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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12월호 좌담회어서 - 법련 내용과 동일
관리자
2013-11-22
8,109
2013-12 이달의 어서
자쿠니치보어서
지용의 사명을 가슴에
광포의 큰 길을 명랑하게
[배경과 대의]
이 어서는 1279년 9월 16일, 니치렌대성인(日蓮大聖人)이 어느 문하를 위해 써서 제자인 자쿠니치보에게 전달해 달라고 부탁하신 편지입니다.
어서의 내용에서 이 문하는 대성인의 부모와 연관된 사람이며, 대성인의 고향인 아와(지바현 남부)에 살았다고 추정됩니다.
이 어서는 먼저, 받기 어려운 인신(人身)을 받고 만나기 어려운 불법(佛法)과 만나 ‘제목(題目)의 행자(行者)’가 된 복운이 얼마나 큰지를 가르치십니다.
이어서 니치렌이 바로 “일본 제일의 법화경 행자”라고 선언하십니다.
오로지 대성인 한 사람만이 법화경 권지품에 설하는 삼류강적(三類强敵)과 싸워 경문을 몸으로 읽었기 때문입니다.
또 ‘니치렌’이라고 자칭하는 일은 ‘자해불승(自解佛乘, 스스로 부처의 깨달음을 얻음)’으로서, 대성인의 묘법홍통은 상행보살이 말법(末法)에서 출현한 일에 해당한다고 법화경 신력품의 경문을 인용해 밝히십니다.
그리고 이러한 대성인의 제자가 된 사람들은 깊은 숙연을 자각해 대성인과 같이 묘법(妙法)을 넓혀야 한다고 촉구하십니다.
끝으로 어본존을 깊이 믿으라고 가르치며 삼세(三世) 영원한 행복을 위해 신심을 게을리하지 말고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라고 끝까지 부르도록 격려하십니다.
[본문] 어서전집 903쪽 7행~9행
이러한 자의 제자단나가 된 사람들은 숙연이 깊다고 생각하여 니치렌과 동일하게 법화경을 넓혀야 하느니라. 법화경의 행자라고 불려져 버린 것은 이미 불상이며 면하기 어려운 몸이로다.
| 통 해 |
이러한 니치렌의 제자와 단나가 된 사람들은 숙연이 깊다고 생각하고 니치렌과 같이 법화경을 넓혀야 한다. (당신이) 법화경 행자라고 불리는 것은 이미 불운(不運)이며 면하기 어려운 몸이다.
| 어구해설 |
숙연(宿緣)_ 과거세부터 맺은 인연이나 관계를 뜻한다. 여기서는 니치렌대성인 그리고 법화경과 과거세부터 깊이 맺어진 관계를 가리킨다.
불상(不祥)_ 불운과 재난을 뜻한다. 여기서는 니치렌대성인의 문하가 되어 법화경 때문에 난을 받는 것을 일반적으로 말하면 ‘불상’ 즉 불운이며 재난이라는 뜻이다.
[포인트 강의]
“니치렌과 동일하게” 일어서라!
‘사제불이의 실천’을 가르치신 어서입니다.
어서의 “이러한 자”는 ‘법화경 행자’ 그리고 ‘상행보살’로서 말법의 모든 민중을 구제하기 위해 수많은 대난과 꿋꿋이 싸운 니치렌대성인입니다.
불석신명으로 투쟁을 이겨낸 대성인의 제자가 된 사람들은 “숙연이 깊다고 생각하여” 하고 말씀하십니다. 즉 삼세(三世)에 걸친 불법의 사제가 지닌 깊은 ‘연’을 자각하라는 말씀입니다.
스승인 대성인이 문하에게 “숙연을 자각해 지용의 사명을 가슴에 품고 일어서라!” 하고 격려한 일은 무상(無上)의 ‘생명의 칭호’를 주신 일이나 다름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대성인은 이어서 “니치렌과 동일하게 법화경을 넓혀야 하느니라.” 하고 문하에게 묘법 홍통의 실천을 촉구하십니다.
악세말법에 법화경 행자로서 일어서 홍교를 실천하면 계속해서 고난이나 고뇌가 따를지도 모릅니다. 따라서 대성인은 “불상(不祥)이며” 즉 불운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면하기 어려운 몸”은 바꿔 말하면 무엇에도 굴하지 않고 해내는 ‘사명 깊은 몸’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니치렌과 동일하게” 어떠한 난도 두려워하지 않는 용기로 일어서 눈앞의 불행에 허덕이는 민중을 끝까지 구제하는 광선유포 활동에 힘쓰는 일이 바로 우리가 지금 이때에 제자로서 태어난 숙연을 뜻하며 영예로운 사명입니다.
