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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6월호 좌담회 어서 (법련내용, 홈페이지 강의원고)
관리자
2018-05-28
2,426
2018년 6월 좌담회 어서 <여설수행초>
안녕하십니까?
이번달 어서는 <여설수행초>입니다.
<여설수행초>는 1273년 5월, 대성인이 쉰두살 때 유배지인 사도 이치노사와에서 쓰시어 문하 일동에게 주신 어서입니다.
어서의 이름인 ‘여설수행’은 ‘부처의 말씀 그대로 수행한다’는 뜻입니다. ‘부처의 말씀’은 ‘석존의 말씀’이라는 의미이고 대성인 문하에게는 ‘말법의 어본불인 대성인의 말씀’이라고 배견됩니다.
이 어서를 집필할 당시 대성인에게는 다쓰노구치법난과 사도유배라는 대난이 잇따르고 문하도 거센 탄압을 받았습니다. 문하 중에는 ‘법화경 행자는 현세안온이라는데 왜 대난이 잇따르는 것인가’ 하고 의심을 일으켜 퇴전하는 사람도 적지 않았습니다.
대성인은 이 어서에서 법화경에는 ‘유다원질 황멸도후’ 즉 석존이 살아 계실 때조차 원질이 많았기에 하물며 석존이 입멸한 뒤에 더욱 많은 원질을 받는 것은 당연하다고 말씀하시고 말법의 법화경 행자가 ‘삼류강적’을 만나는 일은 모두 경문대로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진정한 현세안온은 온갖 박해를 이겨내고 광선유포를 완수하는 데 있다고 가르치셨습니다.
또 수많은 경전 중에서 석존의 진의가 씌어 있는 경전은 만인성불을 설한 법화경이 유일하고 법화경에 설한 그대로 불법을 실천하는 사람이 ‘여설수행의 행자’라고 밝히셨습니다.
더욱이 임시의 가르침인 권교가 진실한 가르침인 법화경이라는 실교의 적이 된 말법에는 진실한 가르침을 밝히는 절복 수행이 어울린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법화경에 설한 그대로 절복을 실천한 사람은 천태대사와 전교대사를 뛰어넘는 대난을 당한 니치렌 대성인과 그 문하라고 밝히셨습니다. 마지막으로 어떠한 대난이 다투어 일어나도 ‘물러나는 마음’과 ‘두려워하는 마음’ 없이 목숨이 있는 한 ‘남묘호렌게쿄’라고 끝까지 부르면 성불의 경애에 반드시 도달한다고 단언하셨습니다. 그럼 [본문]을 함께 읽겠습니다.
[ 본 문 ] (어서전집 503쪽 16행~18행)
천태 가로되 “법화절복, 파권문리”라고 참으로 까닭이 있도다. 그런데 섭수인 사안락의 수행을 금시에 행한다면 겨울에 종자를 뿌리고 봄에 열매를 구하는 자가 아니겠느뇨. 닭이 새벽에 우는 것은 쓸모 있으나 저녁에 우는 것은 불길한 것이니라.
이어서 [통해]를 읽어드리겠습니다.
[통해]
천태가 “법화경의 절복은 권교의 이를 타파한다.”고 말하는 것은 참으로 도리에 맞다. 그런데 섭수인 안락행품에 설한 네가지 수행을 지금 실천한다면 겨울에 씨를 뿌려 봄에 수확하려는 것이 아닌가. 닭은 새벽에 울기에 쓸모가 있다. 저녁에 울면 요물이다.
[어구해설]
<사안락의 수행>은 법화경 안락행품제14에 설한 네가지 행법으로. 석존이 신, 구, 의, 서원이라는 네 종류의 안락행을 설하고 이로써 초심자가 묘호렌게쿄를 홍통하고 수행하는 것을 말합니다.
[포인트]
불법에서는 ‘때’에 맞는 실천이 중요합니다. 말법인 지금에 맞는 수행은 ‘절복’입니다.
