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원서비스 한국SGI는 불법(佛法)의 인간주의를 바탕으로 한 사람 한 사람의 행복한 생활을 추구하고 평화·문화·교육운동과 사회공헌 활동을 활발히 펼치고 있습니다.

한국 SGI 소식

창가의 좌담회에는 벗의 희망의 꽃,
행복의 꽃, 평화의 꽃, 우정의 꽃,
승리의 꽃이 활짝 피어납니다.

  • 북한대학원大 이케다 SGI 회장 ‘명예석좌교수’ 수여사 및 답사

  • 관리자

  • 2015-05-12

  • 4,577

어디까지나 서민과 함께 인간을 위해! 미래를 위해! 정의를 위해!



<송민순 북한대학원대학교 총장 수여사>



- 이케다 박사의 경륜은 한일 공동의 미래 여는 큰 자산

바쁘신 가운데도 SGI 이케다 다이사쿠 회장님의 명예석좌교수 임명을 축하하기 위해 참석해 주신 내외 귀빈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소카대학교 창립자인 이케다 박사님은 인간주의 교육과 한일 우호 증진을 위해 민간 차원의 교류를 오랜 기간 전개해 오시고, 또 한일 간의 올바른 역사관 정립을 위해 깊이 활동해 오셨습니다. 저는 특히, 북한대학원대학교 설립자이고 경남대학교를 이끌고 계시는 박재규 총장님으로부터 이케다 박사님의 업적에 대해 많은 말씀을 들었습니다.

무엇보다 이케다 박사님은 한반도와 세계 평화를 위해서 많은 활동을 펼쳐오셨습니다. 1985년 처음 한반도 평화정착을 위해 남북의 최고 책임자가 만나 솔직한 대화를 나누는 ‘남북 정상회담’을 제안하셨습니다. 이후 매년 ‘남북 정상 회담’ ‘이산가족 상봉’ ‘비무장지대 평화적 이용’ 등을 주창하여 통일 시대 준비에 필요한 한반도의 화해 기류를 만드는데 크게 기여하였고, 국내외로부터 커다란 공감을 얻고 있습니다. 이런 공적을 인정받아 2009년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화관문화훈장을 수훈하였습니다.

이케다 박사님은 또한 1974년 중소 냉전이 한창인 시기 양국의 관계 개선을 위해 민간 외교관으로 소련을 방문하였습니다. 당시 “종교를 부정하는 이데올로기를 가진 나라에 왜 가는가”라는 거센 비판 속에서도 “그곳에 인간이 있기 때문입니다”라고 말씀하신 용기는 지금도 많은 이들로부터 회자되고 있습니다. 또 이미 1996년에 미국과 쿠바의 관계 개선을 위하여 키신저 장관과 카스트로 의장을 각각 만나 양국의 화해무드를 만든 이케다 박사님의 행동은 이데올로기와 국가의 벽을 넘어 상호신뢰의 정신과 인류 공영의 고귀함을 전 세계인에게 보여주신 것이었습니다.

이처럼 인류 평화와 공존, 특히 한반도 평화를 위해 헌신하신 이케다 박사님을 북한대학원대학교 명예석좌교수로 모시게 된 것을 큰 기쁨으로 생각합니다. 이케다 박사님의 경륜은 북한대학원대학교를 넘어 지금 엄중한 상황에 있는 한일관계가 역사를 거울삼아 공동의 미래를 열어가는 데 있어 큰 자산이 될 것임을 확신합니다.

이케다 박사님이 추구하신 철학은 오늘날 우리 아시아를 위협하고 있는 세 가지 즉, 민족주의와 군국주의, 그리고 영토분쟁이라는 이 세 가지 요소가 인류에게 비극을 가져오지 않도록 하는 그런 정신을 담고 있다고 봅니다.

다시 한번 내외 귀빈들과 함께 명예석좌교수 임명을 축하드립니다.

감사합니다. 



<
이케다 SGI 회장 답사[대독]>





이케다 SGI 회장을 대리한 이케다 히로마사 SGI 부회장이 답사를 대독하고 있다.



- 은사의 마음을 계승 ‘한일우호’ ‘아시아 안정’ ‘세계 평화’ 위해 행동, 열린 마음으로 대화 지속할 때 시대를 바꿀 수 있다

충심으로 존경하는 창립자 박재규 박사님과 영부인이신 김선향 이사장님, 송민순 총장님을 비롯한 교수님 여러분 그리고 참석해 주신 모든 내빈 여러분.

