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SGI 소식
창가의 좌담회에는 벗의 희망의 꽃,
행복의 꽃, 평화의 꽃, 우정의 꽃,
승리의 꽃이 활짝 피어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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톱클래스·마이더스·월간중앙 9월호 이케다 SGI 회장 칼럼 게재
관리자
2016-08-29
5,919
이케다 SGI 회장 연재 칼럼 ‘미래를 위한 제언’이 톱클래스(조선뉴스프레스) 9월호에 게재됐다.
생명 존엄을 위협하고 인간답게 사는 데 필요한 권리와 자유를 누릴 수 없게 만드는 빈곤. 빈곤은 가장 시급하게 해결해야 할 인권문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케말 데르비슈 유엔개발계획(UNDP) 前총재는 “서로 의존하는 세계에서 우리가 공유하는 번영과 집단적 안전보장은 빈곤과 싸워 이길 수 있는가 없는가에 달렸다”고 강하게 호소했다.
이케다 SGI 회장은 많은 자원을 소비하며 풍요롭게 사는 일부 사람들의 그늘에서 세계의 많은 사람이 굶주림에 허덕이며 인간 존엄을 침해당하는 현실을 안타까워하며, 누구나 혼자서 살 수 없기에 우리는 서로 깊이 연관돼 있다는 ‘세계시민’ 의식을 가져야 한다고 말한다.
SGI 회장의 ‘지구는 아름답다’ 32번째 글이 마이더스(연합뉴스 동북아센터) 9월호에 실렸다.
도시의 반을 아시아라고 부르고 반을 유럽이라고 부르는 터키의 이스탄불. 약 700미터 폭의 보스포루스해협을 경계로 유럽과 아시아가 나뉘는 모습에 SGI 회장은 ‘차이’란 것은 실제로 이렇게 사소한 것일지도 모른다고 느낀다.
‘예로부터 사람들은 이스탄불을 찾아왔다. 사막을 지나 산맥을 넘고 거친 파도 헤치며 물건과 정보를 가져오는 사람들의 발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고난 속에서도 내일은 반드시 좋은 일이 생길 거야 하고 희망을 불태우며 계속 걸어온 서민의 힘이 바로 이스탄불에 넘치는 활력의 원천일 것’이라고 SGI 회장은 말한다.
SGI 회장 칼럼이 월간중앙(중앙일보시사미디어) 9월호에 게재됐다.
현대 중국화의 거장 팡자오린 화백은 열한 살 때 아버지를 잃고, 서른여섯 살 때 남편이 세상을 떠난다. 바다와 같이 깊은 공허함이 엄습해 왔을 때, 그는 과거에 얽매이지 않고 자신만의 길을 관철하며 앞으로 나아갔다. 어떠한 때도 ‘마음’에 지지 않았던 팡 화백은 화가로서 예술의 역사에 길이 남을 업적을 세우고, 자식도 훌륭하게 성장시켰다.
SGI 회장은 1996년 3월 ‘홍콩대학교 명예박사 학위’ 수여식에서 팡자오린 화백과 만난 첫 만남을 “(여사는) 파란만장한 세월을 갈고 닦아 세공한 보석 같은 생명이었다”라고 회상하며, 팡 화백의 인생은 영원한 젊음을 상징하는 모범을 보여줬다고 상찬한다.
생명 존엄을 위협하고 인간답게 사는 데 필요한 권리와 자유를 누릴 수 없게 만드는 빈곤. 빈곤은 가장 시급하게 해결해야 할 인권문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케말 데르비슈 유엔개발계획(UNDP) 前총재는 “서로 의존하는 세계에서 우리가 공유하는 번영과 집단적 안전보장은 빈곤과 싸워 이길 수 있는가 없는가에 달렸다”고 강하게 호소했다.
이케다 SGI 회장은 많은 자원을 소비하며 풍요롭게 사는 일부 사람들의 그늘에서 세계의 많은 사람이 굶주림에 허덕이며 인간 존엄을 침해당하는 현실을 안타까워하며, 누구나 혼자서 살 수 없기에 우리는 서로 깊이 연관돼 있다는 ‘세계시민’ 의식을 가져야 한다고 말한다.
SGI 회장의 ‘지구는 아름답다’ 32번째 글이 마이더스(연합뉴스 동북아센터) 9월호에 실렸다.
도시의 반을 아시아라고 부르고 반을 유럽이라고 부르는 터키의 이스탄불. 약 700미터 폭의 보스포루스해협을 경계로 유럽과 아시아가 나뉘는 모습에 SGI 회장은 ‘차이’란 것은 실제로 이렇게 사소한 것일지도 모른다고 느낀다.
‘예로부터 사람들은 이스탄불을 찾아왔다. 사막을 지나 산맥을 넘고 거친 파도 헤치며 물건과 정보를 가져오는 사람들의 발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고난 속에서도 내일은 반드시 좋은 일이 생길 거야 하고 희망을 불태우며 계속 걸어온 서민의 힘이 바로 이스탄불에 넘치는 활력의 원천일 것’이라고 SGI 회장은 말한다.
SGI 회장 칼럼이 월간중앙(중앙일보시사미디어) 9월호에 게재됐다.
현대 중국화의 거장 팡자오린 화백은 열한 살 때 아버지를 잃고, 서른여섯 살 때 남편이 세상을 떠난다. 바다와 같이 깊은 공허함이 엄습해 왔을 때, 그는 과거에 얽매이지 않고 자신만의 길을 관철하며 앞으로 나아갔다. 어떠한 때도 ‘마음’에 지지 않았던 팡 화백은 화가로서 예술의 역사에 길이 남을 업적을 세우고, 자식도 훌륭하게 성장시켰다.
SGI 회장은 1996년 3월 ‘홍콩대학교 명예박사 학위’ 수여식에서 팡자오린 화백과 만난 첫 만남을 “(여사는) 파란만장한 세월을 갈고 닦아 세공한 보석 같은 생명이었다”라고 회상하며, 팡 화백의 인생은 영원한 젊음을 상징하는 모범을 보여줬다고 상찬한다.
김대현(kimdh@) | 화광신문 : 16/08/26 1177호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