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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3월호 좌담회어서 홈페이지 강의 원고
관리자
2013-02-25
6,885
2013년 3월 지구좌담회 어서 <삼삼장기우사>
안녕하십니까?
이번달 어서는 <삼삼장기우사>입니다.
이 어서는 대성인이 스루가 지방 후지군의 유력한 문하인 니시야마전에게 주신 편지입니다. 지금까지는 1275년에 집필하신 걸로 알고 있었지만, 1276년일 가능성도 있습니다.
1274년에 몽고내습이 일어나 막부는 2차 내습에 위기감을 느끼고 진언종 등에 조복기도를 실시하게 했습니다.
이 어서에서는 먼저 성불하기 위해서는 선지식이라는 연이 가장 중요한데, 그 선지식을 만나기는 지극히 어렵다고 말씀하십니다.
이어서 선지식인지 악지식인지를 판별하는 데는 현증이 결정적인 증거라고 말씀하십니다. 예로써 중국 진언종의 선무외•금강지•불공 세 사람의 삼장의 기우가 오히려 국토에 재난을 가져온 사실을 들어 진언사를 계속 등용하면 틀림없이 나라가 망한다고 단언하시고 있습니다.
그럼 [본문]을 함께 읽겠습니다.
[ 본 문 ] (어서 1468쪽 1행~2행)
대저 나무를 심는 데는 대풍이 불어도 강한 지주를 세우면 넘어지지 않으나, 본래부터 심어져 있는 나무라 해도 뿌리가 약한 것은 넘어지느니라. 무기력한 자라도 도와주는 자가 강하면 넘어지지 않으나, 조금 다기진 자도 혼자라면 나쁜 길에는 넘어지느니라.
이어서 [통해]를 읽어 드리겠습니다.
[ 통 해 ]
나무를 심는 경우, 거센 바람이 불어도 강한 지주가 있으면 넘어지지 않는다. 본디부터 심어져 있는 나무라도 뿌리가 약하면 넘어진다. 약하고 무기력한 사람이라도 도와주는 사람이 강하면 넘어지지 않는다. 조금 다기진 사람이라도 혼자라면 나쁜 길에서는 넘어지고 만다.
[ 어 서 해 설 ]
이 어서의 뒷부분에서 “부처가 되는 길은 선지식보다 더함은 없느니라.” 하고 말하며, 일생성불을 위해서는 ‘선지식’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가르치시고 있습니다. 이번에 배독할 어서는 ‘나무’와 ‘길을 가는 사람’의 예를 들어 그 사실을 알기 쉽게 가르치고 있습니다. 선지식은 ‘선한 벗’이라는 뜻으로 사람들을 불도로 이끌어주는 존재입니다.
혼자서는 좀처럼 신심을 끝까지 지속할 수 없습니다. 고난과 어려움이 다투어 일어났을 때 옆에서 지탱해주는 존재가 없으면 자신의 나약한 생명에 굴복하여 신심이 정체되고 말기 때문입니다.
이 어서에서 대성인은 그와 마찬가지로 불도수행을 방해하는 장마의 작용을 ‘대풍’과 ‘나쁜 길’에 비유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나무를 심었을 때 거센 바람이 불어도 ‘강한 지주’가 있으면 넘어지지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아무리 험난한 길이라도 ‘도와주는 자’가 강하면 어떤 사람이라도 걸음을 지속할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 선지식은 신심을 격려해주시는 스승과 동지 그리고 광선유포의 조직입니다. 끝까지 선지식을 구하고, 자신도 선지식으로 되는 것이 일생성불의 궤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명심해야 할 점은 어떤 일이 있어도 선지식에서 멀어져서는 안 됩니다. 이 어서에서 ‘본래부터 심어져 있는 나무’나 ‘다기진 자’라도 의지할 데 없는 외톨이가 되면 언젠가는 넘어진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선지식의 모임인 학회와 함께 ‘행복한 안전지대’와 찬란하게 빛나는 선의 연대를 우리 지역에 확대해 나가야겠습니다.
[ 포 인 트 ]
첫째 포인트는 사제가 바로 선지식의 근본이라는 점입니다.
위대한 스승과 만나 사제의 길을 걷는다. 이것이 가장 행복한 궤도라는 점을 가슴에 새겼으면 합니다.