이케다 SGI 회장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지금’이 중요합니다. ‘지금’ ‘무엇을’ 실천하느냐에 달렸습니다. ‘스승과 함께 지금의 때에 걸맞은 실천에 진지하게 힘쓰느냐 어떠냐’입니다.”
자, 총본부도 완성되었습니다. 신시대의 세계광포를 향한 사제불이의 투쟁을 위풍당당하게 춤추며 나아갑시다.
[신입회원과 함께하는 좌담회 어서]
어떤 일이 있어도 주저앉지 않는다. 그 사람이 이긴다!
― ‘옷깃만 스쳐도 전생의 인연’이라는 속담이 있지요. ‘길 가는 사람과 옷깃만 스쳐도 과거세부터 깊은 인연’이 있다는 뜻입니다.
대체로 불법은 ‘연’ 즉 사람과 맺는 인연을 매우 소중히 여깁니다.
왜 연(緣)을 소중히 여기나요?
― 결론짓자면 “불종(佛種)은 연(緣)에 따라서 일어남”(어서 1467쪽)이기 때문입니다.
당신의 인간혁명도, 행복도, 고난을 극복하고 꿈을 이루는 일도 모두 사람과 만나고 사람과 맺은 ‘연’에서 시작합니다. 역시 인간은 외톨이로는 좀처럼 성장할 수 없습니다.
반드시 촉발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여러 사람과 인연을 맺는 속에 “이겼다!”고 가슴을 펴고 더없이 최고의 인생을 나아갈 수 있는 연이 있습니다.
그것이 ‘사제라는 연’입니다.
법화경은 사제를 가장 중요하게 여깁니다.
이케다 선생님은 “부처의 씨앗을 개발하는 최고의 선연(善緣)이 바로 사제의 연이다.” 하고 가르치셨습니다.
게다가 자신의 인생을 전부 걸어도 ‘후회 없는 인생’의 스승을 만나기는 매우 어렵습니다.
이달에 배우는 어서에서 “숙연이 깊다고 생각하여”라는 말씀에는 만나기 어려운 사제의 연을 맺은 제자가 ‘어떻게라도 스승과 같은 길을 걸었으면 한다. 거기에 행복이 있다!’는 따뜻하고 깊은 자애의 격려가 담겨 있습니다. 그 확실한 행복으로 가는 길이…….
“법화경을 넓히는 일”입니까.
― 그렇습니다!
게다가 “니치렌과 동일하게”가 중요합니다.
니치렌대성인의 생애는 “산에 산이 겹치고 파도에 파도가 덮치며, 난(難)에 난이 더하고 비(非)에 비를 더함이라.”(어서 202쪽) 하듯이 중상과 박해라는 폭풍의 연속이었습니다.
여러번 목숨도 잃을 뻔했습니다.
그러나 대성인은 “니치렌은 한번도 물러설 마음이 없었노라.”(어서 1224쪽) “싸움은 그치지 않느니라.”(어서 502쪽) “아직 단념하지 않노라.”(어서 1056쪽) 하고 잘라 말씀하십니다.
“법화경을 넓히는” 일은 ‘한 사람’을 반드시 행복하게 하는 일입니다. 그것은 투쟁이자, 인내요 끈기이자 집념입니다.
굉장히 힘들겠네요.
― 힘들기 때문에 무량무변한 공덕이 있습니다. 그를 위해 ‘지지 않는’ 일이 중요하지 않을까요.
먼저 ‘이렇게 이야기하면 어떻게 생각할까’ 하는 자신의 두려움에 지지 않는다.
그리고 설령 남에게 비난을 받고 험담을 들어도 지지 않는다.
이케다 선생님은 스물네살 때 당시 ‘악전고투하는 심정’을 일기에 이렇게 쓰셨습니다.
“왜 이렇게 정법을, 신앙을 추구하지 않는가?” “쓸쓸하다. 슬프다.” 그래도 그 바로 다음에 쓴 일기에는 “끝까지 노력할 수밖에 없다.” “힘내자.…노력하면 된다.” 하고 쓰셨습니다.
이것이 “니치렌과 동일하게”라는 마음이라고 생각합니다.
당신이 이 마음을 관철하면 절대로 지지 않습니다. 너그럽고 믿음직스럽고 매력적인 사람이 됩니다.
마치 스승처럼 강해집니다.
이케다 선생님은 “어떤 일이 있어도 주저앉지 않고 ‘노력하는 사람’ ‘인내하는 사람’이 되세요. 그 사람이 승리합니다.”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 사람이 됩시다.
