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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5월호 좌담회어서 - 법련 내용과 동일
관리자
2013-04-25
7,579
2013-5월호 지구좌담회 어서
입정안국론
민중의 행복과 평화를 위해
용기와 정의의 대화를!
[배경과 대의]
이 어서는 니치렌대성인(日蓮大聖人)이 1260년 7월 16일, 가마쿠라 막부의 실질적인 최고 권력자 호조 도키요리에게 제출하신 ‘국주간효(國主諫曉)의 서(書)’입니다.
주권재민(主權在民)인 현대에는 이 어서의 정신을 알아야 할 대상이 주권자인 민중 한사람 한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당시 일본에서는 기아, 역병, 지진 그리고 이상기상(異常氣象) 등 재난이 끊임없이 일어났습니다. 대성인은 이러한 재난의 원인을 여러 경전에 비춰 통찰하고 그 근원이 온 나라가 방법(謗法) 즉 정법(正法)을 위배한 사실에 있다고 밝히셨습니다.
어서 제목의 ‘입정안국’은 ‘정법을 세워 나라를 안온케 한다.’는 뜻입니다. 대성인은 국토의 평화를 실현하려면 악(惡)의 근원인 방법(謗法)을 잘라 버리고 사람들의 마음에 정법을 세우는 수밖에 없다고 보고, 이 어서를 써서 당시 최고 권력자에게 제출하셨습니다.
이 어서에는 호조 도키요리를 나그네로, 대성인을 주인으로 가정한 ‘십문구답(十問九答)’의 대화로 ‘입정안국’의 방도를 제시합니다.
대성인은 재난의 원흉으로 특히 당시 크게 융성했던 염불을 강하게 파절하십니다. 그리고 이대로 방법(謗法)이 계속되면 삼재칠난(三災七難) 중 아직 일어나지 않은 ‘자계반역난’(내란)과 ‘타국침핍난’(외국의 침략)의 두 가지 난이 반드시 일어난다고 경고하고 ‘실승(實乘)의 일선(一善)’에 귀의하라고 촉구하십니다. 마지막에 나그네가 방법(謗法)을 버리고 정법에 귀의함을 맹세하는 그 말이 전체의 결론입니다.
<입정안국론>을 제출하자 제종(諸宗)의 사람들은 크게 반발하고 막부 권력은 탄압하기 시작했습니다. 훗날 실제 자계반역난이 ‘2월 소동’으로 그리고 타국침핍난이 ‘몽고 침략’으로 일어나, 이 예언을 적중시킨 대성인이 바로 삼세(三世)를 내다본 ‘성인(聖人)’이라는 사실이 증명되었습니다.
대성인은 입멸하기 바로 전까지 이 어서를 계속 강의하셨습니다. 그리고 민중의 행복과 평화를 위해 일생 동안 관철한 투쟁을 제자에게 의탁하셨습니다.
[본 문]
어서전집 32쪽 1행
그대 모름지기 일신의 안도를 생각한다면 우선 사표의 정밀을 기도해야 하느니라.
[통 해]
그대 자신의 안온을 바란다면 먼저 세상의 평온을 기원해야 한다.
[어구해설]
사표(四表)의 정밀(靜謐)
: 사표는 동서남북의 사방을 말한다. 정밀은 세상이 평온하게 다스려진 상태로 세상의 평온과 세계 평화를 뜻한다.
[포인트 강의]
자기의 작은 틀에서 벗어나자
진실로 평화로운 사회를 실현하려는 근본적인 방도를 제시한 어서입니다. 니치렌대성인이 이 어서의 앞부분에서 경고한 타국침핍난이나 자계반역난이 일어나면 국가나 생활의 기반이 파괴되고 그때는 놀라더라도 이미 때는 늦어 피할 곳조차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따라서 대성인은 “그대 모름지기 일신의 안도를 생각한다면 우선 사표의 정밀을 기도해야 하느니라.” 하고 결론을 내리십니다.
즉 ‘일신의 안도’인 자기 개인 생활의 평안과 가정의 행복을 바란다면 먼저 ‘사표의 정밀’인 세계 평화와 나라의 안온을 기원해야 한다고 가르치십니다.
대성인불법은 자신의 행복을 위해 노력하면서 한사람 한사람의 ‘생명의 변혁’을 통해 사회를 더욱 나은 방향으로 바꾸려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현실에 대한 눈을 닫고 사회에서 도피하거나, 종교의 사명은 내면의 정신적 안심이지 사회생활에 관여하는 것이 아니라는 종교관과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사회가 번영하고 평화로워야 비로소 개인의 행복도 달성할 수 있다는 대성인의 주장은 현실에서 사람과 사회를 향상, 발전시키려는 종교의 진가를 가르치십니다. 이 삶의 자세가 곧 우리가 펼치는 입정안국의 투쟁입니다.