대성인은 말대 악세에 관해 “말대에 있어서 법화경을 믿는 자는 조상의 흙과 같고 법화경을 믿지 않고서 권교에 타락하는 자는 시방의 미진과 같다.”(수호국가론, 64쪽)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많은 제승의 법사가 부처의 법전을 잘못 읽어 사견에 빠집니다. 그것을 감추고 ‘우리가 불법의 스승이다’라고 하며 사람들을 사견으로 속였기 때문입니다. 대성인은 <선시초>에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한토·일본에 지혜가 뛰어나고 재능이 훌륭한 성인은 가끔 있었지만, 아직도 니치렌만큼 법화경의 편이 되어 국토에 강적을 많이 가진 자는 없었느니라. 우선 안전의 사실을 가지고 니치렌은 염부제 제일의 사람이라고 알지어다.” (선시초, 283쪽)
이것은 불법의 깊은 뜻을 가르칠 수 있는 사람은 경문에 비추어 보면 모든 강적과 싸우며 법화경을 몸으로 읽으신 대성인을 제외하고 다른 사람은 없다는 대확신입니다.
그런 대성인과 만났기 때문에 최고의 법인 불법의 지혜를 터득해 절대 승리의 행복한 인생을 걸을 수 있습니다. 이 기쁨과 감사함이 당시 대성인 문하의 가슴에 솟구쳤겠지요.
창가학회 삼대 회장은 현대에 이르러 대성인의 가르침대로 광선유포의 대투쟁을 관철했습니다. 그 사제의 투쟁 덕분에 우리는 불법과 만나 신행학을 깊게 하고 지용의 사명을 자각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광선유포라고 하는 최고로 행복한 길을 걸을 수 있습니다. 이 대은에 감사하고 사제의 길을 꿋꿋이 걷겠다고 새롭게 맹세해야겠습니다.
둘째 포인트는 창가학회가 바로 선지식의 모임입니다.
이케다 선생님은 소설 《신·인간혁명》‘법기’의 장에서 다음과 같이 지도하십니다.
“행복을 구축하려면 학회 조직 속에서 동지와 함께 꿋꿋이 살아가야 합니다. 학회가 현대의 화합승단입니다. 물론 홀로 서는 일은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누군가 해주겠지 하는 마음으로는 광선유포의 길은 열리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외톨이가 되면 안 됩니다.”
“선지식이 되는 선배, 동지와 스크럼을 짜고, 서로 촉발하는 단결의 연대 속에서 신심이 성장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기 바랍니다.”
재력도 지위도 아무것도 없이 고뇌에 울던 서민 한 사람 또 한 사람이 광선유포를 위해 일어섰습니다. 그리고 서로 격려하며 용기와 희망을 품고 인생을 승리의 영관으로 장식했습니다. 이것이 창가학회의 명예로운 역사입니다.
총본부가 건설되는 희망의 망치소리와 함께 2월 투쟁부터 3·16, 4·2, 5·3을 향해 위풍당당하게 내 인생의 승리성, 내 지구의 인재성을 구축해 가야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안녕하십니까?
이번달 어서는 <삼삼장기우사>입니다.
이 어서는 대성인이 스루가 지방 후지군의 유력한 문하인 니시야마전에게 주신 편지입니다. 지금까지는 1275년에 집필하신 걸로 알고 있었지만, 1276년일 가능성도 있습니다.
1274년에 몽고내습이 일어나 막부는 2차 내습에 위기감을 느끼고 진언종 등에 조복기도를 실시하게 했습니다.
이 어서에서는 먼저 성불하기 위해서는 선지식이라는 연이 가장 중요한데, 그 선지식을 만나기는 지극히 어렵다고 말씀하십니다.
이어서 선지식인지 악지식인지를 판별하는 데는 현증이 결정적인 증거라고 말씀하십니다. 예로써 중국 진언종의 선무외•금강지•불공 세 사람의 삼장의 기우가 오히려 국토에 재난을 가져온 사실을 들어 진언사를 계속 등용하면 틀림없이 나라가 망한다고 단언하시고 있습니다.
그럼 [본문]을 함께 읽겠습니다.
[ 본 문 ] (어서 1468쪽 1행~2행)
대저 나무를 심는 데는 대풍이 불어도 강한 지주를 세우면 넘어지지 않으나, 본래부터 심어져 있는 나무라 해도 뿌리가 약한 것은 넘어지느니라. 무기력한 자라도 도와주는 자가 강하면 넘어지지 않으나, 조금 다기진 자도 혼자라면 나쁜 길에는 넘어지느니라.
이어서 [통해]를 읽어 드리겠습니다.
[ 통 해 ]
나무를 심는 경우, 거센 바람이 불어도 강한 지주가 있으면 넘어지지 않는다. 본디부터 심어져 있는 나무라도 뿌리가 약하면 넘어진다. 약하고 무기력한 사람이라도 도와주는 사람이 강하면 넘어지지 않는다. 조금 다기진 사람이라도 혼자라면 나쁜 길에서는 넘어지고 만다.
[ 어 서 해 설 ]
이 어서의 뒷부분에서 “부처가 되는 길은 선지식보다 더함은 없느니라.” 하고 말하며, 일생성불을 위해서는 ‘선지식’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가르치시고 있습니다. 이번에 배독할 어서는 ‘나무’와 ‘길을 가는 사람’의 예를 들어 그 사실을 알기 쉽게 가르치고 있습니다. 선지식은 ‘선한 벗’이라는 뜻으로 사람들을 불도로 이끌어주는 존재입니다.
