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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6월호 좌담회어서 - 법련 내용과 동일
관리자
2013-05-22
8,722
2013 6월 반좌담회 어서
시지시로전어서
묘법(妙法)을 말해 넓히는 존귀한 사명의 길을
[배경과 대의]
이 어서는 니치렌대성인(日蓮大聖人)이 문하 시지시로에게 주신 편지입니다. 1261년 4월에 쓰셨다고 전해지지만 다른 설도 있습니다.
대성인은 이 어서의 끝부분에서 시지시로에게 “시조깅고전을 만나시면 잘 말씀하시라.”(어서 1449쪽)고 하셨으며, 또 다른 어서에서도 시지시로가 시조깅고나 도키조닌과 친분이 있었다는 점을 헤아릴 수 있습니다.
또 대성인의 장례식에 참여하는 등 착실하게 신앙을 관철한 문하인 듯합니다. 이 어서의 첫부분에는 시지시로가 대성인에게 어떤 일을 보고했다고 씌어 있습니다.
대성인은 그 일을 확인해 보니 내용이 정확했다고 칭찬하며 앞으로도 진실을 이해하는 귀와 판단하는 눈을 지니도록 격려하십니다.
이어서 “대난(大難)이 오면 강성한 신심은 더욱더 기뻐하느니라.”(어서 1448쪽) 하고 대난을 겪을 때 더욱더 강성한 신심을 일으켜 용약 환희하며 싸우는 사람이 말법의 ‘법화경 행자’라고 말씀하십니다.
또 “대난이 없으면 법화경의 행자가 아니로다.”(어서 1448쪽) 하고 말하며 대난을 겪는 일이 바로 법화경 행자라는 증거라고 밝히십니다.
그리고 이 법화경을 일문일구(一文一句)라도 설하는 사람은 ‘여래(如來)의 사자(使者)’이며, 시지시로도 가장 존귀한 사명에 사는 사람이라고 상찬하십니다.
또 법화경을 일문일구라도 듣고 혼에 물들인 사람은 고뇌로 가득한 ‘생사(生死)의 대해(大海)’를 건너 성불로 가는 “묘호렌게쿄(妙法蓮華經)의 배”에 탄 사람이라고 가르치십니다.
끝으로 약왕품에서 설한 “여도득선(如渡得船, 나루터에서 배를 얻듯이)”(법화경 597쪽)의 경문을 통해 “생사의 대해”를 끝까지 건너는 이 법화경의 공력(功力)을 소개하십니다.
그리고 이러한 묘법(妙法)의 “여도득선의 배”에 타야 하는 사람은 “니치렌의 제자 단나 등이니” 하고 말하며 대성인의 제자들임을 확신하도록 격려하십니다.
[본문] 어서전집 1448쪽 8행~10행
법사품에는 약시선남자 선여인 내지 즉여래사라고 설하시어, 승도 속도 이도 여도 일구라도 남에게 말하는 사람은 여래의 사자라고 쓰였느니라. 귀하는 이미 속이며 선남자인 사람이로다. 이 경을 일문일구일지라도 청문하여 혼에 물들인 사람은 생사의 대해를 건널 수 있는 배이니라.
[통 해]
법화경 법사품 제10에는 “만약 이 선남자•선여인이 (내<석존>가 멸도<滅度>한 후에 남몰래 한 사람을 위해서라도 법화경의 한 구절을 설하면 마땅히 알지어다.) 이 사람은 곧 여래의 사자다.” 하고 설하며, 승과 속 그리고 이(尼)와 여(女)도 법화경을 한 구절이라도 사람에게 설하는 사람은 여래의 사자입니다.
지금 귀하는 속(俗)이며 여기서 설하는 선남자에 해당합니다.
이 법화경을 일문일구라도 듣고 마음에 물들인 사람은 생사의 대해를 건널 수 있는 배와 같습니다.
[어구해설]
약시선남자(若是善男子) 선여인(善女人) 내지(乃至) 즉여래사(則如來使)_
: 법화경 법사품 제10에서 설한 “만약 이 선남자•선여인이, 내가 멸도한 후에, 남몰래 한 사람을 위해서라도, 법화경의 한 구절을 설하면, 마땅히 알지어다, 이 사람은 곧 여래의 사자로서 여래가 보내, 여래의 일을 행하였다.”(법화경 357쪽) 하는 경문을 말한다.
생사(生死)의 대해(大海)_
: 생사는 반복되는 미혹의 경애로 태어나 죽는 것. 또 그 괴로움을 말한다. 한없이 깊은 생사의 고뇌를 대해(大海)에 비유했다.
[포인트강의]
벗의 행복을 바라는 성실한 대화를
말법악세(末法惡世)에 묘법을 알리고 넓히는 사람에게는 존귀하고 깊은 사명이 있습니다.
법화경 법사품 제10에서는 불법(佛法)을 믿는 남성이나 여성이 부처가 입멸한 후에 한 사람을 위해 법화경의 한 구절이라도 설하면 그 사람이 바로 ‘여래의 사자’라고 설합니다.
이 어서는 이 경문을 바탕으로 승과 속 그리고 남성과 여성이 한 구절이라도 사람에게 설하면 누구나 ‘여래의 사자’라고 강조합니다. 그리고 시지시로도 마찬가지라고 말씀하십니다.
참으로 광선유포에 힘쓰는 사람은 어떠한 처지에 놓이더라도 고뇌하는 민중을 구하겠다는 서원을 세워 이 세상에 태어난 가장 존귀한 여래의 사자입니다.
