀에 거슬린다’고 하는 것이 도리이기에 유배당해 목숨이 위태로운 지경에 이르렀다. 그러나 아직 단념하지 않는다. 법화경은 씨앗과 같고, 부처는 씨앗을 심는 사람과 같고, 중생은 밭과 같다.
[ 어 구 해 설 ]
<충언은 귀에 거슬린다>는 공자의 언행 등을 기록한 《공자가어》에 “충언은 귀에 거슬린다”는 말이 있는데, 진심 어린 충고는 결점이나 잘못을 날카롭게 지적하므로 충고받은 사람이 순순히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뜻입니다.
[ 포 인 트 ]
이 어서는 어떤 난이나 박해에도 지지 않고 사람들에게 묘법이라는 성불의 씨앗을 심는 광선유포의 실천을 나타내신 성훈입니다.
대성인이 살아 계실 당시의 사람들은 아미타불이나 대일여래를 신봉해 석존을 업신여기고 법화경을 비방했습니다.
이에 대성인은 “이 법문” 다시 말해 부처의 진의인 법화경을 설하고 근본으로 삼아야 할 스승을 위배하면 안 된다고 제종의 방법을 강하게 책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충언은 귀에 거슬린다’는 도리대로 편견이나 사법에 집착하는 사람들에게서 오히려 심하게 미움받아 유배를 당하거나 목숨도 위태로운 박해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대성인은 “그러나 아직 단념하지 않노라” 하고 의연하게 외치셨습니다. 이 구절은 무슨 일이 있어도 한 걸음도 물러서지 않고 모든 민중을 구제하겠다는 어본불의 대자비의 생명에서 용솟음치는 선언입니다.
대성인은 불석신명의 광포 실천을 “법화경은 종자와 같고, 부처는 심는 사람과 같으며, 중생은 밭과 같으니라.”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만인성불을 밝히는 하종 실천을 비유한 말씀입니다.
법화경의 진수인 남묘호렌게쿄는 모든 사람을 부처로 만드는 근원의 ‘불종’입니다. 그리고 부처는 ‘심는 사람’이 되어 중생의 ‘심전’에 성불의 ‘씨앗’을 심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묘법을 말하면 상대방의 생명에 있는 불성을 불러일으킬 수 있습니다.
이케다 선생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니치렌불법은 ‘하종불법’입니다. 중생의 생명에 ‘부처의 씨앗’을 심는 것입니다. 상대방이 곧바로 발심하지 않아도 반드시 꽃필 때가 옵니다. 그때를 끌어당기는 것이 기원의 힘입니다.
성의와 확신을 담아 이야기한 만큼 그 소리가 씨앗이 되어 불연이 맺어지고 복덕이 넓혀집니다. 신뢰가 생기고 신용이 남습니다.
그러므로 오늘도 용기 늠름하게 대화에 나서 벗의 마음이라는 대지에 행복의 씨앗을 심읍시다!”
우리가 실천하는 절복, 홍교는 벗의 마음에 묘법의 씨앗을 심는 ‘부처의 행동’입니다. 하반기도 자타 함께 행복을 바라는 기원을 근본으로 성실하게 진심 어린 대화를 지역에 넓힙시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