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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험담

법화경에는 '모든 인간은 일체 차별 없이, 더없이 존귀한 부처가 될 수 있다'는
인류에게 보내는 강력한 메시지가 있습니다.

63빌딩 아이맥스영화관 영사기사 박경석씨
63빌딩 아이맥스영화관 영사기사 박경석씨・부평권 동암지부 남자부장
꿈・희망・감동 전하는 정통 아이맥스의 진수!


깎아지른 절벽, 숨막히게 쏟아지는 급류, 휘몰아치는 폭풍, 굶주린 악어 떼의 무시무시한 습격…….
마치 현실 같은 모험 세계가 쉴새 없이 펼쳐졌다.
거대한 스크린과 웅장한 소리는 사람들의 가슴을 고동치게 했다. 객석 여기저기서 탄성이 터져 나왔다.

이것은 63빌딩 아이맥스영화관에서 상영 중인 영화 ‘나일대탐험’의 관람 풍경이다. 세계에서 가장 긴 신비의 강 나일강을 탐험하는 대원들의 도전과 우정을 그린 이 영화는 단박에 관객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아이맥스는 사람이 볼 수 있는 ‘최대 영상’이란 뜻입니다. 아이맥스영화는 관객이 자연상태에 있는 느낌이 들도록 최고의 화상과 음질을 추구해 왔습니다. 65밀리 대형 필름으로 촬영・편집한 영화를 일반 건축물 7층 높이(가로 25m, 세로 18m)의 스크린으로 상영하니까 일반 영화와는 비교할 수 없지요.”

아이맥스영화관 영사기사 박경석(37)씨는 아이맥스영화에 대한 궁금증을 하나하나 풀어줬다. 첨단 영상 매체인 아이맥스영화는 영화 발전의 한 획을 그었지만, 제작비가 막대해 대부분의 국가에서는 손을 델 수 없다.

현재 세계 30여 개국에 아이맥스영화관이 있고, 국내에서는 1985년 7월, 63빌딩에 국내 유일의 정통 아이맥스영화관이 들어섰다.
이로써 한국은 세계에서 12번째 아이맥스영화관 보유국이 됐다.

1998년 4월부터 이곳에서 일한 그에게는 남다른 기쁨이 있다.
그는 “남녀노소 누구나 이곳에 오면 어린이가 돼요. 세상일로 찌든 관객이 순수한 ‘동심의 세계’를 되찾고 감동하는 모습을 보면 가슴이 뿌듯해요”라면서 남다른 보람을 말한다.
해마다 평균 1백만 명이 이곳을 찾는다고 하니 그가 느끼는 보람이 어느 정도인지 쉬이 가늠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벅찬 감동의 이면에는 긴장과 인내의 반복이 필수다.
1년에 상영하는 영화는 3작품. 게다가 하루 평균 11회나 상영하니 같은 영화를 끊임없이 보는 셈이다.

“사람들은 버튼만 누르면 그냥 영상이 재생(再生)되는 줄 아는데 천만의 말씀입니다. 영화를 상영하는 동안 필름과 화면에 이상이 없는지 계속 점검하느라 한순간도 눈을 뗄 수가 없어요. 언뜻 보면 단순하고 지루한 일이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지요. 영화 ‘시네마 천국’에서 알프레도 아저씨가 평생 소명(昭明)을 가지고 했던 일이잖아요.”

그는 진실로 영화를 사랑한다.
그래서 관객에게 완벽한 영상과 음향을 전하는 일은 세상 무엇과도 바꿀 수 없이 소중하다.

30평의 영사실에 있는 영사기, 음향기기, 필름 편집기, 녹음시설, 음성다중시설 등은 그에게 오랜 친구이자 동반자다. 그는 출근하자마자 기계와 장비들을 정성껏 청소하며 하루를 시작한다.

“말은 못하는 쇳덩이지만 감정이 살아 숨쉬지요. 사람과 마찬가지에요. 조금만 소홀히 하면 이상이 생기거든요. 사실 아침에 출근해서 청소할 때가 가장 기뻐요.”

지금까지 상영한 작품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영화는 ‘에베레스트’다.
1953년 에드먼드 힐러리와 함께 세계 최초로 에베레스트를 등반한 셀파, 텐징 노르게이의 아들 잠링 노르게이가 43년 전 아버지가 등반한 고난의 흔적을 좇아 도전하는 내용을 담은 다큐멘터리다.

그는 “꿈을 간직한 사람은 최후에는 그 꿈을 이룰 수 있다는 것을 배웠다”라면서 그때의 감동을 떠올렸다.

자신이 영화와 만나게 된 것은 어머니가 꿈을 나눠준 덕분이라고. 그는 어릴 때부터 영화광인 어머니를 따라 자연스레 영화를 접했다. 고교시절에는 어머니가 영화표를 구해줘 늘 최신 작품을 빼놓지 않고 볼 수 있었다.

그렇지만 올곧은 영화인이 되기까지는 숱한 괴로움을 겪었다.
영사기사로 첫 발을 내디딘 것은 1993년, 고향인 마산의 한 극장에서였다.
처음에는 마냥 일이 즐거웠지만, 여러 가지 사정으로 두 번이나 장래가 보장되는 미국 유학길을 접어야 하는 아픔을 맛봤다.

“가슴이 갈기갈기 찢어지는 기분이었어요. 그렇지만 ‘법화경을 믿는 사람은 겨울과 같다. 겨울은 반드시 봄이 되느니라’(어서 1253쪽)라는 성훈을 생명에 새기며 새로운 결의로 창제와 학회활동에 진력했습니다.”

그는 이후 한 학자를 만나 6년에 걸쳐 영화, 문학, 미술, 정치 등 여러 가지 학문을 철저히 배웠다. 혹독한 훈련과 인내의 한계를 시험하는, 지옥같은 단련의 나날이었다고 한다.

드디어 1997년에는 새로운 희망을 안고 서울에 왔다. 이어 한국영상예술협회 관계자의 추천으로 제1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 참가했다. 그리고 1998년 4월, 치열한 경쟁을 뚫고 63빌딩 아이맥스영화관 영사기사가 됐다.

그는 요즘 새로운 도전을 하고 있다.
그것은 특수영화와 관련해 독보적인 자료를 구축하는 일이다. 국내에는 아직까지 특수영화와 관련한 책이 전무한 실정이어서 그의 작업은 머지 않아 빛을 발할 것이다.

영사기사로 일한 지 올해로 14년째.

그는 “목숨을 건다는 결의로 일하며 만인에게 꿈과 희망, 감동을 전하고 싶어요. 위대한 스승의 제자로서 꼭 일류 인재가 되겠습니다”라고 포부를 밝혔다.




장호정(hjjang@hknews.co.kr) | 화광신문 : 07/02/16 721호