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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12월호 좌담회어서 홈페이지 강의 원고
관리자
2012-11-21
8,598
2012년 12월 반좌담회 어서 <스슌천황어서>
안녕하십니까? 이번달 어서는 <스슌천황어서>입니다.
이 어서는 1277년 9월 11일, 대성인이 미노부에서 가마쿠라에 있는 시조깅고에게 주신 편지입니다. 별명을 <삼종재보어서>라고 합니다.
주군인 에마씨를 절복했기 때문에 노여움을 산 깅고는 같은 해 6월, 구와가야쓰 문답을 계기로 에마씨로부터 신앙을 버리지 않으면 소령을 몰수하겠다는 협박을 받고 가장 큰 어려움에 직면하였습니다.
그러나 그 뒤 에마씨가 전염병으로 쓰러지자 의술에 능통한 깅고가 치료를 맡았습니다. 이 어서는 그 보고에 대한 답서입니다.
먼저 ‘내훈외호’의 법리를 설하시고, 강한 신심에 의해서 제천의 가호가 나타나며 정사는 반드시 밝혀진다는 것을 가르치시고 있습니다.
그리고 동료들의 반감이 더욱 강해져서 깅고의 목숨을 노리는 위험도 있으리라고 꿰뚫어 보신 대성인은 깅고를 위해 자세한 주의를 당부하고 있습니다.
다음에 다쓰노구치 법난에 수행했던 깅고의 신심을 칭찬하시며 인생에서 소중한 것은 ‘마음의 재보’를 쌓는 일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끝으로 스슌천황의 고사를 인용해 인내심 강하게 성실한 행동을 하도록 가르치시며 불교의 궁극은 사람의 행동에 있다는 것을 말씀하시고 이 어서를 끝맺고 있습니다. 그럼 [본문]을 함께 읽겠습니다.
[본문] (어서 1174쪽 14~15행)
일대의 간심은 법화경·법화경의 수행의 간심은 불경품이니라. 불경보살이 사람을 존경한 것은 어떠한 일이뇨, 교주석존의 출세의 본회는 사람의 행동에 있었소이다.
이어서 [통해]를 읽어드리겠습니다.
[통해]
석존일대 설법의 간심은 법화경이며 법화경 수행의 간심은 불경품이다. 불경보살이 사람을 존경한 것은 어떤 뜻인가. 교주석존의 출세의 본회는 사람의 행동에 있었다.
[어구해설]
[불경품]은, 법화경 상불경보살품 제20을 말합니다. 불경보살이 모든 사람에게 불성이 있다며 어떠한 박해를 당해도 ‘나는 그대들을 존경한다. 왜냐하면 그대들은 보살의 수행을 하면 부처가 되기 때문이다.’라는 내용의 이십사문자 법화경을 부르며 어떤 사람에게도 예배했다는 것이 설해져 있습니다.
[어서해설]
불법을 실천하는 가장 중요한 점은 자타 공히 불성을 끝까지 믿고 ‘사람을 존경하는 행동’에 있다고 가르치신 어문입니다.
석존일대의 가르침의 간요는 만인의 성불을 설한 법화경임이 틀림없습니다. 그리고 법화경 수행의 진수는 불경품의 불경보살의 실천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불경보살은 모든 사람에게 불성이 있다고 하여 ‘이십사문자 법화경’을 부르며 사람들을 존경하고 끊임없이 예배했습니다. 결코 사람을 업신여기지 않았으므로 불경보살이라고 부릅니다.
여기에 대해 범부가 부처로 될 리가 없다고 생각한 사람들은 불경보살을 악구매리하며 장목으로 때리거나 기와나 돌맹이를 던지며 박해했습니다. 그러나 불경보살은 예배행을 멈추지 않고 드디어 육근청정의 공덕을 얻어 성불했습니다. 법화경에서는 불경보살을 석존의 과거세 모습이라고 설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사람을 존경하는 행동’에 철저했을 때 숙명전환, 육근청정이라는 생명변혁을 이루는 힘이 됩니다. 법화홍통의 행동을 관철함으로써 성불이라는 근본적인 승리를 성취할 수 있습니다.
