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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10월호 좌담회어서 - 법련 내용과 동일
관리자
2012-09-24
8,307
2012-10월 좌담회 어서
난조전답서
[배경과 대의]
이 어서는 병에 걸렸다는 보고와 함께 보내온 진심 어린 공양에 대한 답변으로, 니치렌대성인이 1281년 9월 미노부에서 쓰신 편지입니다.
스루가 지방(시즈오카현)의 문하 난조도키미쓰나 난조 집안의 누군가에게 보냈다고 추정할 뿐 상세한 내용은 확실하지 않습니다.
대성인은 이 어서에서 석존에게 흙떡을 공양해 아육(아소카) 대왕으로 태어난 덕승동자의 예를 들며, ‘말법의 법화경(法華經) 행자(行者)’에게 공양하는 공덕이 석존에게 공양하는 공덕보다 백천만억배 더 뛰어나다는 법화경의 내용을 토대로 가르치십니다.
또 성불(成佛)의 근본 법인 묘법(妙法)을 수지한 대성인이 계신 곳은 “법이 묘하기 때문에 사람이 존귀하고, 사람이 존귀하기 때문에 주처(住處)가 존귀하다.”(어서 1578쪽)라는 원리에 비춰, 영산정토에 뒤지지 않는 존귀한 장소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하루빨리 병이 나아 다시 만나기를 바란다며 격려하십니다.
[본문] 난조전답서 어서전집 1578쪽 5행~8행
석가불은 나를 무량의 진보로써 억겁 동안 공양함보다는, 말대의 법화경의 행자를 하루일지라도 공양하는 공덕은 백천만억배 뛰어나리라고 설하셨는데, 법화경의 행자를 마음에 간직하고 수년 동안이나 공양하신 것은 진귀한 마음씨로다. 금언과 같다면 틀림없이 후생은 영산정토에 태어나실 뛰어난 과보로다.
[통 해]
석존은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진귀한 보물을 억겁이라는 오랜 기간 동안 나에게 공양하는 공덕보다, 말법의 법화경 행자를 하루라도 공양하는 공덕이 백천만억배나 더 뛰어나다.”고 설했습니다. 그러므로 (당신이) 법화경 행자인 나(니치렌)를 믿고 지난 수년 동안 공양하신 일은 이 얼마나 거룩한 마음입니까. 이 금언(부처의 말)과 같다면 반드시 내세에는 영산정토에 태어납니다. 이 얼마나 훌륭한 과보입니까.
[어 구 해 설]
억겁(億劫)_ 매우 장원(長遠)한 시간. ‘겁’은 긴 시간을 나타내는 말.
법화경(法華經)의 행자(行者)_ 법화경에서 설한 대로 법화경을 몸으로 실천하고 세상에 널리 알리는 사람. 대난을 받아도 법화경을 실천하는 사람.
영산정토(靈山淨土)_ 부처가 사는 청정한 국토를 말한다. ‘영산’은 영취산을 말하며 석존이 법화경을 설한 장소. ‘정토’는 중생이 사는 국토(예토)에 상대하는 말.
과보(果報)_ 과거세에 쌓은 인(因)에 따른 결과, 응보(應報).
[포인트 강의]
위대한 서원의 인생이 행복
‘마음’은 광대합니다. ‘마음’은 심원합니다.
불법(佛法)에서는 “마음만이 중요하니라.”(어서 1192쪽)고 설합니다. 스승과 함께 투쟁하자! 동지에게 진력하자! 광선유포라는 위대한 구상을 실현하자! 이런 강한 ‘마음’으로 투쟁하면 그곳에 무량무변한 공덕이 가득 찹니다.
대성인은 이 어서에서 덕승동자가 석존에게 흙떡을 공양한 ‘진심’으로 아육(아소카) 대왕으로 태어난 예를 소개하고, 석존이 “내게 무량의 보물을 억겁 동안 공양하는 공덕보다 하루라도 말법의 법화경 행자에게 공양하는 공덕이 백천만억 배 더 뛰어나다.”고 설했다고 법화경 <법사품>의 글을 인용해 말씀하셨습니다.
말법(末法)은 석존 재세 때보다 훨씬 격심한 대난이 덮쳐오는 시대입니다. 이 말법에 모든 중생을 근본에서 구하는 광선유포(廣宣流布)라는 ‘대서원(大誓願)’을 관철하는 사람이 말법의 법화경 행자입니다. 말법의 법화경 행자에게 공양하면 이 ‘대서원’에 참여하게 되며 ‘대서원’을 지탱하고 돕는 일이 됩니다.
