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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7월호 좌담회 어서 (법련내용, 홈페이지 강의원고)
관리자
2018-06-28
2,165
안녕하십니까?
이번달 어서는 <시지시로전어서>입니다.
<시지시로전어서>는 대성인이 문하 시지시로에게 주신 편지입니다. 1261년 4월에 집필하셨다고 알려져 있지만 다른 설도 있습니다.
시지시로에게 보내신 어서는 이 어서가 유일해 어떤 인물인지 자세히 알 수 없습니다.
다만 어서 마지막에 “시조 깅고 전을 만나시면 잘 말씀하시라.” 하는 말씀도 있고, 시조 깅고나 도키 조닌에게 보낸 어서에서 시지시로의 이름을 볼 수 있습니다.
이 사실을 통해 시지시로는 대성인의 만년에 각지의 문하와 대성인 사이를 오가며 문하의 상황을 대성인에게 보고하고 또 대성인의 마음을 문하에게 전하는 역할을 맡았다고 추측됩니다.
이 어서 첫머리에는 시지시로가 대성인에게 어떤 일을 보고했다고 씌어 있습니다.
대성인이 당사자에게 그 일을 확인해보니 시지시로의 보고와 완전히 같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대성인은 보고를 받고 시지시로가 사심 없이 있는 그대로 전했다고 상찬하시고 더욱더 신심에 힘써 ‘법화경의 공덕’을 받도록 격려하셨습니다.
그리고 ‘사광의 귀’ ‘이루의 눈’처럼 앞으로도 적확하고 정확하게 모든 일을 견문하라고 가르치셨습니다.
이어서 대성인은 ‘법화경 행자’로서 대난이 올 때 기쁘게 받아들이는 대경애와 난에 지지 않는 강한 신심을 밝히셨습니다. 이번 좌담회에서 배우는 내용은 이 부분입니다.
또 법화경을 한마디라도 설하는 사람은 ‘여래의 심부름꾼’이고 시지시로 자신도 최고로 존귀한 사명에 살아가는 사람이라고 상찬하셨습니다.
그리고 법화경을 일문일구라도 듣고 혼에 물들이는 사람은 ‘묘호렌게쿄의 배’를 타고 고뇌로 가득한 생사의 대해를 건너 성불을 이룰 사람이라고 격려하시고 이 어서를 끝맺으셨습니다. 그럼 [본문]을 함께 읽겠습니다.
[본문] (어서전집 1448쪽 2행~4행)
말법에는 법화경의 행자가 반드시 출래하리라. 그러나 대난이 오면 강성한 신심은 더욱더 기뻐하느니라. 불에 장작을 더하면 성해지지 않는 일이 있겠느뇨. 대해에 중류가 들어가나 그래도 대해는 강물을 되돌려 보내는 일이 있느뇨.
이어서 [통해]를 읽어드리겠습니다.
[ 통 해 ]
말법에는 법화경 행자가 반드시 출현한다. 다만 대난이 일어났을 때는 강성한 신심으로 더욱더 기뻐해야 한다. 불에 장작을 넣으면 타오르지 않는 일이 있겠는가. 큰 바다에는 많은 강물이 흘러 들어간다. 그러나 큰 바다가 강물을 되돌려 보내는 일이 있겠는가.
[ 어 구 해 설 ]
<불에 장작을…되돌려 보내는 일이 있느뇨>는 천태대사가 설한 ‘멧돼지가 금산을 비비고 중류가 바다에 들어가고 장작이 불을 성하게 하고 바람이 구라를 증대시키듯’이라는《마하지관》의 글을 인용했습니다. 법화경 행자의 기세와 힘이 난을 만남으로써 강해지는 관계를 불과 장작, 대해와 강 등의 관계에 비유했습니다.