‘만인존경’이라는 불경보살의 행동은 ‘만인성불’이라는 부처의 진의를 설한 법화경의 사상을 체현한 것입니다. 그리고 ‘사람을 존경하는 행동’은 한 인간이 성불하기 위해 불가결한 실천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교주석존의 출세의 본회’는 ‘사람의 행동’이라고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인간멸시’ ‘생명경시’의 불신과 불안이 소용돌이치는 말법에 ‘인간존엄’ ‘생명존중’의 깃발을 내걸고 벗과 대화하며 불연을 맺어 나가는 우리 행동 그 자체가 불법의 본디 뜻에 들어맞는 실천입니다.
[포인트]
첫째 포인트는, 용기와 강한 인내심을 지니고 모든 사람들과 대화를 거듭해 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입니다.
불경보살은 어떠한 사람에게도 불성이 있다고 믿고 만나는 모든 사람에게 말을 건넸습니다.
그 결과 거만한 사람들은 불경보살에게 욕설을 퍼붓고 돌을 던지거나 몽둥이로 때리는 등 박해를 가했습니다. 그러나 불경보살은 결코 예배행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어디까지나 용기 내어 계속해서 수행했습니다.
그리고 불경보살의 실천은 현실적으로 지혜를 발휘했는데, 예를 들면 사람들이 던지는 돌이나 기와를 맞을 때도 단지 맞고 있는 것이 아니라 잠시 멀리 달아나기도 합니다. 그리고 멀리서 “나는 당신들을 경시하지 않습니다”라고 외쳤다고 법화경에는 씌어 있습니다.
이를 통해 우리는 어떠한 박해도 굴하지 않는 용기와 현실 상황에 대응하며 실천을 관철하는 지혜와 유연함 그리고 강한 인내심을 배울 수 있습니다.
둘째 포인트는, 깊은 기원과 성실한 실천이 상대의 마음을 바꿀 수 있다는 점입니다.
니치렌 대성인은 <어의구전>에서 불경보살의 실천을
“불경보살이 사중을 예배하면 상만의 사중소구의 불성 또한 불경보살을 예배하느니라. 거울을 보고 예배할 때 떠오른 그림자 또한 나를 예배하느니라.”(어서 769쪽)고 말씀하십니다.
‘상만의 사중’이란 거만한 출가와 재가의 남녀를 말하는데, 표면적으로는 불경보살에게 욕설을 퍼붓고 박해를 가하지만 실은 그 불성은 불경보살에게 예배한다는 말씀입니다.
상대에게 어디까지나 성실하게 존경과 진심을 담아 대화하면 그 마음은 반드시 전해집니다.
깊은 기원은 틀림없이 상대의 마음에 전해져 마음을 움직이게 합니다.
이케다 선생님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어디까지나 ‘성의’입니다.
전심전력을 다하는 ‘정열’입니다.
한결 같은 ‘진지함’입니다. 그 근본은 ‘용기’입니다.
그래야 비로소 사람들의 마음을 크게 움직일 수 있습니다.”
셋째 포인트는, 불도수행의 공덕이 얼마나 큰가라는 점입니다.
법화경에는 불경보살이 한결같이 실천을 관철한 결과 육근청정의 공덕을 얻었다고 씌어 있습니다.
생명 전체의 작용이 강해지고 무엇을 봐도 기쁘고 무엇을 해도 즐겁습니다. 이를 현대적으로 말하면 경애 혁명이며 인간혁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른 누군가가 아닙니다. 니치렌 대성인과 똑같은 마음으로 광선유포를 위해 살아가는 SGI회원이 바로 현대의 불경보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날마다 우인이 있는 곳으로 발걸음을 옮기고 불법의 정의를 이야기하는 이 절대로 포기하지 않는 행동이 얼마나 위대하고 그 공덕이 얼마나 큰가.