이케다 SGI 회장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자기 혼자만의 행복이 아닙니다. 사회의 평온과 번영을 기원하고 그것을 실현하려고 최선을 다해야 비로소 진실한 행복이 실현됩니다. 또 그러한 삶의 자세를 관철해야 비로소 자기의 작은 틀에서 벗어나 진정으로 가치 있는, 충실한 인생을 구축할 수 있습니다.”
사람들을 위해, 사회를 위해 정의와 신념의 대화를 전개합시다.
[신입회원과 함께하는 좌담회 어서]
모두를 위해, 사회를 위해,
인간을 위해!
― 사실 모든 학회원이 <입정안국론>의 이 구절을 배우고 있다는 것이 굉장한 일입니다!
무슨 뜻인가요?
― <입정안국론>은 누구에게 보낸 어서일까요? 당시의 최고 권력자(호조 도키요리)입니다!
특히 이 구절은 나라를 통치하는 사람에게 잘못을 지적하고 위정자의 올바른 자세를 가르치신 부분입니다. “사회가 평온하고 사람들이 행복해지기를 바라며 그것을 실현하기 위해 행동하지 않으면 자신의 안온도 없다!”라고 그야말로 열변을 토하는 듯한 말씀입니다. 학회원은 이 구절을 자기 삶의 자세로 실천했습니다.
‘먼저’ 모두를 위해, ‘먼저’ 지역을 위해 안심하고 살 수 있는 사회가 되도록 기원하고 행동했습니다. 일반적으로는 자신이나 가족의 일로도 벅차지 않을까요. 그런데도 자신의 일은 뒤로 하고 모두 연대하며 “함께 행복해지자.” “좋은 사회를 만들자.”고 거듭 주장했습니다. 위대한 일입니다.
왜 ‘먼저’ 사회의 평온을 기원하도록 권했나요?
― 그 이유는 거기에 한사람 한사람의 행복과 사회의 번영이 있기 때문입니다. 행복은 예를 들어, 모두 비참한 일을 겪어 괴로워하는데 ‘자기만의 행복’이 존재할까요? ‘누군가를 희생시켜 자기들이 행복해진다.’ 이런 사회라도 괜찮을까요?
우리는 자타(自他) 함께하는 행복을 추구합니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이케다 선생님은 ‘어머니와 자식이 웃으며 사는 세상’이라고 정의하셨습니다. 학회는 바로 그것을 실현하려고 투쟁하고 있습니다.
또 자기 행복밖에 모르는 좁은 마음, 한마디로 ‘자기중심’적인 삶의 자세가 바로 불행의 원인입니다.
자기중심은 제멋대로 굴며 편합니다. 다른 사람이야 어떻든 흥미로운 일, 재미있는 일, 이득을 보는 일만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자기중심의 인생은 어떻게 될까요. 인간, 특히 젊은이의 경우는 가장 중요한 것을 잃습니다. 동료의 ‘신뢰’라는 둘도 없는 보물을 말입니다. 수많은 인생을 지켜본 이케다 선생님은 “인생에서도 사회에서도 ‘자기중심’의 마음이 마지막에 이르는 곳은 지옥계입니다.” 하고 결론지었습니다. 지옥계는 ‘살아 있는 것 자체가 괴롭다.’ ‘무엇을 보아도 불행해 보인다.’는 상태입니다.
그렇게 되고 싶지 않아요.
― 좋은 사회를 만들고자 모두가 연대하는 삶은 확실히 힘듭니다. 그러나 다른 사람이나 사회와 ‘연대하는’ 삶을 관철하는 일은 결국 자기중심의 작은 틀을 깨는 일입니다. 인간의 폭이 반드시 넓어집니다. 마음이 강해집니다. 그것을 경애혁명 또는 인간혁명이라고 합니다. 자연히 충실한 인생으로 됩니다.
이케다 선생님은 “자기 혼자만의 행복이 아닙니다. 사회의 평온과 번영을 기원하고 그것을 실현하려고 최선을 다해야 비로소 진실한 행복이 실현됩니다.” 하고 가르치셨습니다.
지금은 ‘자기중심’의 사회일지도 모르겠네요.
― ‘먼저’ 내 주변 친구부터 시작해 보세요. “사회와 함께 어우러지자.”“좋게 만들자.”하고 주장한 만큼 ‘자기중심’이라는 어두운 사회를 밝게 바꿀 수 있습니다. 사회를 가장 밑바닥부터 바꾸는 굉장한 공헌입니다. 시대를 움직이고 있다니, 굉장하지 않습니까!