이어서 대성인은 이 법화경을 한 구절이라도 들어 혼에 물들인 사람은 ‘생사의 대해를 건너는 배’와 같다고 말씀하십니다.
우리 인생에는 늘 여러가지 고난이 따릅니다. 삼세(三世)에 걸쳐 한없이 깊은 고뇌가 이어지는 일을 ‘생사의 대해’에 비유하셨습니다. 대성인은 법화경을 일문일구라도 듣고 마음속에 물들인 사람은 이 ‘생사의 대해’를 건너 성불이라는 행복과 승리의 경애에 이를 수 있다고 가르치십니다.
이처럼 이 어서에서는 법화경을 일문일구라도 말하는 사명과 일문일구라도 들어 마음에 물들이는 공덕을 밝히십니다.
이케다 SGI 회장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진정으로 상대의 행복을 바라는 성실한 말 한마디. 넘치는 생명력에서 나오는 확신과 환희의 말 한마디. 벗의 고뇌를 타파하는 용기와 희망의 말 한마디. 그 ‘말 한마디’가 바로 상대의 생명을 불러 일으킵니다. 따라서 ‘일문일구’라도 설하는 것 자체가 훌륭한 절복행이며 그 존귀한 성업(聖業)에 복덕이 넘칩니다.”
우리가 성실하게 진심을 담아 하는 대화는 반드시 상대의 불성(佛性)에 통합니다. ‘여래의 사자’로서 꿋꿋이 사명을 완수합시다.
[신입회원과 함께하는 좌담회어서]
모두 눈앞의 ‘한 사람’에서 시작한다
― 이번달 좌담회에서 배우는 어서는 인간으로서 과연 어떤 사람을 존경해야 하며 어떤 사람이 훌륭한지를 가르칩니다.
사회적 위치나 지위 등은 관계없습니다. 진정으로 훌륭한 사람은 ‘법화경을 한 구절이라도 남에게 말하는 사람’입니다.
단 한 마디 ‘이 신심은……’ ‘학회는……’ 하고 이렇게만 말하더라도 그 굉장함을 전하는 사람이 위대합니다.
왜냐하면 먼저 자신이 강해지고, 상대의 행복에 도움이 된다, 결과적으로 상대를 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케다 선생님은 이렇게 가르치십니다.
“때로는 상대가 진지하게 듣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그렇더라도 벗의 가슴속에 갖추어진 불성(자비의 생명이자 절대적 행복을 여는 원동력)에는 반드시 전해져 울립니다. 깊은 생명의 차원에서 보면 부처의 씨앗이 뿌려져 머지않아 싹트는 봄이 반드시 찾아옵니다.”
싫은 표정을 짓고 차가운 시선을 던져도, 이해한 척하며 흘려 들어도 단 한 마디라도 말하면 상대는 반드시 행복의 궤도에 들어갑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기답게 신심이나 학회의 일을 전하면 됩니다. 즉 연을 맺는다. 그 노력과 인내력이 바로 현실에서 일체중생을 구하는 ‘부처의 일’을 실천하는 일입니다. 바로 ‘모든 사람을 구하겠다.’는 부처(여래)와 같은 마음으로 행동하는 사람이 됩니다.
그래서 “일구라도 남에게 말하는 사람은 여래의 사자”군요.
― ‘여래의 사자’ 만큼 존귀한 사람은 없습니다.
저 같은 사람은 좀처럼 할 수 없을 듯합니다만.
― 그리 어렵게 생각하지 않아도 됩니다. 넓은 뜻에서 말하면 자신의 직장에서 성실하게 일한다, 이웃 사람에게 인사를 한다, 친구를 소중히 한다……. 직장이나 지역에서 학회원답게 나아가는 일이 신심이나 학회에 대한 신뢰를 넓혀 연을 맺는 일이 아닐까요. 바로 ‘법화경을 일구라도 남에게 말하는’ 노력과 인내력에 통합니다. 주위를 행복하게 합니다. 위대한 일입니다.
조금씩 노력해 보겠습니다.
― 굉장합니다! 그것이 “일문일구일지라도 청문하여 혼에 물들인 사람”입니다. 어서에서 설하는 내용을 듣고 이해하는 것만으로 “그렇구나” 하고 끝내지 않는다. 거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행동으로 옮긴다. 실제로 해 본다. 그 사람이 바로 “혼에 물들인 사람”입니다.
당신이 실제로 움직인 만큼 어서는 단순히 씌어 있는 글자가 아닙니다.
글자로 표현한 의미를 뛰어넘어 그 말 속에 내포된 글쓴이의 깊은 마음과 인격을 접하게 됩니다. 그리고 계속해서 행동하면 글자에 담긴 마음을 내 마음으로 하게 됩니다. 실제로 글을 쓴 사람과 같은 인격으로 사는 일에도 통합니다.
어서의 한 구절을 실천하는 일은 매우 깊은 의미가 있군요.
― 어서도 선생님 지도도 그렇습니다. 얼마나 풍부하고 온화하고 힘 있게 살 수 있는가, 반드시 자신도 다른 사람도 함께 미혹과 괴로움의 거친 파도를 극복하고 행복과 승리에 이를 수 있습니다.
그러니 먼저 이케다 선생님의 이 말씀을 행동으로 옮겨 보면 어떨까요?
“눈앞의 ‘한 사람’과 마주하고 성실하게 거듭 대화한다. 모두 여기에서 시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