우리는 깊은 긍지와 확신을 지니고 불경보살의 불굴의 정신으로 오늘도 희망 대화에 도전해 가야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안녕하십니까? 이번달 어서는 <스슌천황어서>입니다.
이 어서는 1277년 9월 11일, 대성인이 미노부에서 가마쿠라에 있는 시조깅고에게 주신 편지입니다. 별명을 <삼종재보어서>라고 합니다.
주군인 에마씨를 절복했기 때문에 노여움을 산 깅고는 같은 해 6월, 구와가야쓰 문답을 계기로 에마씨로부터 신앙을 버리지 않으면 소령을 몰수하겠다는 협박을 받고 가장 큰 어려움에 직면하였습니다.
그러나 그 뒤 에마씨가 전염병으로 쓰러지자 의술에 능통한 깅고가 치료를 맡았습니다. 이 어서는 그 보고에 대한 답서입니다.
먼저 ‘내훈외호’의 법리를 설하시고, 강한 신심에 의해서 제천의 가호가 나타나며 정사는 반드시 밝혀진다는 것을 가르치시고 있습니다.
그리고 동료들의 반감이 더욱 강해져서 깅고의 목숨을 노리는 위험도 있으리라고 꿰뚫어 보신 대성인은 깅고를 위해 자세한 주의를 당부하고 있습니다.
다음에 다쓰노구치 법난에 수행했던 깅고의 신심을 칭찬하시며 인생에서 소중한 것은 ‘마음의 재보’를 쌓는 일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끝으로 스슌천황의 고사를 인용해 인내심 강하게 성실한 행동을 하도록 가르치시며 불교의 궁극은 사람의 행동에 있다는 것을 말씀하시고 이 어서를 끝맺고 있습니다. 그럼 [본문]을 함께 읽겠습니다.
[본문] (어서 1174쪽 14~15행)
일대의 간심은 법화경·법화경의 수행의 간심은 불경품이니라. 불경보살이 사람을 존경한 것은 어떠한 일이뇨, 교주석존의 출세의 본회는 사람의 행동에 있었소이다.
이어서 [통해]를 읽어드리겠습니다.
[통해]
석존일대 설법의 간심은 법화경이며 법화경 수행의 간심은 불경품이다. 불경보살이 사람을 존경한 것은 어떤 뜻인가. 교주석존의 출세의 본회는 사람의 행동에 있었다.
[어구해설]
[불경품]은, 법화경 상불경보살품 제20을 말합니다. 불경보살이 모든 사람에게 불성이 있다며 어떠한 박해를 당해도 ‘나는 그대들을 존경한다. 왜냐하면 그대들은 보살의 수행을 하면 부처가 되기 때문이다.’라는 내용의 이십사문자 법화경을 부르며 어떤 사람에게도 예배했다는 것이 설해져 있습니다.
[어서해설]
불법을 실천하는 가장 중요한 점은 자타 공히 불성을 끝까지 믿고 ‘사람을 존경하는 행동’에 있다고 가르치신 어문입니다.
석존일대의 가르침의 간요는 만인의 성불을 설한 법화경임이 틀림없습니다. 그리고 법화경 수행의 진수는 불경품의 불경보살의 실천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불경보살은 모든 사람에게 불성이 있다고 하여 ‘이십사문자 법화경’을 부르며 사람들을 존경하고 끊임없이 예배했습니다. 결코 사람을 업신여기지 않았으므로 불경보살이라고 부릅니다.
여기에 대해 범부가 부처로 될 리가 없다고 생각한 사람들은 불경보살을 악구매리하며 장목으로 때리거나 기와나 돌맹이를 던지며 박해했습니다. 그러나 불경보살은 예배행을 멈추지 않고 드디어 육근청정의 공덕을 얻어 성불했습니다. 법화경에서는 불경보살을 석존의 과거세 모습이라고 설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사람을 존경하는 행동’에 철저했을 때 숙명전환, 육근청정이라는 생명변혁을 이루는 힘이 됩니다. 법화홍통의 행동을 관철함으로써 성불이라는 근본적인 승리를 성취할 수 있습니다.
