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료실
-
2016년 9월호 좌담회 어서 (법련내용, 홈페이지 강의원고)
관리자
2016-08-30
3,097
2016년 9월 좌담회 어서 <센니치니부인답서>
안녕하십니까?
이번달 어서는 <센니치니부인답서> 입니다.
이 어서는 1278년 윤 10월 대성인이 미노부에서 쓰시어 사도에 있는 센니치니에게 주신 편지입니다.
센니치니와 남편 아부쓰보는 대성인이 사도에 유배되었을 때 제자가 되어 자신의 위험을 돌보지 않고 대성인을 지킨 사도 문하의 중심적인 존재입니다.
대성인이 사면되어 미노부에 입산하신 뒤에도 아부쓰보는 고령인데도 불구하고 사도에서 미노부까지 먼 길을 마다하지 않고 수차례 공양물을 지고 대성인을 찾아갔습니다.
대성인은 그때마다 남편을 보내고 집을 지키는 센니치니의 노고를 헤아려 편지를 보내 따뜻하게 격려했습니다.이 어서는 그중 한통입니다.
대성인은 먼저 센니치니가 보낸 공양물에 깊이 감사하고, 흙떡을 공양해 아소카대왕으로 태어난 덕승동자 등의 고사를 인용해 공양의 공덕이 얼마나 큰지 가르치십니다.
그리고 법화경은 삼세시방에 걸친 제불의 스승입니다. 그 법화경을 공양하는 사람은 모든 부처에게 공양한 것과 같은 헤아릴 수 없는 공덕을 받는다고 밝히십니다.
또 법화경은 모든 경전 중에 가장 뛰어난 사자왕의 경전이므로 법화경을 수지하는 여인은 무엇도 두려워할 필요가 없고, 묘법의 힘으로 어떠한 숙명도 공덕으로 전환할 수 있다는 숙명전환의 신심을 나타내십니다.
그리고 하늘의 달이 ‘사만 유순’을 넘어 땅에 있는 연못에 비치듯이, 뇌문고의 소리가 ‘천만리’를 넘어 들려 오듯이, 사도에서 미노부까지 남편을 보낸 센니치니의 진심은 아무리 멀리 떨어져 있어도 대성인에게 바로 전해진다고 말씀하십니다. 이 비유에서 이 어서를 ‘뇌문고어서’라고도 합니다.
또 부처가 되는 길도 이와 같아서 우리 사제는 설령 각자 떨어져 고뇌 가득한 예토에 살고 있어도 마음은 성불의 세계인 영산에 살고 있다며 사제불이의 마음이 중요하다고 가르치십니다.
그럼 [본문]을 함께 읽겠습니다.
[ 본 문 ] (어서전집 1316쪽 15행~ 18행)
비유하면 천월은 사만 유순이지만 대지의 연못에는 수유에 그림자가 비치고, 뇌문의 북은 천만리나 멀어도 치면 수유에 들린다. 그대는 사도의 지방에 계시더라도 마음은 이 지방에 왔느니라. 부처가 되는 길도 이와 같으니, 우리들은 예토에 있지만 마음은 영산에 사느니라. 얼굴을 본들 무엇하리오. 마음이야말로 소중합니다.
이어서 [통해]를 읽어드리겠습니다.
[ 통 해 ]
이를테면 하늘의 달은 멀리 사만 유순이나 떨어졌지만 대지의 연못에는 순식간에 그림자가 비칩니다. 뇌문의 북은 천만리나 멀리 있어도 치면 순식간에 들립니다. 이와 같이 당신의 몸은 사도 지방에 있지만 마음은 이 지방(미노부)에 왔습니다. 부처가 되는 길도 이와 같습니다. 우리는 예토에 살지만 마음은 영산정토에 살고 있습니다. 얼굴을 본다 해도 무엇하겠습니까. 마음만이 소중합니다.
[어 구 해 설 ]
[유순]은, 고대 인도 거리의 단위로, 1유순은 당시 왕이 하루에 행군하는 거리를 말하며 중국의 40리에 해당합니다. 그밖에도 여러가지 설이 있습니다.
[수유]는, 1주야(하루)의 30분의 1로 구분한 시간의 단위를 말합니다. 짧은 시간, 순간이라는 뜻입니다.
[뇌문의 북]은, 회계성(중국 절강성 소흥)의 뇌문에 있던 큰북을 말합니다. 이 큰북을 치면 순식간에 멀리 있는 낙양까지 들렸다고 합니다.