‘법화경’은 상대의 사의와 사법을 파절해 정법에 귀의하게 만드는 ‘절복’과 상대의 다른 주장을 용인하면서 차츰 유인해 정법으로 들어오게 하는 ‘섭수’의 수행을 설합니다.
말법은 진실과 거짓, 정의와 사악이 뒤섞여 서로 싸우는 ‘투쟁의 시대’이자 ‘권실잡란의 시대’입니다. 이러한 시대에는 적극 과감하게 거짓이나 사악과 싸워서 진실과 정의를 세우는 ‘절복’ 수행을 실천하지 않으면 사람들을 구제할 수 없습니다.
소극적으로 ‘섭수’를 행할 뿐이라면 겨울에 씨앗을 심어 봄에 열매를 맺기 바라거나 닭이 저녁에 우는 것처럼 아무런 결과도 얻을 수 없고 쓸모가 없습니다. 천태대사가 “법화는 절복으로 권문의 이를 타파한다”고 말했듯이 ‘절복’이야말로 법화경의 근본정신이자 말법에 맞는 수행입니다.
이 방정식은 현대에서도 변함없습니다. 우리가 나누는 불법대화는 자타 함께 불성을 믿고 인간의 존엄을 얕보는 ‘무명’을 타파하는 대자비의 절복 정신에 바탕을 둔 실천입니다. 이렇게 착실하게 대화할 때 세계평화도 구축됩니다.
이케다 선생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말법은 가치관이 혼란해 무엇이 올바른지, 무엇이 중요한지 알 수 없는 시대입니다. 이처럼 혼란스러운 때에는 ‘이것이 바로 정의다’ ‘이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명확히 밝혀야 합니다. 절복은 ‘진실’을 말하는 행동입니다. 용기를 내어 꿋꿋이 말해야 합니다. ‘정의’의 깃발을 드높이 내걸어야 합니다. 모든 사람이 소중히 해야 할 보편적인 가치와 정의를 확립하고 실현하기 위한 투쟁입니다.”
우리는 기원을 근본으로 ‘절복정신’에 불타 기쁜 마음으로 벗과 대화합시다.
감사합니다.
안녕하십니까?
이번달 어서는 <여설수행초>입니다.
<여설수행초>는 1273년 5월, 대성인이 쉰두살 때 유배지인 사도 이치노사와에서 쓰시어 문하 일동에게 주신 어서입니다.
어서의 이름인 ‘여설수행’은 ‘부처의 말씀 그대로 수행한다’는 뜻입니다. ‘부처의 말씀’은 ‘석존의 말씀’이라는 의미이고 대성인 문하에게는 ‘말법의 어본불인 대성인의 말씀’이라고 배견됩니다.
이 어서를 집필할 당시 대성인에게는 다쓰노구치법난과 사도유배라는 대난이 잇따르고 문하도 거센 탄압을 받았습니다. 문하 중에는 ‘법화경 행자는 현세안온이라는데 왜 대난이 잇따르는 것인가’ 하고 의심을 일으켜 퇴전하는 사람도 적지 않았습니다.
대성인은 이 어서에서 법화경에는 ‘유다원질 황멸도후’ 즉 석존이 살아 계실 때조차 원질이 많았기에 하물며 석존이 입멸한 뒤에 더욱 많은 원질을 받는 것은 당연하다고 말씀하시고 말법의 법화경 행자가 ‘삼류강적’을 만나는 일은 모두 경문대로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진정한 현세안온은 온갖 박해를 이겨내고 광선유포를 완수하는 데 있다고 가르치셨습니다.
또 수많은 경전 중에서 석존의 진의가 씌어 있는 경전은 만인성불을 설한 법화경이 유일하고 법화경에 설한 그대로 불법을 실천하는 사람이 ‘여설수행의 행자’라고 밝히셨습니다.