그를 위해 먼저 우인에게 이야기해 보면 어떨까요.
자쿠니치보어서
지용의 사명을 가슴에
광포의 큰 길을 명랑하게
[배경과 대의]
이 어서는 1279년 9월 16일, 니치렌대성인(日蓮大聖人)이 어느 문하를 위해 써서 제자인 자쿠니치보에게 전달해 달라고 부탁하신 편지입니다.
어서의 내용에서 이 문하는 대성인의 부모와 연관된 사람이며, 대성인의 고향인 아와(지바현 남부)에 살았다고 추정됩니다.
이 어서는 먼저, 받기 어려운 인신(人身)을 받고 만나기 어려운 불법(佛法)과 만나 ‘제목(題目)의 행자(行者)’가 된 복운이 얼마나 큰지를 가르치십니다.
이어서 니치렌이 바로 “일본 제일의 법화경 행자”라고 선언하십니다.
오로지 대성인 한 사람만이 법화경 권지품에 설하는 삼류강적(三類强敵)과 싸워 경문을 몸으로 읽었기 때문입니다.
또 ‘니치렌’이라고 자칭하는 일은 ‘자해불승(自解佛乘, 스스로 부처의 깨달음을 얻음)’으로서, 대성인의 묘법홍통은 상행보살이 말법(末法)에서 출현한 일에 해당한다고 법화경 신력품의 경문을 인용해 밝히십니다.
그리고 이러한 대성인의 제자가 된 사람들은 깊은 숙연을 자각해 대성인과 같이 묘법(妙法)을 넓혀야 한다고 촉구하십니다.
끝으로 어본존을 깊이 믿으라고 가르치며 삼세(三世) 영원한 행복을 위해 신심을 게을리하지 말고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라고 끝까지 부르도록 격려하십니다.
[본문] 어서전집 903쪽 7행~9행
이러한 자의 제자단나가 된 사람들은 숙연이 깊다고 생각하여 니치렌과 동일하게 법화경을 넓혀야 하느니라. 법화경의 행자라고 불려져 버린 것은 이미 불상이며 면하기 어려운 몸이로다.
| 통 해 |
이러한 니치렌의 제자와 단나가 된 사람들은 숙연이 깊다고 생각하고 니치렌과 같이 법화경을 넓혀야 한다. (당신이) 법화경 행자라고 불리는 것은 이미 불운(不運)이며 면하기 어려운 몸이다.
| 어구해설 |
숙연(宿緣)_ 과거세부터 맺은 인연이나 관계를 뜻한다. 여기서는 니치렌대성인 그리고 법화경과 과거세부터 깊이 맺어진 관계를 가리킨다.
불상(不祥)_ 불운과 재난을 뜻한다. 여기서는 니치렌대성인의 문하가 되어 법화경 때문에 난을 받는 것을 일반적으로 말하면 ‘불상’ 즉 불운이며 재난이라는 뜻이다.
[포인트 강의]
“니치렌과 동일하게” 일어서라!
‘사제불이의 실천’을 가르치신 어서입니다.
어서의 “이러한 자”는 ‘법화경 행자’ 그리고 ‘상행보살’로서 말법의 모든 민중을 구제하기 위해 수많은 대난과 꿋꿋이 싸운 니치렌대성인입니다.
불석신명으로 투쟁을 이겨낸 대성인의 제자가 된 사람들은 “숙연이 깊다고 생각하여” 하고 말씀하십니다. 즉 삼세(三世)에 걸친 불법의 사제가 지닌 깊은 ‘연’을 자각하라는 말씀입니다.
스승인 대성인이 문하에게 “숙연을 자각해 지용의 사명을 가슴에 품고 일어서라!” 하고 격려한 일은 무상(無上)의 ‘생명의 칭호’를 주신 일이나 다름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대성인은 이어서 “니치렌과 동일하게 법화경을 넓혀야 하느니라.” 하고 문하에게 묘법 홍통의 실천을 촉구하십니다.
악세말법에 법화경 행자로서 일어서 홍교를 실천하면 계속해서 고난이나 고뇌가 따를지도 모릅니다. 따라서 대성인은 “불상(不祥)이며” 즉 불운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면하기 어려운 몸”은 바꿔 말하면 무엇에도 굴하지 않고 해내는 ‘사명 깊은 몸’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니치렌과 동일하게” 어떠한 난도 두려워하지 않는 용기로 일어서 눈앞의 불행에 허덕이는 민중을 끝까지 구제하는 광선유포 활동에 힘쓰는 일이 바로 우리가 지금 이때에 제자로서 태어난 숙연을 뜻하며 영예로운 사명입니다.