혼자서는 좀처럼 신심을 끝까지 지속할 수 없습니다. 고난과 어려움이 다투어 일어났을 때 옆에서 지탱해주는 존재가 없으면 자신의 나약한 생명에 굴복하여 신심이 정체되고 말기 때문입니다.
이 어서에서 대성인은 그와 마찬가지로 불도수행을 방해하는 장마의 작용을 ‘대풍’과 ‘나쁜 길’에 비유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나무를 심었을 때 거센 바람이 불어도 ‘강한 지주’가 있으면 넘어지지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아무리 험난한 길이라도 ‘도와주는 자’가 강하면 어떤 사람이라도 걸음을 지속할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 선지식은 신심을 격려해주시는 스승과 동지 그리고 광선유포의 조직입니다. 끝까지 선지식을 구하고, 자신도 선지식으로 되는 것이 일생성불의 궤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명심해야 할 점은 어떤 일이 있어도 선지식에서 멀어져서는 안 됩니다. 이 어서에서 ‘본래부터 심어져 있는 나무’나 ‘다기진 자’라도 의지할 데 없는 외톨이가 되면 언젠가는 넘어진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선지식의 모임인 학회와 함께 ‘행복한 안전지대’와 찬란하게 빛나는 선의 연대를 우리 지역에 확대해 나가야겠습니다.
[ 포 인 트 ]
첫째 포인트는 사제가 바로 선지식의 근본이라는 점입니다.
위대한 스승과 만나 사제의 길을 걷는다. 이것이 가장 행복한 궤도라는 점을 가슴에 새겼으면 합니다.
대성인은 말대 악세에 관해 “말대에 있어서 법화경을 믿는 자는 조상의 흙과 같고 법화경을 믿지 않고서 권교에 타락하는 자는 시방의 미진과 같다.”(수호국가론, 64쪽)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많은 제승의 법사가 부처의 법전을 잘못 읽어 사견에 빠집니다. 그것을 감추고 ‘우리가 불법의 스승이다’라고 하며 사람들을 사견으로 속였기 때문입니다. 대성인은 <선시초>에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한토·일본에 지혜가 뛰어나고 재능이 훌륭한 성인은 가끔 있었지만, 아직도 니치렌만큼 법화경의 편이 되어 국토에 강적을 많이 가진 자는 없었느니라. 우선 안전의 사실을 가지고 니치렌은 염부제 제일의 사람이라고 알지어다.” (선시초, 283쪽)
이것은 불법의 깊은 뜻을 가르칠 수 있는 사람은 경문에 비추어 보면 모든 강적과 싸우며 법화경을 몸으로 읽으신 대성인을 제외하고 다른 사람은 없다는 대확신입니다.
그런 대성인과 만났기 때문에 최고의 법인 불법의 지혜를 터득해 절대 승리의 행복한 인생을 걸을 수 있습니다. 이 기쁨과 감사함이 당시 대성인 문하의 가슴에 솟구쳤겠지요.
창가학회 삼대 회장은 현대에 이르러 대성인의 가르침대로 광선유포의 대투쟁을 관철했습니다. 그 사제의 투쟁 덕분에 우리는 불법과 만나 신행학을 깊게 하고 지용의 사명을 자각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광선유포라고 하는 최고로 행복한 길을 걸을 수 있습니다. 이 대은에 감사하고 사제의 길을 꿋꿋이 걷겠다고 새롭게 맹세해야겠습니다.
둘째 포인트는 창가학회가 바로 선지식의 모임입니다.
이케다 선생님은 소설 《신·인간혁명》‘법기’의 장에서 다음과 같이 지도하십니다.
“행복을 구축하려면 학회 조직 속에서 동지와 함께 꿋꿋이 살아가야 합니다. 학회가 현대의 화합승단입니다. 물론 홀로 서는 일은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누군가 해주겠지 하는 마음으로는 광선유포의 길은 열리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외톨이가 되면 안 됩니다.”
“선지식이 되는 선배, 동지와 스크럼을 짜고, 서로 촉발하는 단결의 연대 속에서 신심이 성장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기 바랍니다.”
재력도 지위도 아무것도 없이 고뇌에 울던 서민 한 사람 또 한 사람이 광선유포를 위해 일어섰습니다. 그리고 서로 격려하며 용기와 희망을 품고 인생을 승리의 영관으로 장식했습니다. 이것이 창가학회의 명예로운 역사입니다.
총본부가 건설되는 희망의 망치소리와 함께 2월 투쟁부터 3·16, 4·2, 5·3을 향해 위풍당당하게 내 인생의 승리성, 내 지구의 인재성을 구축해 가야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