따라서 무량무변한 대공덕을 받을 수 있습니다. 실제로 이 어서를 쓰실 당시 대성인 문하는 수년 동안 여러 가지 면에서 고난에 직면해 있었습니다.
1279년 아쓰하라 법난의 불기운이 채 가시기도 전에 권력의 압박이 이어졌습니다. 역병이 계속 돌고 기근도 이어져 경제적으로 궁핍했습니다. 그렇지만 이 어서를 받은 제자는 지난 수년 동안 스승을 생각하고 스승을 떠받들었습니다.
대성인은 그 ‘마음’을 찬탄하고 내세에 반드시 영산정토에 태어난다며 삼세 영원한 행복을 약속하셨습니다.
이케다 SGI 회장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말법에서 대성인 말씀대로 세계 광선유포를 수행하는 단체는 유일하게 창가학회뿐입니다. 어서에 비춰 창가학회를 위해 진심을 다하는 동지의 공덕은 헤아릴 수 없습니다. 모두 자기 마음속에 크나큰 복운으로 쌓여, 한집안이 미래 영원토록 승리하고 번영하는 원천이 된다고 확신합니다.”
자, 위대한 서원과 공덕의 인생을 향해 새롭게 출발합시다.
[신입회원과 함께 하는 좌담회 어서]
감사하는 마음
니치렌대성인에게 여러 가지 공양을 보냈다는데, 혹시 대성인이 문하에게 공양을 보내도록 가르치지는 않았습니까?
아닙니다. 공양은 어디까지나 문하 한사람 한사람의 진심에서 우러나서 한 자발적인 행동입니다. 남이 시켜서 한 일이 아닙니다.
공양할 물품을 준비하고 그것을 운반하려면 경제적으로 어려웠을 텐데요. 어떻게 문하들이 자발적으로 공양했을까요?
생활도 어려웠는데 문하는 왜 공양을 했는가. 결론부터 말하면 문하의 마음에 니치렌대성인에게 ‘감사하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대성인이 쓰신 편지를 읽으면 알 수 있지만, 대성인은 문하 한사람 한사람의 성격이나 처지 등을 알고 ‘이 정도까지’라고 생각할 정도로 매우 세세하게 격려하셨습니다.
문하 중에는 대성인과 만나기 전에는 불행의 늪에 빠져 괴로워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나 같은 인간은 살 필요가 없어!’ 하고 생각한 사람도 있었을 테지요. 그런 사람이 대성인과 만난 후 인생에 희망을 발견하고 신심으로 인생을 열자고 힘차게 일어설 수 있었습니다.
니치렌대성인의 인품에 모두 감동했다는 말이군요.
그렇습니다. 그러나 단지 인품만이 아닙니다. 대성인이 나타내신 묘법(妙法)에 고마워하는 마음도 있었습니다. 묘법은 반드시 행복해지는 법이며 반드시 성불할 수 있는 법입니다.
그런 묘법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그것도 대성인이 오로지 묘법 유포의 투쟁에 엄연히 일어서 목숨을 걸고 길을 열어주셨기 때문입니다.
만일 위대한 묘법과 위대한 스승을 만나지 못하고 일생을 마쳤더라면 얼마나 후회를 남기는 인생이 되었을지.
그런 마음이 감사가 되어 공양이라는 형태로 나타났습니다.
니치렌대성인은 그 공양을 어떤 마음으로 받아들였습니까?
대성인은 그런 문하의 어려움, 진심을 누구보다 깊이 이해하고 소중히 여기셨습니다. 쌀을 보낸 문하에게 “백미(白米)는 백미가 아니라 즉 목숨이니라.”(어서 1597쪽)고 하셨습니다.
‘당신이 보낸 백미는 백미가 아닙니다. 당신의 목숨입니다. 그런 마음으로 나는 소중히 받았습니다.’ 대성인은 이런 마음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진심에는 더 큰 진심으로, 감사하는 마음에는 더 큰 감사한 마음을 담아 응한다. 이것이 불법의 세계이며 사제의 세계입니다.
‘스승 덕분에 지금의 내가 있을 수 있다.’라고 진심으로 감사하는 마음…. 인간으로서 이토록 아름다운 마음은 없지 않을까요.