‘만인존경’이라는 불경보살의 행동은 ‘만인성불’이라는 부처의 진의를 설한 법화경의 사상을 체현한 것입니다. 그리고 ‘사람을 존경하는 행동’은 한 인간이 성불하기 위해 불가결한 실천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교주석존의 출세의 본회’는 ‘사람의 행동’이라고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인간멸시’ ‘생명경시’의 불신과 불안이 소용돌이치는 말법에 ‘인간존엄’ ‘생명존중’의 깃발을 내걸고 벗과 대화하며 불연을 맺어 나가는 우리 행동 그 자체가 불법의 본디 뜻에 들어맞는 실천입니다.
[포인트]
첫째 포인트는, 용기와 강한 인내심을 지니고 모든 사람들과 대화를 거듭해 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입니다.
불경보살은 어떠한 사람에게도 불성이 있다고 믿고 만나는 모든 사람에게 말을 건넸습니다.
그 결과 거만한 사람들은 불경보살에게 욕설을 퍼붓고 돌을 던지거나 몽둥이로 때리는 등 박해를 가했습니다. 그러나 불경보살은 결코 예배행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어디까지나 용기 내어 계속해서 수행했습니다.
그리고 불경보살의 실천은 현실적으로 지혜를 발휘했는데, 예를 들면 사람들이 던지는 돌이나 기와를 맞을 때도 단지 맞고 있는 것이 아니라 잠시 멀리 달아나기도 합니다. 그리고 멀리서 “나는 당신들을 경시하지 않습니다”라고 외쳤다고 법화경에는 씌어 있습니다.
이를 통해 우리는 어떠한 박해도 굴하지 않는 용기와 현실 상황에 대응하며 실천을 관철하는 지혜와 유연함 그리고 강한 인내심을 배울 수 있습니다.
둘째 포인트는, 깊은 기원과 성실한 실천이 상대의 마음을 바꿀 수 있다는 점입니다.
니치렌 대성인은 <어의구전>에서 불경보살의 실천을
“불경보살이 사중을 예배하면 상만의 사중소구의 불성 또한 불경보살을 예배하느니라. 거울을 보고 예배할 때 떠오른 그림자 또한 나를 예배하느니라.”(어서 769쪽)고 말씀하십니다.
‘상만의 사중’이란 거만한 출가와 재가의 남녀를 말하는데, 표면적으로는 불경보살에게 욕설을 퍼붓고 박해를 가하지만 실은 그 불성은 불경보살에게 예배한다는 말씀입니다.
상대에게 어디까지나 성실하게 존경과 진심을 담아 대화하면 그 마음은 반드시 전해집니다.
깊은 기원은 틀림없이 상대의 마음에 전해져 마음을 움직이게 합니다.
이케다 선생님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어디까지나 ‘성의’입니다.
전심전력을 다하는 ‘정열’입니다.
한결 같은 ‘진지함’입니다. 그 근본은 ‘용기’입니다.
그래야 비로소 사람들의 마음을 크게 움직일 수 있습니다.”
셋째 포인트는, 불도수행의 공덕이 얼마나 큰가라는 점입니다.
법화경에는 불경보살이 한결같이 실천을 관철한 결과 육근청정의 공덕을 얻었다고 씌어 있습니다.
생명 전체의 작용이 강해지고 무엇을 봐도 기쁘고 무엇을 해도 즐겁습니다. 이를 현대적으로 말하면 경애 혁명이며 인간혁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른 누군가가 아닙니다. 니치렌 대성인과 똑같은 마음으로 광선유포를 위해 살아가는 SGI회원이 바로 현대의 불경보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날마다 우인이 있는 곳으로 발걸음을 옮기고 불법의 정의를 이야기하는 이 절대로 포기하지 않는 행동이 얼마나 위대하고 그 공덕이 얼마나 큰가.
우리는 깊은 긍지와 확신을 지니고 불경보살의 불굴의 정신으로 오늘도 희망 대화에 도전해 가야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