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SGI 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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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리의 꽃이 활짝 피어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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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케다 SGI 회장 ‘월간중앙’ 9월호 칼럼 게재, 故조영식 박사 조명
관리자
2013-0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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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과 물질 통합한 제2 르네상스 열어야’
시사월간지 ‘월간중앙’ 9월호에 ‘정신과 물질 통합한 제2 르네상스 시대 열어야’라는 주제로 경희학원 창립자 故조영식 박사에 대한 이케다 SGI 회장 칼럼이 게재됐다(132~135쪽).
칼럼은 인권을 무시하는 일본의 국가주의에 맞서 싸우고, 해방 후 세계평화와 교육운동에 헌신하며 21세기가 나아가야 할 비전을 제시한 조영식 박사의인생에 초점을 두었다.
“똑같은 실패라도 생각하며 실패하는 것과, 본능적으로 행동해서 실패하는 것은 그 다음에 오는 결과가 다르다. 몇 번이고 거듭 숙려하고 끈질기게 생각하는 자세가 인생에서는 중요하단다”(조영식 박사 아버지의말씀 중, 133쪽).
학도병으로 강제 지원되고 항일운동 의거에 실패하여 옥중 투쟁을 벌였다. 해방 후 임신한 아내를 북에 두고 혼자서 남쪽으로 이동한 후 지인의 도움으로 가까스로 가족들과 상봉했다. 칼럼은 조영식 박사의 삶을 자세히 소개하며 세계 일류 지도자의 공통점은 한결같이 ‘장래를 생각한다’는 점이라고 썼다. 특히 박사가 일본군 포로가 되었을 때 어떤 학대를 받았을 지를 언급하며, 그 와중에서도 박사가 아버지의 가르침을 잊지 않고 ‘인류의 영원한 이상’을 찾아서 생각하고 또 생각한 점을 강조했다.
“근본적인 잘못은 무엇인가? 인류는 어디서부터 그르친 것일까? 무엇을 해야 하는가? 그리고 물질에 편중된 문명도 아니고 정신에 편중된 문명도 아닌, 그것들을 유기적으로 통합하고 창조적으로 조화를 이룬 새로운 문명”(134쪽).
조영식 박사는 그 해답은 미국 방식의 민주주의도 소련 방식의 민주주의도 아닌 제3의 보편적인 민주주의여야 한다고 말한다. 그것은 바로 문화세계를 창조할 수 있는 ‘교육’이었다. 이어 칼럼은 사재를 털어서 설립한 경희학원과 아름다운 인간사회 건설을 위해 ‘제2의 르네상스’를 제창하며 제자를 육성한 조영식 박사의 공헌을 자세히 소개했다.
한편 ‘1000가지 사업을 이루어낸 사람’이라는 별칭이 있을 정도로 20년에 걸친 한국인 피폭자를 위한 무료진료 등 삶이 다하는 날까지 멈추지 않았던 전세계에 걸친 인도주의 활동도 함께 다루었다. 또한 경희대학교와 소카대학교의 교류를 언급하며, 조영식 박사가 작사한 ‘평화의 노래’를 한국어로 한일 양국의 학생들이 부르는 모습을 두고 “청년들의 모습에 ‘국가’의 그림자는 없었다. 다만 ‘인간’만이 빛났다”(135쪽)라고 썼다.
오웅희(unghee@) | 화광신문 : 13/08/30 1035호 발췌
시사월간지 ‘월간중앙’ 9월호에 ‘정신과 물질 통합한 제2 르네상스 시대 열어야’라는 주제로 경희학원 창립자 故조영식 박사에 대한 이케다 SGI 회장 칼럼이 게재됐다(132~135쪽).
칼럼은 인권을 무시하는 일본의 국가주의에 맞서 싸우고, 해방 후 세계평화와 교육운동에 헌신하며 21세기가 나아가야 할 비전을 제시한 조영식 박사의인생에 초점을 두었다.
“똑같은 실패라도 생각하며 실패하는 것과, 본능적으로 행동해서 실패하는 것은 그 다음에 오는 결과가 다르다. 몇 번이고 거듭 숙려하고 끈질기게 생각하는 자세가 인생에서는 중요하단다”(조영식 박사 아버지의말씀 중, 133쪽).
학도병으로 강제 지원되고 항일운동 의거에 실패하여 옥중 투쟁을 벌였다. 해방 후 임신한 아내를 북에 두고 혼자서 남쪽으로 이동한 후 지인의 도움으로 가까스로 가족들과 상봉했다. 칼럼은 조영식 박사의 삶을 자세히 소개하며 세계 일류 지도자의 공통점은 한결같이 ‘장래를 생각한다’는 점이라고 썼다. 특히 박사가 일본군 포로가 되었을 때 어떤 학대를 받았을 지를 언급하며, 그 와중에서도 박사가 아버지의 가르침을 잊지 않고 ‘인류의 영원한 이상’을 찾아서 생각하고 또 생각한 점을 강조했다.
“근본적인 잘못은 무엇인가? 인류는 어디서부터 그르친 것일까? 무엇을 해야 하는가? 그리고 물질에 편중된 문명도 아니고 정신에 편중된 문명도 아닌, 그것들을 유기적으로 통합하고 창조적으로 조화를 이룬 새로운 문명”(134쪽).
조영식 박사는 그 해답은 미국 방식의 민주주의도 소련 방식의 민주주의도 아닌 제3의 보편적인 민주주의여야 한다고 말한다. 그것은 바로 문화세계를 창조할 수 있는 ‘교육’이었다. 이어 칼럼은 사재를 털어서 설립한 경희학원과 아름다운 인간사회 건설을 위해 ‘제2의 르네상스’를 제창하며 제자를 육성한 조영식 박사의 공헌을 자세히 소개했다.
한편 ‘1000가지 사업을 이루어낸 사람’이라는 별칭이 있을 정도로 20년에 걸친 한국인 피폭자를 위한 무료진료 등 삶이 다하는 날까지 멈추지 않았던 전세계에 걸친 인도주의 활동도 함께 다루었다. 또한 경희대학교와 소카대학교의 교류를 언급하며, 조영식 박사가 작사한 ‘평화의 노래’를 한국어로 한일 양국의 학생들이 부르는 모습을 두고 “청년들의 모습에 ‘국가’의 그림자는 없었다. 다만 ‘인간’만이 빛났다”(135쪽)라고 썼다.
오웅희(unghee@) | 화광신문 : 13/08/30 1035호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