난조전답서
[배경과 대의]
이 어서는 병에 걸렸다는 보고와 함께 보내온 진심 어린 공양에 대한 답변으로, 니치렌대성인이 1281년 9월 미노부에서 쓰신 편지입니다.
스루가 지방(시즈오카현)의 문하 난조도키미쓰나 난조 집안의 누군가에게 보냈다고 추정할 뿐 상세한 내용은 확실하지 않습니다.
대성인은 이 어서에서 석존에게 흙떡을 공양해 아육(아소카) 대왕으로 태어난 덕승동자의 예를 들며, ‘말법의 법화경(法華經) 행자(行者)’에게 공양하는 공덕이 석존에게 공양하는 공덕보다 백천만억배 더 뛰어나다는 법화경의 내용을 토대로 가르치십니다.
또 성불(成佛)의 근본 법인 묘법(妙法)을 수지한 대성인이 계신 곳은 “법이 묘하기 때문에 사람이 존귀하고, 사람이 존귀하기 때문에 주처(住處)가 존귀하다.”(어서 1578쪽)라는 원리에 비춰, 영산정토에 뒤지지 않는 존귀한 장소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하루빨리 병이 나아 다시 만나기를 바란다며 격려하십니다.
[본문] 난조전답서 어서전집 1578쪽 5행~8행
석가불은 나를 무량의 진보로써 억겁 동안 공양함보다는, 말대의 법화경의 행자를 하루일지라도 공양하는 공덕은 백천만억배 뛰어나리라고 설하셨는데, 법화경의 행자를 마음에 간직하고 수년 동안이나 공양하신 것은 진귀한 마음씨로다. 금언과 같다면 틀림없이 후생은 영산정토에 태어나실 뛰어난 과보로다.
[통 해]
석존은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진귀한 보물을 억겁이라는 오랜 기간 동안 나에게 공양하는 공덕보다, 말법의 법화경 행자를 하루라도 공양하는 공덕이 백천만억배나 더 뛰어나다.”고 설했습니다. 그러므로 (당신이) 법화경 행자인 나(니치렌)를 믿고 지난 수년 동안 공양하신 일은 이 얼마나 거룩한 마음입니까. 이 금언(부처의 말)과 같다면 반드시 내세에는 영산정토에 태어납니다. 이 얼마나 훌륭한 과보입니까.
[어 구 해 설]
억겁(億劫)_ 매우 장원(長遠)한 시간. ‘겁’은 긴 시간을 나타내는 말.
법화경(法華經)의 행자(行者)_ 법화경에서 설한 대로 법화경을 몸으로 실천하고 세상에 널리 알리는 사람. 대난을 받아도 법화경을 실천하는 사람.
영산정토(靈山淨土)_ 부처가 사는 청정한 국토를 말한다. ‘영산’은 영취산을 말하며 석존이 법화경을 설한 장소. ‘정토’는 중생이 사는 국토(예토)에 상대하는 말.
과보(果報)_ 과거세에 쌓은 인(因)에 따른 결과, 응보(應報).
[포인트 강의]
위대한 서원의 인생이 행복
‘마음’은 광대합니다. ‘마음’은 심원합니다.
불법(佛法)에서는 “마음만이 중요하니라.”(어서 1192쪽)고 설합니다. 스승과 함께 투쟁하자! 동지에게 진력하자! 광선유포라는 위대한 구상을 실현하자! 이런 강한 ‘마음’으로 투쟁하면 그곳에 무량무변한 공덕이 가득 찹니다.
대성인은 이 어서에서 덕승동자가 석존에게 흙떡을 공양한 ‘진심’으로 아육(아소카) 대왕으로 태어난 예를 소개하고, 석존이 “내게 무량의 보물을 억겁 동안 공양하는 공덕보다 하루라도 말법의 법화경 행자에게 공양하는 공덕이 백천만억 배 더 뛰어나다.”고 설했다고 법화경 <법사품>의 글을 인용해 말씀하셨습니다.
말법(末法)은 석존 재세 때보다 훨씬 격심한 대난이 덮쳐오는 시대입니다. 이 말법에 모든 중생을 근본에서 구하는 광선유포(廣宣流布)라는 ‘대서원(大誓願)’을 관철하는 사람이 말법의 법화경 행자입니다. 말법의 법화경 행자에게 공양하면 이 ‘대서원’에 참여하게 되며 ‘대서원’을 지탱하고 돕는 일이 됩니다.