[ 포 인 트 ]
법화경에는 악세 말법에 ‘법화경 행자’가 반드시 출현한다고 씌어 있습니다. 또 법화경 행자에게는 반드시 ‘삼류강적’이 다투어 일어난다고도 설해져 있습니다. 이 경문에 부합하는 사람은 니치렌 대성인이 유일합니다.
대성인은 배독어서에서 “대난이 오면 강성한 신심은 더욱더 기뻐하느니라.” 하고 문하에게 말씀하셨습니다. 강성한 신심이 있으면 어떤 고난도 비약하는 도약대로 삼아 경애를 변혁하고 숙명전환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대성인은 고난에 지지 않겠다고 깊이 각오하는 신심을 가르치셨습니다.
이어서 천태대사의《마하지관》을 바탕으로 법화경 행자의 경애와 대난의 관계를 ‘불’과 ‘장작’, ‘대해’와 ‘중류’ ‘강물’을 예로 들어 설명하셨습니다.
불에 장작을 넣으면 불길이 세집니다. 또 대해가 많은 강물을 되돌려 보내지 않고 받아들여 수량을 늘리듯이 난이 있기에 신심의 불꽃이 타올라 대해처럼 광대한 경애를 열 수 있습니다.
대성인은 이어지는 어서에 “대난이 없으면 법화경 행자가 아니로다.”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고난이 클수록 기쁨에 넘쳐 전진하는 것이 니치렌불법의 진수이자 학회정신입니다. 창가의 동지는 ‘난이 곧 영예’라는 정신으로 온갖 고난을 이겨내고 전진했습니다.
이케다 선생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고난과 싸우기에 부처의 힘을 최고로 낼 수 있습니다. 모든 것은 부처가 되기 위한 시련입니다. 대성인은 괴로움과 어려움이 있으면 오히려 기쁨에 넘쳐 맞서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환경을 한탄해도 아무것도 바뀌지 않습니다. 난을 이겨내고 성불이 확정됩니다. 이것이 법화경 행자의 실천입니다.”
우리는 괴로움에 도전하는 용기 있는 신심을 불러일으켜 날마다 전진합시다.
감사합니다.
이번달 어서는 <시지시로전어서>입니다.
<시지시로전어서>는 대성인이 문하 시지시로에게 주신 편지입니다. 1261년 4월에 집필하셨다고 알려져 있지만 다른 설도 있습니다.
시지시로에게 보내신 어서는 이 어서가 유일해 어떤 인물인지 자세히 알 수 없습니다.
다만 어서 마지막에 “시조 깅고 전을 만나시면 잘 말씀하시라.” 하는 말씀도 있고, 시조 깅고나 도키 조닌에게 보낸 어서에서 시지시로의 이름을 볼 수 있습니다.
이 사실을 통해 시지시로는 대성인의 만년에 각지의 문하와 대성인 사이를 오가며 문하의 상황을 대성인에게 보고하고 또 대성인의 마음을 문하에게 전하는 역할을 맡았다고 추측됩니다.
이 어서 첫머리에는 시지시로가 대성인에게 어떤 일을 보고했다고 씌어 있습니다.
대성인이 당사자에게 그 일을 확인해보니 시지시로의 보고와 완전히 같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대성인은 보고를 받고 시지시로가 사심 없이 있는 그대로 전했다고 상찬하시고 더욱더 신심에 힘써 ‘법화경의 공덕’을 받도록 격려하셨습니다.
그리고 ‘사광의 귀’ ‘이루의 눈’처럼 앞으로도 적확하고 정확하게 모든 일을 견문하라고 가르치셨습니다.
이어서 대성인은 ‘법화경 행자’로서 대난이 올 때 기쁘게 받아들이는 대경애와 난에 지지 않는 강한 신심을 밝히셨습니다. 이번 좌담회에서 배우는 내용은 이 부분입니다.
또 법화경을 한마디라도 설하는 사람은 ‘여래의 심부름꾼’이고 시지시로 자신도 최고로 존귀한 사명에 살아가는 사람이라고 상찬하셨습니다.