더욱이 임시의 가르침인 권교가 진실한 가르침인 법화경이라는 실교의 적이 된 말법에는 진실한 가르침을 밝히는 절복 수행이 어울린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법화경에 설한 그대로 절복을 실천한 사람은 천태대사와 전교대사를 뛰어넘는 대난을 당한 니치렌 대성인과 그 문하라고 밝히셨습니다. 마지막으로 어떠한 대난이 다투어 일어나도 ‘물러나는 마음’과 ‘두려워하는 마음’ 없이 목숨이 있는 한 ‘남묘호렌게쿄’라고 끝까지 부르면 성불의 경애에 반드시 도달한다고 단언하셨습니다. 그럼 [본문]을 함께 읽겠습니다.
[ 본 문 ] (어서전집 503쪽 16행~18행)
천태 가로되 “법화절복, 파권문리”라고 참으로 까닭이 있도다. 그런데 섭수인 사안락의 수행을 금시에 행한다면 겨울에 종자를 뿌리고 봄에 열매를 구하는 자가 아니겠느뇨. 닭이 새벽에 우는 것은 쓸모 있으나 저녁에 우는 것은 불길한 것이니라.
이어서 [통해]를 읽어드리겠습니다.
[통해]
천태가 “법화경의 절복은 권교의 이를 타파한다.”고 말하는 것은 참으로 도리에 맞다. 그런데 섭수인 안락행품에 설한 네가지 수행을 지금 실천한다면 겨울에 씨를 뿌려 봄에 수확하려는 것이 아닌가. 닭은 새벽에 울기에 쓸모가 있다. 저녁에 울면 요물이다.
[어구해설]
<사안락의 수행>은 법화경 안락행품제14에 설한 네가지 행법으로. 석존이 신, 구, 의, 서원이라는 네 종류의 안락행을 설하고 이로써 초심자가 묘호렌게쿄를 홍통하고 수행하는 것을 말합니다.
[포인트]
불법에서는 ‘때’에 맞는 실천이 중요합니다. 말법인 지금에 맞는 수행은 ‘절복’입니다.
‘법화경’은 상대의 사의와 사법을 파절해 정법에 귀의하게 만드는 ‘절복’과 상대의 다른 주장을 용인하면서 차츰 유인해 정법으로 들어오게 하는 ‘섭수’의 수행을 설합니다.
말법은 진실과 거짓, 정의와 사악이 뒤섞여 서로 싸우는 ‘투쟁의 시대’이자 ‘권실잡란의 시대’입니다. 이러한 시대에는 적극 과감하게 거짓이나 사악과 싸워서 진실과 정의를 세우는 ‘절복’ 수행을 실천하지 않으면 사람들을 구제할 수 없습니다.
소극적으로 ‘섭수’를 행할 뿐이라면 겨울에 씨앗을 심어 봄에 열매를 맺기 바라거나 닭이 저녁에 우는 것처럼 아무런 결과도 얻을 수 없고 쓸모가 없습니다. 천태대사가 “법화는 절복으로 권문의 이를 타파한다”고 말했듯이 ‘절복’이야말로 법화경의 근본정신이자 말법에 맞는 수행입니다.
이 방정식은 현대에서도 변함없습니다. 우리가 나누는 불법대화는 자타 함께 불성을 믿고 인간의 존엄을 얕보는 ‘무명’을 타파하는 대자비의 절복 정신에 바탕을 둔 실천입니다. 이렇게 착실하게 대화할 때 세계평화도 구축됩니다.
이케다 선생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말법은 가치관이 혼란해 무엇이 올바른지, 무엇이 중요한지 알 수 없는 시대입니다. 이처럼 혼란스러운 때에는 ‘이것이 바로 정의다’ ‘이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명확히 밝혀야 합니다. 절복은 ‘진실’을 말하는 행동입니다. 용기를 내어 꿋꿋이 말해야 합니다. ‘정의’의 깃발을 드높이 내걸어야 합니다. 모든 사람이 소중히 해야 할 보편적인 가치와 정의를 확립하고 실현하기 위한 투쟁입니다.”
우리는 기원을 근본으로 ‘절복정신’에 불타 기쁜 마음으로 벗과 대화합시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