오늘, 저는 평화를 위한 학술·교육기관으로서 세계적으로 유명한 귀 북한대학원대학교의 ‘명예석좌교수’로 임명되었습니다.

저는 분에 넘치는 이 영예를 무엇보다 먼저 좋은 시민, 좋은 국민으로서 사회공헌의 모범을 보이며 성실히 힘쓰는 한국SGI의 보배로운 벗과 함께 받고자 합니다.

그와 더불어 귀국을 경애하며 평화·문화·교육의 연대를 넓히는 세계의 동지와 함께 오늘의 기쁨을 나누고 싶습니다.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지금 저는 명예로운 귀 대학의 일원이 된 의의를 제 나름대로 깊이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 첫번째는 평화창조를 위한 전대미문의 탐구와 도전에 동참하는 일입니다.

창립자 박재규 박사님은 한반도와 동북아시아의 안정과 발전 그리고 세계평화의 창조를 위해서 그야말로 가시밭길을 개척한 위대한 영지의 개척자이십니다.

박재규 박사님이 젊은 시절 미국에 유학했을 때 은사이자 세계적인 경제학자인 피터 와일즈 교수가 ‘자네는 언젠가 한반도가 통일이 될 때를 대비해 깊이 연구해 보는 게 어떤가’ 하는 제안을 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은사가 의탁한 이 원대한 청춘의 뜻을 관철하신 박사님의 숭고한 발자취에 깊이 감동했습니다.

은사 와일즈 교수는 ‘전문가로서 첫번째 의무는 아는 데 있다’를 신조로 ‘단맛과 쓴맛 양쪽 다’ 즉 좋은 점과 나쁜 점을 모두 연구하지 않으면 전체상을 이해할 수 없다고 가르치셨습니다.

박재규 박사님은 투철한 탐구 정신을 실천할 뿐 아니라 폭넓은 상호이해의 문을 여셨습니다.

동서냉전이 한창일 때, 중국과 소련의 대학과 학술교류를 맺은 박사님의 남모르는 고투가 대학의 창립자로서 지금까지 교육교류를 추진한 저에게는 아플 정도로 느껴집니다.

그리고 박사님은 냉전이 종결된 뒤 한국의 통일부장관으로 취임해 역사적인 첫 남북정상회담 실현에 온 힘을 쏟으셨습니다.

그 불멸의 공적은 길이 남을 것입니다.

서로 알고 배우면서 ‘불신과 대립’을 ‘화해와 협력’으로 바꾸지 않으면 안 됩니다.

이러한 박재규 박사님의 굳은 신념이 역사를 크게 전환시켰습니다.

저는 귀 대학에 맥동하는 이러한 지식의 개척자 정신을 세계의 청년들과 함께 마음속에 새기고 싶습니다.

두번째로 귀 대학의 일원으로서 가슴속 깊이 새기고자 하는 점은 선인의 비원을 성취하고 젊은이에게 희망을 보내는 연대입니다.

일찍이 박재규 박사님의 가족이 군국주의 일본이 일으킨 전란으로 많은 형제자매가 목숨을 잃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제 가슴이 찢어지는 심정이었습니다.

그러한 슬픈 과거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박사님은 ‘일본과 친하게 지내라’는 어머님의 관대한 말씀을 가슴 깊이 새겨 ‘가깝고도 먼’ 한국과 일본을 ‘가깝고도 가까운’ 우호관계로 바꾸어내기 위해 교류를 쌓아오셨습니다.

특히, 젊은 영지의 청년들과 나누는 교류를 소중히 하며, 미래의 차세대에게 커다란 희망의 길을 열어주셨습니다.

제게도 잊을 수 없는 소년시절의 추억이 있습니다. 저희 아버지는 일본 제국주의 시절에 2년 동안 서울에서 군생활을 보냈습니다. 아버지는 돌아와서 한국에서 지낸 시간들을 돌이켜보며, “정말로 일본은 심하다. 거만하다! 다 같은 인간이 아닌가!” 하고 분노했습니다.한일우호를 위한 저의 굳은 결의는 그때 아버지와 나눈 대화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우리 창가학회는 제2차 세계대전 중에 일본의 군국주의와 맞서 싸우다 탄압을 받았습니다. 옥사하신 마키구치 쓰네사부로(牧口常三郞) 초대 회장의 후계자로서 2년간 투옥생활을 견뎌낸 은사 도다 조세이 선생님이 제2대 회장에 취임하신 날이 1951년 5월 3일입니다.