입정안국론
민중의 행복과 평화를 위해
용기와 정의의 대화를!
[배경과 대의]
이 어서는 니치렌대성인(日蓮大聖人)이 1260년 7월 16일, 가마쿠라 막부의 실질적인 최고 권력자 호조 도키요리에게 제출하신 ‘국주간효(國主諫曉)의 서(書)’입니다.
주권재민(主權在民)인 현대에는 이 어서의 정신을 알아야 할 대상이 주권자인 민중 한사람 한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당시 일본에서는 기아, 역병, 지진 그리고 이상기상(異常氣象) 등 재난이 끊임없이 일어났습니다. 대성인은 이러한 재난의 원인을 여러 경전에 비춰 통찰하고 그 근원이 온 나라가 방법(謗法) 즉 정법(正法)을 위배한 사실에 있다고 밝히셨습니다.
어서 제목의 ‘입정안국’은 ‘정법을 세워 나라를 안온케 한다.’는 뜻입니다. 대성인은 국토의 평화를 실현하려면 악(惡)의 근원인 방법(謗法)을 잘라 버리고 사람들의 마음에 정법을 세우는 수밖에 없다고 보고, 이 어서를 써서 당시 최고 권력자에게 제출하셨습니다.
이 어서에는 호조 도키요리를 나그네로, 대성인을 주인으로 가정한 ‘십문구답(十問九答)’의 대화로 ‘입정안국’의 방도를 제시합니다.
대성인은 재난의 원흉으로 특히 당시 크게 융성했던 염불을 강하게 파절하십니다. 그리고 이대로 방법(謗法)이 계속되면 삼재칠난(三災七難) 중 아직 일어나지 않은 ‘자계반역난’(내란)과 ‘타국침핍난’(외국의 침략)의 두 가지 난이 반드시 일어난다고 경고하고 ‘실승(實乘)의 일선(一善)’에 귀의하라고 촉구하십니다. 마지막에 나그네가 방법(謗法)을 버리고 정법에 귀의함을 맹세하는 그 말이 전체의 결론입니다.
<입정안국론>을 제출하자 제종(諸宗)의 사람들은 크게 반발하고 막부 권력은 탄압하기 시작했습니다. 훗날 실제 자계반역난이 ‘2월 소동’으로 그리고 타국침핍난이 ‘몽고 침략’으로 일어나, 이 예언을 적중시킨 대성인이 바로 삼세(三世)를 내다본 ‘성인(聖人)’이라는 사실이 증명되었습니다.
대성인은 입멸하기 바로 전까지 이 어서를 계속 강의하셨습니다. 그리고 민중의 행복과 평화를 위해 일생 동안 관철한 투쟁을 제자에게 의탁하셨습니다.
[본 문]
어서전집 32쪽 1행
그대 모름지기 일신의 안도를 생각한다면 우선 사표의 정밀을 기도해야 하느니라.
[통 해]
그대 자신의 안온을 바란다면 먼저 세상의 평온을 기원해야 한다.
[어구해설]
사표(四表)의 정밀(靜謐)
: 사표는 동서남북의 사방을 말한다. 정밀은 세상이 평온하게 다스려진 상태로 세상의 평온과 세계 평화를 뜻한다.
[포인트 강의]
자기의 작은 틀에서 벗어나자
진실로 평화로운 사회를 실현하려는 근본적인 방도를 제시한 어서입니다. 니치렌대성인이 이 어서의 앞부분에서 경고한 타국침핍난이나 자계반역난이 일어나면 국가나 생활의 기반이 파괴되고 그때는 놀라더라도 이미 때는 늦어 피할 곳조차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따라서 대성인은 “그대 모름지기 일신의 안도를 생각한다면 우선 사표의 정밀을 기도해야 하느니라.” 하고 결론을 내리십니다.
즉 ‘일신의 안도’인 자기 개인 생활의 평안과 가정의 행복을 바란다면 먼저 ‘사표의 정밀’인 세계 평화와 나라의 안온을 기원해야 한다고 가르치십니다.
대성인불법은 자신의 행복을 위해 노력하면서 한사람 한사람의 ‘생명의 변혁’을 통해 사회를 더욱 나은 방향으로 바꾸려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현실에 대한 눈을 닫고 사회에서 도피하거나, 종교의 사명은 내면의 정신적 안심이지 사회생활에 관여하는 것이 아니라는 종교관과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사회가 번영하고 평화로워야 비로소 개인의 행복도 달성할 수 있다는 대성인의 주장은 현실에서 사람과 사회를 향상, 발전시키려는 종교의 진가를 가르치십니다. 이 삶의 자세가 곧 우리가 펼치는 입정안국의 투쟁입니다.