이케다 SGI 회장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지금’이 중요합니다. ‘지금’ ‘무엇을’ 실천하느냐에 달렸습니다. ‘스승과 함께 지금의 때에 걸맞은 실천에 진지하게 힘쓰느냐 어떠냐’입니다.”
자, 총본부도 완성되었습니다. 신시대의 세계광포를 향한 사제불이의 투쟁을 위풍당당하게 춤추며 나아갑시다.
[신입회원과 함께하는 좌담회 어서]
어떤 일이 있어도 주저앉지 않는다. 그 사람이 이긴다!
― ‘옷깃만 스쳐도 전생의 인연’이라는 속담이 있지요. ‘길 가는 사람과 옷깃만 스쳐도 과거세부터 깊은 인연’이 있다는 뜻입니다.
대체로 불법은 ‘연’ 즉 사람과 맺는 인연을 매우 소중히 여깁니다.
왜 연(緣)을 소중히 여기나요?
― 결론짓자면 “불종(佛種)은 연(緣)에 따라서 일어남”(어서 1467쪽)이기 때문입니다.
당신의 인간혁명도, 행복도, 고난을 극복하고 꿈을 이루는 일도 모두 사람과 만나고 사람과 맺은 ‘연’에서 시작합니다. 역시 인간은 외톨이로는 좀처럼 성장할 수 없습니다.
반드시 촉발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여러 사람과 인연을 맺는 속에 “이겼다!”고 가슴을 펴고 더없이 최고의 인생을 나아갈 수 있는 연이 있습니다.
그것이 ‘사제라는 연’입니다.
법화경은 사제를 가장 중요하게 여깁니다.
이케다 선생님은 “부처의 씨앗을 개발하는 최고의 선연(善緣)이 바로 사제의 연이다.” 하고 가르치셨습니다.
게다가 자신의 인생을 전부 걸어도 ‘후회 없는 인생’의 스승을 만나기는 매우 어렵습니다.
이달에 배우는 어서에서 “숙연이 깊다고 생각하여”라는 말씀에는 만나기 어려운 사제의 연을 맺은 제자가 ‘어떻게라도 스승과 같은 길을 걸었으면 한다. 거기에 행복이 있다!’는 따뜻하고 깊은 자애의 격려가 담겨 있습니다. 그 확실한 행복으로 가는 길이…….
“법화경을 넓히는 일”입니까.
― 그렇습니다!
게다가 “니치렌과 동일하게”가 중요합니다.
니치렌대성인의 생애는 “산에 산이 겹치고 파도에 파도가 덮치며, 난(難)에 난이 더하고 비(非)에 비를 더함이라.”(어서 202쪽) 하듯이 중상과 박해라는 폭풍의 연속이었습니다.
여러번 목숨도 잃을 뻔했습니다.
그러나 대성인은 “니치렌은 한번도 물러설 마음이 없었노라.”(어서 1224쪽) “싸움은 그치지 않느니라.”(어서 502쪽) “아직 단념하지 않노라.”(어서 1056쪽) 하고 잘라 말씀하십니다.
“법화경을 넓히는” 일은 ‘한 사람’을 반드시 행복하게 하는 일입니다. 그것은 투쟁이자, 인내요 끈기이자 집념입니다.
굉장히 힘들겠네요.
― 힘들기 때문에 무량무변한 공덕이 있습니다. 그를 위해 ‘지지 않는’ 일이 중요하지 않을까요.
먼저 ‘이렇게 이야기하면 어떻게 생각할까’ 하는 자신의 두려움에 지지 않는다.
그리고 설령 남에게 비난을 받고 험담을 들어도 지지 않는다.
이케다 선생님은 스물네살 때 당시 ‘악전고투하는 심정’을 일기에 이렇게 쓰셨습니다.
“왜 이렇게 정법을, 신앙을 추구하지 않는가?” “쓸쓸하다. 슬프다.” 그래도 그 바로 다음에 쓴 일기에는 “끝까지 노력할 수밖에 없다.” “힘내자.…노력하면 된다.” 하고 쓰셨습니다.
이것이 “니치렌과 동일하게”라는 마음이라고 생각합니다.
당신이 이 마음을 관철하면 절대로 지지 않습니다. 너그럽고 믿음직스럽고 매력적인 사람이 됩니다.
마치 스승처럼 강해집니다.
이케다 선생님은 “어떤 일이 있어도 주저앉지 않고 ‘노력하는 사람’ ‘인내하는 사람’이 되세요. 그 사람이 승리합니다.”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 사람이 됩시다.
그를 위해 먼저 우인에게 이야기해 보면 어떨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