그때 도다 선생님은 전쟁의 불 더미에 휩싸인 한반도를 깊이 우려하고 한탄하며 하루빨리 평화가 실현되기를 기원하셨습니다.

불이(不二)의 제자인 저는 그러한 은사의 마음을 이어받아 한일우호와 아시아의 안정 그리고 세계평화를 위해 행동했습니다.

한민족 독립의 아버지 안창호 선생은 “서로 사랑하는 마음으로 빙그레 웃는 세상을 만들어야 하겠소” 하고 외치셨습니다.

박재규 박사님은 동북아시아 공동체를 전망하고 특히 한국, 중국, 일본 세 나라가 협력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몇번이나 강조하셨습니다. 저도 전적으로 동감합니다.

지난달 한중일 관광장관 회의를 열고, 2020년까지 상호 방문 여행자수를 3000만명으로 확대하는 데 합의했습니다.

또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과 2020년 도쿄올림픽 성공을 위해 ‘동아시아 방문 캠페인(Visit East Asia Campaign)’을 전개하고, 민중 교류를 촉진하는 데 협력하기로 했습니다.

민중 교류 특히 교육을 기반으로 한 청년 교류가 국가와 이데올로기의 벽을 뛰어넘는 원동력입니다.

지난번 박재규 박사님이 우리 소카(創價)대학교를 방문해 주셨습니다. 그때 교직원과 학생들은 한국을 대표하는 위대한 석학을 맞이하게 되어 진심으로 기뻐했습니다.

우리는 평화우호를 바라는 선인들의 비원을 잊지 말고 교육, 문화교류를 더 한층 힘차게 추진해 모든 사람이 서로 ‘빙그레’ 웃을 수 있는 그러한 세계를 단연코 만들었으면 합니다.

세번째로 귀 대학의 일원으로서 저 또한 ‘열린 마음으로 인내 강하게 대화를 지속할 때 시대를 바꿀 수 있다’고 확신합니다.

창립자 박재규 박사님과 함께 그 모범을 보이신 분이 바로 이 자리에 있는 송민순 총장님이십니다.

송민순 총장님은 탁월한 대화의 힘으로 세계 외교무대에서 시대를 움직여 오셨습니다.

송민순 총장님이 2005년에 개최한 6자 회담에서 한국측 수석대표로서 북한의 핵 포기를 이끌어낸 역사적인 9·19공동성명 채택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 업적은 잘 알려져 있습니다.

그리고 송 총장님은 17세기 조선시대에 활약한 위대한 지도자 송준길 선생의 자손입니다.

송준길 선생은 ‘동춘당(同春堂)’이라는 아호처럼 사람들을 봄바람처럼 따뜻하게 대하며 분쟁을 조정하고 화해시키는 명수였다고 합니다.

그러한 정신을 계승한 송민순 총장님의 리더십으로 눈부신 발전을 거듭하고 있는 귀 대학은 동북아시아 및 환태평양 지역 나아가 세계를 비추는 커다란 희망의 빛입니다.

‘평화의 음악가’로 저명한 윤이상 선생은 이렇게 선언하셨습니다.

“작곡가는 단순한 예술가가 아니라 그 세상을 살고 있는 사람이기도 하다. 그는 자신이 살고 있는 세계에 무심할 수는 없다. 인간적인 고뇌, 압제, 부당함이 여전히 이 세상에 존재한다” “고통이 존재하고 오류가 존재하는 그곳에 나는 내 음악을 가지고 함께 나아갈 것이다.”

어디까지나 고뇌하는 서민과 함께!

인간을 위해, 정의를 위해, 미래를 위해!

이 근본이 바로 우리가 항상 되돌아가야 하고, 마음속 깊이 새겨야 할 평화의 출발점입니다.

저는 존경하는 여러분과 함께 그리고 경애하는 귀국의 청년들과 함께 용감하고 장엄한 평화와 우정의 교향곡을 평생을 바쳐 드높이 연주할 결의입니다.

마지막으로 귀 대학의 무궁한 대발전과 오늘 이 자리에 참석해 주신 여러분의 건승을 진심으로 기원드리며, 저의 답사로 대신하겠습니다.

대단히 감사합니다!



화광신문 : 15/05/08 1116호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