이케다 SGI 회장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자기 혼자만의 행복이 아닙니다. 사회의 평온과 번영을 기원하고 그것을 실현하려고 최선을 다해야 비로소 진실한 행복이 실현됩니다. 또 그러한 삶의 자세를 관철해야 비로소 자기의 작은 틀에서 벗어나 진정으로 가치 있는, 충실한 인생을 구축할 수 있습니다.”
사람들을 위해, 사회를 위해 정의와 신념의 대화를 전개합시다.
[신입회원과 함께하는 좌담회 어서]
모두를 위해, 사회를 위해,
인간을 위해!
― 사실 모든 학회원이 <입정안국론>의 이 구절을 배우고 있다는 것이 굉장한 일입니다!
무슨 뜻인가요?
― <입정안국론>은 누구에게 보낸 어서일까요? 당시의 최고 권력자(호조 도키요리)입니다!
특히 이 구절은 나라를 통치하는 사람에게 잘못을 지적하고 위정자의 올바른 자세를 가르치신 부분입니다. “사회가 평온하고 사람들이 행복해지기를 바라며 그것을 실현하기 위해 행동하지 않으면 자신의 안온도 없다!”라고 그야말로 열변을 토하는 듯한 말씀입니다. 학회원은 이 구절을 자기 삶의 자세로 실천했습니다.
‘먼저’ 모두를 위해, ‘먼저’ 지역을 위해 안심하고 살 수 있는 사회가 되도록 기원하고 행동했습니다. 일반적으로는 자신이나 가족의 일로도 벅차지 않을까요. 그런데도 자신의 일은 뒤로 하고 모두 연대하며 “함께 행복해지자.” “좋은 사회를 만들자.”고 거듭 주장했습니다. 위대한 일입니다.
왜 ‘먼저’ 사회의 평온을 기원하도록 권했나요?
― 그 이유는 거기에 한사람 한사람의 행복과 사회의 번영이 있기 때문입니다. 행복은 예를 들어, 모두 비참한 일을 겪어 괴로워하는데 ‘자기만의 행복’이 존재할까요? ‘누군가를 희생시켜 자기들이 행복해진다.’ 이런 사회라도 괜찮을까요?
우리는 자타(自他) 함께하는 행복을 추구합니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이케다 선생님은 ‘어머니와 자식이 웃으며 사는 세상’이라고 정의하셨습니다. 학회는 바로 그것을 실현하려고 투쟁하고 있습니다.
또 자기 행복밖에 모르는 좁은 마음, 한마디로 ‘자기중심’적인 삶의 자세가 바로 불행의 원인입니다.
자기중심은 제멋대로 굴며 편합니다. 다른 사람이야 어떻든 흥미로운 일, 재미있는 일, 이득을 보는 일만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자기중심의 인생은 어떻게 될까요. 인간, 특히 젊은이의 경우는 가장 중요한 것을 잃습니다. 동료의 ‘신뢰’라는 둘도 없는 보물을 말입니다. 수많은 인생을 지켜본 이케다 선생님은 “인생에서도 사회에서도 ‘자기중심’의 마음이 마지막에 이르는 곳은 지옥계입니다.” 하고 결론지었습니다. 지옥계는 ‘살아 있는 것 자체가 괴롭다.’ ‘무엇을 보아도 불행해 보인다.’는 상태입니다.
그렇게 되고 싶지 않아요.
― 좋은 사회를 만들고자 모두가 연대하는 삶은 확실히 힘듭니다. 그러나 다른 사람이나 사회와 ‘연대하는’ 삶을 관철하는 일은 결국 자기중심의 작은 틀을 깨는 일입니다. 인간의 폭이 반드시 넓어집니다. 마음이 강해집니다. 그것을 경애혁명 또는 인간혁명이라고 합니다. 자연히 충실한 인생으로 됩니다.
이케다 선생님은 “자기 혼자만의 행복이 아닙니다. 사회의 평온과 번영을 기원하고 그것을 실현하려고 최선을 다해야 비로소 진실한 행복이 실현됩니다.” 하고 가르치셨습니다.
지금은 ‘자기중심’의 사회일지도 모르겠네요.
― ‘먼저’ 내 주변 친구부터 시작해 보세요. “사회와 함께 어우러지자.”“좋게 만들자.”하고 주장한 만큼 ‘자기중심’이라는 어두운 사회를 밝게 바꿀 수 있습니다. 사회를 가장 밑바닥부터 바꾸는 굉장한 공헌입니다. 시대를 움직이고 있다니, 굉장하지 않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