[예토]는, 더럽혀진 국토를 말합니다. 번뇌로 고뇌하는 중생이 사는 사바세계이자 현실세계를 말합니다.
[영산]은, 영취산을 줄인 말로, 이 산에서 법화경을 설했다고 해서 구원의 부처가 있는 불국토를 의미합니다.
[ 포 인 트 ]
이 어서는 사제는 거리나 처지, 형식이 아니라 스승을 구도하는 제자의 마음에 생생하게 맥동한다고 가르치십니다.
센니치니는 법화경의 신심을 관철해 해마다 대성인이 계신 곳에 남편을 보내 진심 어린 공양물을 전했습니다.
대성인은 비유를 들어 스승을 구도하는 센니치니의 마음이 거리를 초월해 전해진다고 말씀하십니다. 즉 하늘에 떠 있는 달의 그림자가 바로 대지의 연못에 비치듯이, 뇌문고의 소리가 순식간에 들리듯이 “당신의 마음은 내게 똑바로 전해지고 있다.” 하고 격려하십니다.
센니치니의 마음 한구석에는 ‘멀리 계신 대성인을 더 이상 뵐 수 없다’는 생각이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마음은 늘 나와 함께 있습니다.” 하는 스승의 격려는 센니치니에게 얼마나 많은 용기와 희망을 주었을지 헤아릴 수 없습니다.
대성인은 ‘부처가 되는 길’도 이와 같아 우리 몸은 ‘예토’에 있어도 마음은 함께 ‘영산’에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고뇌에 가득찬 일상생활 속에서 ‘묘법을 위해’ ‘스승을 위해’라는 철저한 마음은 그대로 ‘영산’이라는 부처의 세계에 틀림없이 도달한다고 말씀하십니다. 또 대성인은 만날 수 있느냐 없느냐 하는 형식이 아니라 ‘마음만이 소중하다’고 강조하십니다.
이케다 SGI 회장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언제, 어디에 있든 늘 도다 선생님과 대화하며 싸웁니다. ‘불이’는 자신의 마음속에 있습니다. 불이의 사제는 거리를 초월하고 시간을 초월합니다. ‘사제의 마음’은 영원히 공전의 역사를 엮습니다. 거듭되는 광선유포의 투쟁에 이 ‘마음만이 소중하다’는 대철학을 내걸고 나아갑시다.”
무슨 일이 있어도 ‘스승과 함께’라는 결심으로 광포확대를 향해 나아갑시다.
감사합니다.
안녕하십니까?
이번달 어서는 <센니치니부인답서> 입니다.
이 어서는 1278년 윤 10월 대성인이 미노부에서 쓰시어 사도에 있는 센니치니에게 주신 편지입니다.
센니치니와 남편 아부쓰보는 대성인이 사도에 유배되었을 때 제자가 되어 자신의 위험을 돌보지 않고 대성인을 지킨 사도 문하의 중심적인 존재입니다.
대성인이 사면되어 미노부에 입산하신 뒤에도 아부쓰보는 고령인데도 불구하고 사도에서 미노부까지 먼 길을 마다하지 않고 수차례 공양물을 지고 대성인을 찾아갔습니다.
대성인은 그때마다 남편을 보내고 집을 지키는 센니치니의 노고를 헤아려 편지를 보내 따뜻하게 격려했습니다.이 어서는 그중 한통입니다.
대성인은 먼저 센니치니가 보낸 공양물에 깊이 감사하고, 흙떡을 공양해 아소카대왕으로 태어난 덕승동자 등의 고사를 인용해 공양의 공덕이 얼마나 큰지 가르치십니다.
그리고 법화경은 삼세시방에 걸친 제불의 스승입니다. 그 법화경을 공양하는 사람은 모든 부처에게 공양한 것과 같은 헤아릴 수 없는 공덕을 받는다고 밝히십니다.
또 법화경은 모든 경전 중에 가장 뛰어난 사자왕의 경전이므로 법화경을 수지하는 여인은 무엇도 두려워할 필요가 없고, 묘법의 힘으로 어떠한 숙명도 공덕으로 전환할 수 있다는 숙명전환의 신심을 나타내십니다.
그리고 하늘의 달이 ‘사만 유순’을 넘어 땅에 있는 연못에 비치듯이, 뇌문고의 소리가 ‘천만리’를 넘어 들려 오듯이, 사도에서 미노부까지 남편을 보낸 센니치니의 진심은 아무리 멀리 떨어져 있어도 대성인에게 바로 전해진다고 말씀하십니다. 이 비유에서 이 어서를 ‘뇌문고어서’라고도 합니다.
