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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8년 6월 좌담회어서 - <센니치니부인답서>에서 배운다

  • 하준우

  • 2008-05-23

  • 6,844

2008 좌담회•6월 반좌담회 어서
센니치니부인답서

스승이 언제나
가슴속에 있으면
그 무엇에도 지지 않는다!
두려워하지 않는다!

1. 배경과 대의
이 어서는 1278년 윤 10월 19일,
니치렌 대성인이 미노부에서 쓰시어 사도에 있는 센니치니에게 준 편지입니다.
대성인이 사도에 유배되었을 때, 센니치니와 남편 아부쓰보는 제자가 되어 목숨을 걸고 스승을 끝까지 받들었습니다.

대성인이 사면되어 미노부에 입산한 후에도 사제의 교류가 끊긴 적이 없었습니다.
또 아부쓰보는 고령이었지만 공양물을 갖고 멀리 미노부까지 찾아뵈었습니다.
대성인은 그때마다 남편을 보내고 홀로 집을 지키는 센니치니의 노고를 깊이 배려하며 따뜻한 격려 편지를 보내셨습니다.

이 어서는 그 중 하나로, 첫머리에 센니치니가 한 공양에 대해 깊은 감사를 표하셨습니다.
즉 법화경은 삼세시방 부처의 스승이고 묘법은 모든 부처를 낳은 근본법이므로,
법화경 행자인 대성인을 공양한 센니치니는 모든 부처에게 공양한 것과 같은,
헤아릴 수 없는 공덕을 받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법화경은 일체경보다 뛰어난 사자왕의 경전이므로,
법화경을 믿고 수지한 여인은 아무것도 두려워할 필요가 없으며
묘법의 힘으로 어떤 숙명도 공덕으로 전환할 수 있다고 ‘숙명전환의 신심’을 명시하셨습니다.

그리고 남편을 보낸 센니치니의 진심은, 하늘의 달이 ‘4만 유순’을 넘어 대지의 연못에 그림자를 비추고, 뇌문의 북소리가 ‘천만 리’를 넘어 들려오듯이 아무리 거리가 멀어도 대성인에게 바로 미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대성인은 우리 사제가 각각 떨어져 고뇌에 찬 예토에 살아도 부처가 되는 길은 똑같고,
마음은 성불세계인 영산(靈山)에서 함께 산다며 ‘사제불이’의 마음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2. 본문 _ 어서전집 1316쪽 15행~18행

비유하면 천월은 사만 유순이지만 대지의 연못에는 수유에 그림자가 비치고,
뇌문의 북은 천만 리나 멀어도 치면 수유에 들린다.
그대는 사도의 지방에 계시더라도 마음은 이 지방에 왔느니라.
부처가 되는 길도 이와 같으니, 우리들은 예토에 있지만 마음은 영산에 사느니라.
얼굴을 본들 무엇하리오. 마음이야말로 소중합니다.


3. 통해
비유하면 하늘의 달은 4만 유순이나 떨어져 있어도 대지의 연못에는 바로 달그림자가 비칩니다. (중국의) 뇌문의 북은 천만 리나 떨어져 있어도 치면 순간에 들립니다.
이와 같이 그대는 사도지방에 계시지만 마음은 이 지방(미노부)에 와 있습니다.
부처가 되는 길도 이와 같습니다. 우리는 예토에 살고 있으나 마음은 영산정토에 살고 있습니다.
얼굴을 본들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마음이야말로 소중합니다.


4. 어구해설
【유순(由旬)】 고대 인도 거리의 단위.
1유순은 당시 왕이 하루에 행군하는 거리를 말하며 중국의 40리에 해당한다.
【수유(須臾)】 시간의 단위이며 1주야(하루)의 30분의 1을 말한다.
여기서는 짧은 시간, 순간이라는 뜻이다.
【뇌문(雷門)의 북】 뇌문에 있던 북을 말한다. 뇌문은 중국 저장성(省) 사오싱현의
구이지성(城)에 있었다. 이 북을 치면 멀리 낙양까지 북소리가 바로 들렸다고 한다.
【예토(穢土)】 오염된 땅. 번뇌로 더러워진 중생이 사는 사바세계. 현실세계를 말한다.
【영산(靈山)】 영취산을 줄인 말. 이 산에서 법화경을 설했다고 해서 불국토를 뜻하게 됐다.
영원한 정토(淨土)를 말한다.

5. 포인트 강의
사제의 마음’은 투쟁하는 마음’

사제는 거리도 처지도 형식도 아닙니다.
스승을 구도하는 제자 가슴속에는 스승과 불이의 정신이 생생하게 맥동합니다.
센니치니는 널리 알려지지 않은 한 부인으로, 사도지방에서 열심히 광포하고 있었습니다.
대성인은 센니치니에게 “하늘의 달이 4만 유순이나 떨어졌어도 바로 대지의 연못에 그림자가 비치듯이, 뇌문의 북이 천만 리나 떨어졌어도 치면 바로 들리듯이 귀하의 마음은 내게 똑바로 미치고 있다.”라고 격려하셨습니다.

센니치니는 이 편지를 보고 틀림없이 실제로 대성인을 뵙는 듯 감동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대성인은 ‘부처가 되는 길’이 이와 같으며
우리 몸은 ‘예토’에 있을지라도 마음은 함께 ‘영산’에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예토’는 고뇌에 찬 현실세계입니다.
‘영산’은 법화경을 설한 회좌(會座)이고 최고의 성불세계를 말합니다.
‘영산’은 우리가 사는 ‘예토’에서 거리도 대단히 멀고 시간도 많이 걸리는 곳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대성인은, ‘묘법을 위해’ ‘스승을 위해’라는 그 철저한 마음은 그대로 ‘영산’에 미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영산’에 가면 사제는 일체이며 그 어떤 것도 갈라 놓지 못합니다.
그리고 ‘영산’에서 ‘예토’를 돌아봤을 때 고뇌에 찬 현실세계는 스승이 제자에게 광포를 맡긴 사명을 이어받은 천지로 빛납니다.
대성인의 격려로 센니치니는 사명을 다해야 할 사도에서 끝까지 싸우리라 맹세했을 것입니다.

강한 신심은 모든 것을 전환하는 힘이 있습니다.
대성인은 ‘마음이야말로 소중’하다고 결론 내리셨습니다.
이케다 SGI 회장은 “‘마음이야말로 소중’합니다. 상황이야 어떻든 자기 가슴속에서 ‘투쟁하는 마음’이 불타는지, 어떤지입니다. 인간으로서 ‘승리’한다는 말은 무슨 일이 있어도 ‘투쟁하는 마음’을 계속 불태우는 모습입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무슨 일이 있어도 반드시 ‘스승과 함께’라는 마음을 관철할 때 최고로 행복한 인생이 있음을 명심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