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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월호 좌담회 어서 (법련내용, 홈페이지 강의원고)
관리자
2016-12-26
2,799
017년 1월 좌담회 어서 <단월모답서>
안녕하십니까?
이번달 어서는 <단월모답서>입니다.
〈단월모답서〉는 1278년 4월 11일, 대성인이 미노부에서 쓰신 편지입니다.
제목에 ‘단월모’라고 씌어 있듯이 재가의 유력한 문하인 ‘어느 단나’에게 주신 편지이지만 상세한 내용은 확실하지 않습니다.
단 어서의 내용으로 추측하건대 막부의 움직임을 알 수 있는 위치에 있는 문하로 관직에 올라 있던 점에서 주군을 섬기는 무사라고 여겨집니다.
대성인은 1260년에 〈입정안국론〉을 저술해 국주간효를 하셨습니다. 그 뒤 숱한 박해를 받고 이즈유배와 사도유배를 당하셨습니다. 그리고 사도유배에서 사면되고 4년이 지난 1278년에 막부는 세번째 유배를 획책하고 있었습니다. 그 소식을 듣고 이 어서를 쓰셨습니다.
이 어서에서 대성인은 실제로 세번째 유배를 당하면 “백천만억 배의 행운”이고 자신이 바로 경문에서 설한 대로 ‘법화경 행자’라는 사실이 명확해진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게다가 나찰인 악귀의 모습으로 나타난 제석천에게 자기 몸을 바쳐 법을 구한 ‘설산동자’와 어떠한 박해에도 예배행을 멈추지 않고 상대방의 불성을 믿으며 꿋꿋이 불도를 걸은 ‘불경보살’처럼 대성인 자신도 정의를 위해 끝까지 싸우겠다는 결의를 말씀하셨습니다.
또 당시에는 역병이 만연해 많은 사람이 병에 걸려 쓰러지는 위험에 처해 당장 내일 살아 있으리라는 보장도 없었습니다.
그러한 상황을 바탕으로 대성인은 역병에 걸리거나 늙어서 죽는 일보다는 원컨대 국주의 박해를 받아 법화경을 위해 목숨을 바치겠다는 각오를 말씀하셨습니다.
끝으로 단월에게 어떠한 상황에 처해도 지금 놓인 처지에서 마음을 정하고 주군을 섬기는 일이 법화경을 수행하는 일이라고 받아들여 현실사회에서 승리하는 결과를 내도록 가르치고 이 어서를 끝맺으셨습니다.
그럼 [본문]을 함께 읽겠습니다.
[ 본 문 ] (어서전집 1295쪽 7행~8행)
사관을 법화경이라고 생각하시라. ‘일체세간의 치생산업은 모두 실상과 서로 위배하지 않음’이란 이것이니라.
이어서 [통해]를 읽어드리겠습니다.
[ 통 해 ]
주군을 섬기는 일이 법화경을 수행하는 일이라고 생각하시오. 경문에서 ‘일반 세간의 생활을 떠받치는 행위, 직업이 모두 실상(묘법)과 상반되는 일이 없다’고 설한 것은 이것이다.
[ 어 구 해 설 ]
【사관】은 귀인의 집에 종사하는 일입니다. 주군, 주인을 섬기는 일을 뜻합니다.
【치생산업】은 생활을 꾸려나가고 지탱하는 행위, 직업을 뜻합니다.
【실상】은 있는 그대로 진실한 모습을 뜻합니다. 궁극의 진리인 묘법을 가리킵니다.
[ 포 인 트 ]
이 어서는 일에 힘쓰는 자세를 가르치신 성훈으로 불법에 정통한 사람은 직장과 사회에서 승리자가 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어서를 받은 제자가 어떠한 고경에 처했는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법화경 신앙을 한다는 이유로 받은 고난을 견디고 있었다고 추측됩니다.
대성인은 배독 어서 바로 앞부분에서 고난에 굴하지 않고 현실과 계속 싸우는 일이 법화경을 온종일 수행하는 일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사관 즉 자신의 일을 법화경의 수행이라고 생각하라’고 가르치셨습니다.
신심근본으로 현실사회에서 싸워서 이겨야 니치렌불법입니다. 불법은 사회나 생활에서 동떨어진 곳에 있지 않습니다. 일도 생활도 신심을 근본으로 할 때 법화경을 수행하는 존귀한 도량으로 자신을 연마하는 곳이 됩니다. 그런 까닭에 대성인은 ‘일반 세간의 모든 생활을 떠받치는 행위, 직업은 모두 실상인 묘법과 상반되는 일이 없다.’고 가르치셨습니다.
맞닥뜨리는 현실이 냉혹해도 신심을 근본으로 생명력을 분기해 지혜를 내어 도전하는 자세가 바로 불법자의 삶입니다. 그리고 신심근본으로 일과 생활에서 승리하는 일이 올바른 불법을 증명하는 일이기도 합니다.
이케다 선생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어떤 일을 하든 어떤 경우든 제목을 부르는 자기자신이 지혜를 내고 힘을 다해 세상을 위해, 남을 위해 성실하게 가치를 창조합니다. 이것은 모두 ‘마음의 재’를 쌓는 불도수행이 됩니다. 일과 신심은 별개가 아닙니다. 오히려 일을 최대한 충실히 하도록 만드는 원동력이 신심이고 학회활동입니다.”
우리는 ‘신심즉생활’, ‘불법즉사회’를 끝까지 철저하게 실천해 ‘지금 있는 장소’에서 반드시 승리하지 않겠습니까!