또 부처가 되는 길도 이와 같아서 우리 사제는 설령 각자 떨어져 고뇌 가득한 예토에 살고 있어도 마음은 성불의 세계인 영산에 살고 있다며 사제불이의 마음이 중요하다고 가르치십니다.
그럼 [본문]을 함께 읽겠습니다.
[ 본 문 ] (어서전집 1316쪽 15행~ 18행)
비유하면 천월은 사만 유순이지만 대지의 연못에는 수유에 그림자가 비치고, 뇌문의 북은 천만리나 멀어도 치면 수유에 들린다. 그대는 사도의 지방에 계시더라도 마음은 이 지방에 왔느니라. 부처가 되는 길도 이와 같으니, 우리들은 예토에 있지만 마음은 영산에 사느니라. 얼굴을 본들 무엇하리오. 마음이야말로 소중합니다.
이어서 [통해]를 읽어드리겠습니다.
[ 통 해 ]
이를테면 하늘의 달은 멀리 사만 유순이나 떨어졌지만 대지의 연못에는 순식간에 그림자가 비칩니다. 뇌문의 북은 천만리나 멀리 있어도 치면 순식간에 들립니다. 이와 같이 당신의 몸은 사도 지방에 있지만 마음은 이 지방(미노부)에 왔습니다. 부처가 되는 길도 이와 같습니다. 우리는 예토에 살지만 마음은 영산정토에 살고 있습니다. 얼굴을 본다 해도 무엇하겠습니까. 마음만이 소중합니다.
[어 구 해 설 ]
[유순]은, 고대 인도 거리의 단위로, 1유순은 당시 왕이 하루에 행군하는 거리를 말하며 중국의 40리에 해당합니다. 그밖에도 여러가지 설이 있습니다.
[수유]는, 1주야(하루)의 30분의 1로 구분한 시간의 단위를 말합니다. 짧은 시간, 순간이라는 뜻입니다.
[뇌문의 북]은, 회계성(중국 절강성 소흥)의 뇌문에 있던 큰북을 말합니다. 이 큰북을 치면 순식간에 멀리 있는 낙양까지 들렸다고 합니다.
[예토]는, 더럽혀진 국토를 말합니다. 번뇌로 고뇌하는 중생이 사는 사바세계이자 현실세계를 말합니다.
[영산]은, 영취산을 줄인 말로, 이 산에서 법화경을 설했다고 해서 구원의 부처가 있는 불국토를 의미합니다.
[ 포 인 트 ]
이 어서는 사제는 거리나 처지, 형식이 아니라 스승을 구도하는 제자의 마음에 생생하게 맥동한다고 가르치십니다.
센니치니는 법화경의 신심을 관철해 해마다 대성인이 계신 곳에 남편을 보내 진심 어린 공양물을 전했습니다.
대성인은 비유를 들어 스승을 구도하는 센니치니의 마음이 거리를 초월해 전해진다고 말씀하십니다. 즉 하늘에 떠 있는 달의 그림자가 바로 대지의 연못에 비치듯이, 뇌문고의 소리가 순식간에 들리듯이 “당신의 마음은 내게 똑바로 전해지고 있다.” 하고 격려하십니다.
센니치니의 마음 한구석에는 ‘멀리 계신 대성인을 더 이상 뵐 수 없다’는 생각이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마음은 늘 나와 함께 있습니다.” 하는 스승의 격려는 센니치니에게 얼마나 많은 용기와 희망을 주었을지 헤아릴 수 없습니다.
대성인은 ‘부처가 되는 길’도 이와 같아 우리 몸은 ‘예토’에 있어도 마음은 함께 ‘영산’에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고뇌에 가득찬 일상생활 속에서 ‘묘법을 위해’ ‘스승을 위해’라는 철저한 마음은 그대로 ‘영산’이라는 부처의 세계에 틀림없이 도달한다고 말씀하십니다. 또 대성인은 만날 수 있느냐 없느냐 하는 형식이 아니라 ‘마음만이 소중하다’고 강조하십니다.
이케다 SGI 회장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언제, 어디에 있든 늘 도다 선생님과 대화하며 싸웁니다. ‘불이’는 자신의 마음속에 있습니다. 불이의 사제는 거리를 초월하고 시간을 초월합니다. ‘사제의 마음’은 영원히 공전의 역사를 엮습니다. 거듭되는 광선유포의 투쟁에 이 ‘마음만이 소중하다’는 대철학을 내걸고 나아갑시다.”
무슨 일이 있어도 ‘스승과 함께’라는 결심으로 광포확대를 향해 나아갑시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