따라서 무량무변한 대공덕을 받을 수 있습니다. 실제로 이 어서를 쓰실 당시 대성인 문하는 수년 동안 여러 가지 면에서 고난에 직면해 있었습니다.
1279년 아쓰하라 법난의 불기운이 채 가시기도 전에 권력의 압박이 이어졌습니다. 역병이 계속 돌고 기근도 이어져 경제적으로 궁핍했습니다. 그렇지만 이 어서를 받은 제자는 지난 수년 동안 스승을 생각하고 스승을 떠받들었습니다.
대성인은 그 ‘마음’을 찬탄하고 내세에 반드시 영산정토에 태어난다며 삼세 영원한 행복을 약속하셨습니다.
이케다 SGI 회장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말법에서 대성인 말씀대로 세계 광선유포를 수행하는 단체는 유일하게 창가학회뿐입니다. 어서에 비춰 창가학회를 위해 진심을 다하는 동지의 공덕은 헤아릴 수 없습니다. 모두 자기 마음속에 크나큰 복운으로 쌓여, 한집안이 미래 영원토록 승리하고 번영하는 원천이 된다고 확신합니다.”
자, 위대한 서원과 공덕의 인생을 향해 새롭게 출발합시다.
[신입회원과 함께 하는 좌담회 어서]
감사하는 마음
니치렌대성인에게 여러 가지 공양을 보냈다는데, 혹시 대성인이 문하에게 공양을 보내도록 가르치지는 않았습니까?
아닙니다. 공양은 어디까지나 문하 한사람 한사람의 진심에서 우러나서 한 자발적인 행동입니다. 남이 시켜서 한 일이 아닙니다.
공양할 물품을 준비하고 그것을 운반하려면 경제적으로 어려웠을 텐데요. 어떻게 문하들이 자발적으로 공양했을까요?
생활도 어려웠는데 문하는 왜 공양을 했는가. 결론부터 말하면 문하의 마음에 니치렌대성인에게 ‘감사하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대성인이 쓰신 편지를 읽으면 알 수 있지만, 대성인은 문하 한사람 한사람의 성격이나 처지 등을 알고 ‘이 정도까지’라고 생각할 정도로 매우 세세하게 격려하셨습니다.
문하 중에는 대성인과 만나기 전에는 불행의 늪에 빠져 괴로워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나 같은 인간은 살 필요가 없어!’ 하고 생각한 사람도 있었을 테지요. 그런 사람이 대성인과 만난 후 인생에 희망을 발견하고 신심으로 인생을 열자고 힘차게 일어설 수 있었습니다.
니치렌대성인의 인품에 모두 감동했다는 말이군요.
그렇습니다. 그러나 단지 인품만이 아닙니다. 대성인이 나타내신 묘법(妙法)에 고마워하는 마음도 있었습니다. 묘법은 반드시 행복해지는 법이며 반드시 성불할 수 있는 법입니다.
그런 묘법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그것도 대성인이 오로지 묘법 유포의 투쟁에 엄연히 일어서 목숨을 걸고 길을 열어주셨기 때문입니다.
만일 위대한 묘법과 위대한 스승을 만나지 못하고 일생을 마쳤더라면 얼마나 후회를 남기는 인생이 되었을지.
그런 마음이 감사가 되어 공양이라는 형태로 나타났습니다.
니치렌대성인은 그 공양을 어떤 마음으로 받아들였습니까?
대성인은 그런 문하의 어려움, 진심을 누구보다 깊이 이해하고 소중히 여기셨습니다. 쌀을 보낸 문하에게 “백미(白米)는 백미가 아니라 즉 목숨이니라.”(어서 1597쪽)고 하셨습니다.
‘당신이 보낸 백미는 백미가 아닙니다. 당신의 목숨입니다. 그런 마음으로 나는 소중히 받았습니다.’ 대성인은 이런 마음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진심에는 더 큰 진심으로, 감사하는 마음에는 더 큰 감사한 마음을 담아 응한다. 이것이 불법의 세계이며 사제의 세계입니다.
‘스승 덕분에 지금의 내가 있을 수 있다.’라고 진심으로 감사하는 마음…. 인간으로서 이토록 아름다운 마음은 없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