감사합니다.
안녕하십니까?
이번달 어서는 <단월모답서>입니다.
〈단월모답서〉는 1278년 4월 11일, 대성인이 미노부에서 쓰신 편지입니다.
제목에 ‘단월모’라고 씌어 있듯이 재가의 유력한 문하인 ‘어느 단나’에게 주신 편지이지만 상세한 내용은 확실하지 않습니다.
단 어서의 내용으로 추측하건대 막부의 움직임을 알 수 있는 위치에 있는 문하로 관직에 올라 있던 점에서 주군을 섬기는 무사라고 여겨집니다.
대성인은 1260년에 〈입정안국론〉을 저술해 국주간효를 하셨습니다. 그 뒤 숱한 박해를 받고 이즈유배와 사도유배를 당하셨습니다. 그리고 사도유배에서 사면되고 4년이 지난 1278년에 막부는 세번째 유배를 획책하고 있었습니다. 그 소식을 듣고 이 어서를 쓰셨습니다.
이 어서에서 대성인은 실제로 세번째 유배를 당하면 “백천만억 배의 행운”이고 자신이 바로 경문에서 설한 대로 ‘법화경 행자’라는 사실이 명확해진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게다가 나찰인 악귀의 모습으로 나타난 제석천에게 자기 몸을 바쳐 법을 구한 ‘설산동자’와 어떠한 박해에도 예배행을 멈추지 않고 상대방의 불성을 믿으며 꿋꿋이 불도를 걸은 ‘불경보살’처럼 대성인 자신도 정의를 위해 끝까지 싸우겠다는 결의를 말씀하셨습니다.
또 당시에는 역병이 만연해 많은 사람이 병에 걸려 쓰러지는 위험에 처해 당장 내일 살아 있으리라는 보장도 없었습니다.
그러한 상황을 바탕으로 대성인은 역병에 걸리거나 늙어서 죽는 일보다는 원컨대 국주의 박해를 받아 법화경을 위해 목숨을 바치겠다는 각오를 말씀하셨습니다.
끝으로 단월에게 어떠한 상황에 처해도 지금 놓인 처지에서 마음을 정하고 주군을 섬기는 일이 법화경을 수행하는 일이라고 받아들여 현실사회에서 승리하는 결과를 내도록 가르치고 이 어서를 끝맺으셨습니다.
그럼 [본문]을 함께 읽겠습니다.
[ 본 문 ] (어서전집 1295쪽 7행~8행)
사관을 법화경이라고 생각하시라. ‘일체세간의 치생산업은 모두 실상과 서로 위배하지 않음’이란 이것이니라.
이어서 [통해]를 읽어드리겠습니다.
[ 통 해 ]
주군을 섬기는 일이 법화경을 수행하는 일이라고 생각하시오. 경문에서 ‘일반 세간의 생활을 떠받치는 행위, 직업이 모두 실상(묘법)과 상반되는 일이 없다’고 설한 것은 이것이다.
[ 어 구 해 설 ]
【사관】은 귀인의 집에 종사하는 일입니다. 주군, 주인을 섬기는 일을 뜻합니다.
【치생산업】은 생활을 꾸려나가고 지탱하는 행위, 직업을 뜻합니다.
【실상】은 있는 그대로 진실한 모습을 뜻합니다. 궁극의 진리인 묘법을 가리킵니다.
[ 포 인 트 ]
이 어서는 일에 힘쓰는 자세를 가르치신 성훈으로 불법에 정통한 사람은 직장과 사회에서 승리자가 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어서를 받은 제자가 어떠한 고경에 처했는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법화경 신앙을 한다는 이유로 받은 고난을 견디고 있었다고 추측됩니다.
대성인은 배독 어서 바로 앞부분에서 고난에 굴하지 않고 현실과 계속 싸우는 일이 법화경을 온종일 수행하는 일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사관 즉 자신의 일을 법화경의 수행이라고 생각하라’고 가르치셨습니다.
신심근본으로 현실사회에서 싸워서 이겨야 니치렌불법입니다. 불법은 사회나 생활에서 동떨어진 곳에 있지 않습니다. 일도 생활도 신심을 근본으로 할 때 법화경을 수행하는 존귀한 도량으로 자신을 연마하는 곳이 됩니다. 그런 까닭에 대성인은 ‘일반 세간의 모든 생활을 떠받치는 행위, 직업은 모두 실상인 묘법과 상반되는 일이 없다.’고 가르치셨습니다.
맞닥뜨리는 현실이 냉혹해도 신심을 근본으로 생명력을 분기해 지혜를 내어 도전하는 자세가 바로 불법자의 삶입니다. 그리고 신심근본으로 일과 생활에서 승리하는 일이 올바른 불법을 증명하는 일이기도 합니다.
이케다 선생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어떤 일을 하든 어떤 경우든 제목을 부르는 자기자신이 지혜를 내고 힘을 다해 세상을 위해, 남을 위해 성실하게 가치를 창조합니다. 이것은 모두 ‘마음의 재’를 쌓는 불도수행이 됩니다. 일과 신심은 별개가 아닙니다. 오히려 일을 최대한 충실히 하도록 만드는 원동력이 신심이고 학회활동입니다.”
우리는 ‘신심즉생활’, ‘불법즉사회’를 끝까지 철저하게 실천해 ‘지금 있는 장소’에서 반드시 승리하지 않겠습니까!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