그리고 법화경을 일문일구라도 듣고 혼에 물들이는 사람은 ‘묘호렌게쿄의 배’를 타고 고뇌로 가득한 생사의 대해를 건너 성불을 이룰 사람이라고 격려하시고 이 어서를 끝맺으셨습니다. 그럼 [본문]을 함께 읽겠습니다.
[본문] (어서전집 1448쪽 2행~4행)
말법에는 법화경의 행자가 반드시 출래하리라. 그러나 대난이 오면 강성한 신심은 더욱더 기뻐하느니라. 불에 장작을 더하면 성해지지 않는 일이 있겠느뇨. 대해에 중류가 들어가나 그래도 대해는 강물을 되돌려 보내는 일이 있느뇨.
이어서 [통해]를 읽어드리겠습니다.
[ 통 해 ]
말법에는 법화경 행자가 반드시 출현한다. 다만 대난이 일어났을 때는 강성한 신심으로 더욱더 기뻐해야 한다. 불에 장작을 넣으면 타오르지 않는 일이 있겠는가. 큰 바다에는 많은 강물이 흘러 들어간다. 그러나 큰 바다가 강물을 되돌려 보내는 일이 있겠는가.
[ 어 구 해 설 ]
<불에 장작을…되돌려 보내는 일이 있느뇨>는 천태대사가 설한 ‘멧돼지가 금산을 비비고 중류가 바다에 들어가고 장작이 불을 성하게 하고 바람이 구라를 증대시키듯’이라는《마하지관》의 글을 인용했습니다. 법화경 행자의 기세와 힘이 난을 만남으로써 강해지는 관계를 불과 장작, 대해와 강 등의 관계에 비유했습니다.
[ 포 인 트 ]
법화경에는 악세 말법에 ‘법화경 행자’가 반드시 출현한다고 씌어 있습니다. 또 법화경 행자에게는 반드시 ‘삼류강적’이 다투어 일어난다고도 설해져 있습니다. 이 경문에 부합하는 사람은 니치렌 대성인이 유일합니다.
대성인은 배독어서에서 “대난이 오면 강성한 신심은 더욱더 기뻐하느니라.” 하고 문하에게 말씀하셨습니다. 강성한 신심이 있으면 어떤 고난도 비약하는 도약대로 삼아 경애를 변혁하고 숙명전환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대성인은 고난에 지지 않겠다고 깊이 각오하는 신심을 가르치셨습니다.
이어서 천태대사의《마하지관》을 바탕으로 법화경 행자의 경애와 대난의 관계를 ‘불’과 ‘장작’, ‘대해’와 ‘중류’ ‘강물’을 예로 들어 설명하셨습니다.
불에 장작을 넣으면 불길이 세집니다. 또 대해가 많은 강물을 되돌려 보내지 않고 받아들여 수량을 늘리듯이 난이 있기에 신심의 불꽃이 타올라 대해처럼 광대한 경애를 열 수 있습니다.
대성인은 이어지는 어서에 “대난이 없으면 법화경 행자가 아니로다.”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고난이 클수록 기쁨에 넘쳐 전진하는 것이 니치렌불법의 진수이자 학회정신입니다. 창가의 동지는 ‘난이 곧 영예’라는 정신으로 온갖 고난을 이겨내고 전진했습니다.
이케다 선생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고난과 싸우기에 부처의 힘을 최고로 낼 수 있습니다. 모든 것은 부처가 되기 위한 시련입니다. 대성인은 괴로움과 어려움이 있으면 오히려 기쁨에 넘쳐 맞서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환경을 한탄해도 아무것도 바뀌지 않습니다. 난을 이겨내고 성불이 확정됩니다. 이것이 법화경 행자의 실천입니다.”
우리는 괴로움에 도전하는 용기 있는 신심을 불러일으켜 날마다 전진합시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